1706月及

 

 

kurt youn

글쓰기와 변덕

 

Alex Yu

RED X GREEN

 

SPECIAL GUEST

writer KWON

 

nuh

  文 (02)

 

 


 

 

 

 

kurt youn

 

글쓰기와 변덕

 

매일 반복되는 일상.

출근,야근,퇴근,취침 다시 출근

 

 

삶이라는 운동장을

24시간이라는 트랙에 맞춰

매일 매일 열심히 뛰지만

남는건 통장에 스쳐가는 월급 뿐..

스쳐가는 월급만큼

빠르게 다가오는 nuhthing의 월간 “月及” 마감

 

 

나는 글을 잘 못쓴다.(연습을 게을리해서 그렇다.)

나는 변덕이 심하다.(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렇다.)

어떤 주제로 긴 글을 쓴다.

맘에들지 않아 지워버린다.

그리고

다른 주제를 찾아서 다시 글을 적는다.

다시 지운다.

또 다른 주제를 찾아 글을 적는다.

맘에 들지 않아 다시 지운다.

그리고

지친다.

쓰지 말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를 찾아오는 자괴감을 만끽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지워버린 글 중에서 조금이라도 괜찮았던 글을

괴로워하며 다시 떠올린다.

다시 글을 쓴다.

두번째 쓴 글 보다. 처음에 쓴 글이 괜찮지만.

나름 두번째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nuh사장에게 글을 올렸다고 문자를 보낸다.

 

 

여러분이 읽으시는 월급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매달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쓰고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Alex Yu

 

RED X GREEN

 

 

열살, 딱 그때까지 살았던 동네가 있었다.

받아쓰기가 익숙해지고

교회와 성당의 차이를 잘 모르며

버스의 벨을 누르기엔 아직 두렵고 어색하지만,

학교 가는 길은 어느 누구보다 빠른 골목길을 알고

산타의 진실을 찾아 헤매 이던 초등학교 저학년의 끝.

 

환상과 현실이 겹쳐가던 그 시절.

열살의 기준으로 나에게는 너무나도 먼 곳으로

모든 시간을 멈춰둔 채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등교 길, 새로운 친구들…

그렇게 흐르는 세월에 점차 옛 동네의 기억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무렵,

옛 동네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걸 느낀 시점은

대중교통이 익숙 할 나이인 고등학교때 즈음 이었다.

 

‘기회가 되면 꼭 가봐야지…’ 라고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지내왔지만,

어떠한 두려움으로 인해 25년이나

버스 정류장에서만 서성이다 돌아왔다.

 

‘그때의 친구들은 그대로 살고 있을까?’

‘공원, 학교, 교회, 시장은 그대로 있겠지?’

‘집 사이 사이의 골목길은 그대로 있을까?’

정도의 의심은 곧…

 

‘친구들의 이름과 집이 기억나지 않아…’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겼네, 내가 살던 곳도 없어졌나?’

‘그 골목길들은 과연 진짜 였을까?’

라는 두려움으로 바뀌어 커져갔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 때의 현실은 환상에 가까워졌고,

나는 그 환상 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환상 속 추억…

하지만 언젠가는 방문 할 ‘기회’는 항상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 ‘기회’라는 것은 항상 불현듯이 찾아온다.

 

날씨가 선선했던 어느 주말…

옛 동네 버스정류장을 지나 몇 정거장 더 가면 보이는 야구장에서

느즈막히 야구경기가 끝나고, 알 수 없는 기분이 살짝 들었던 그 날.

조금 걷고 싶은 마음으로 발길 따라 가다 보니

어느새 크게 확장 된 25년 전의 교회 앞에 서있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확장된 교회만큼 크게 들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을 없을 꺼야…

그저 평범한 주택가라 슈퍼 하나 찾기도 어려울 지 몰라…

하지만 어떻게 변했는지, 내 기억이 어디까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지금 아니면 다시는 안 올 것이라는 걸 아는 듯이…

 

‘그래, 조금은 지루할 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더듬어 그저 걸어 나갔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큰 공원,

내가 살던 작은 집, 초등학생 정도 되야 지나갈 수 있었던 골목들은

전부 커다란 아파트와 상가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나마 큼직큼직했던 길 만이 깨끗하게 포장되어 내 아련한 기억들을

새롭게 덮어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의 오래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아쉬우면서도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25년 전, 이사를 가던 그 날과 똑같이 등교 길을 따라

내 모교를 들러 큰 길로 나가려 하던 그 때…

 

모교 앞 언제나 활기로 넘쳐났던 문구점이 내 넋을 빼앗았다.

 

그 광경은 마치 레드와 그린의 반복된 컬러라인으로 잘 포장 된

25년간 뜯지도 않고 그저 방치해 둔 잊어버린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느낌이었다.

 

굳게 닫힌 철문은 마치,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뜯어보고 싶지않은,

그저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추억의 현실.

 

너무나도 또렷한 광경 앞에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반가움, 그리움, 아쉬움, 기쁘면서도 슬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지나다녔고,

어느새 내 눈시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냥… 울어도 되요.’

 

내 추억의 시간엔 존재하지 않았을 작은 아이의 작은 속삭임은

복잡했던 환상 속의 그리움과 막연했던 두려움의 시간을

깨끗하게 씻어내어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고,

이 오래되고 심기가 불편했던 선물은

또 다시 새로운 형태의 선물로써 내 앞에 서있었다.

 

‘안녕,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야… 잘 있어.’

 

 


 

 

 

 

 

SPECIAL GUEST

 

writer KWON

 

 

월급의 게스트 맴버로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문자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자가 있어서 인간의 생각은 깊어지고 지식은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 월급의 감성도 전승될 가치가 생기고 또 전승되고 널리 퍼지길 바란다. 또 본인도 매월은 아니지만(미래는 모르지만) 급우(及友)가 되길 바란다.

 

전승될만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소설가인 나의 인생과 nuhthings의 인생들. 이들의 인생이 그저 셀 수도 없는 우리 몸의 세포 하나처럼 살다가 그냥 없어질 것인가, 아니면 작게나마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성과 가치를 전하는 인간들이 될 것인가, 또 그래야 할 이유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하며 살 필요까지 없는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예술. 답은 예술이다. 우리의 모든 작품과 인생이 예술이 되어야 한다. 그럼 예술은 무엇인가? 바로 진실이다. 우리 인간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들추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시작점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우리는 스스로 진실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삶의 진실들,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들 모두 가감없이, 용기 있게, 우리의 작품으로 드러내야 한다. 테크닉과 남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욕을 해도 작품의 질이 어떤지는 창조자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게 반고흐가 그토록 시골 사람들 곁에 머물며 그들을 관찰한 이유다. 화랑의 미술품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독특한 자기만의 색채를 고집한 이유다. 안톤 체호프가 그때 당시 개, 돼지, 짐승과 다름 없던 극 오지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삶을 보겠다고 러시아 극동지방을 여행 한 이유다. 안톤 체호프의 그 심정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 호기심인 것 같다고 했다. 그가 밀란쿤데라, 박완서처럼 위대한 소설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보고 들은 것 모두 가감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으로 드러냈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데미안 체젤 감독은 예술을 본질을 명확히 이야기해 준다. 미아가 1인극을 준비하며 걱정스럽게 세바스찬에게 묻는다. “people really like it?” 그러자 세바스찬이 대답한다. “fuOO on them!.” 그런 것이다. 관중이나 독자의 눈치보고 만드는 것이 예술이 아니다. 오로지 창조자의 진실만이 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을 하겠다고 하는 우리는 반드시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우리의 말과 행동과 눈빛들. 예술가에게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예술은 테크닉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그저 쏟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작품이 진실이고 예술이라면 언젠가, 누군가는 그 가치를 알아줄 것이고 전승될 것이다. 창조자가 굳이 걱정할 필요 없다.

 

이제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예술지망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신의 작품보다 훨씬 더 거지같은 작품도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nuh

  文 (02)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난 밤 마셨던 술의 기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상태였고, 그저 물만 연거푸 들이켰다. 사람은 분위기에 취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디까지 갈 줄 모르는 상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사람은 흥도 많고 음주가무 민족이라는 생각이 나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 결국 나도 한국 사람. 거의 7종류 가까이 되는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셨으니 이러한 숙취가 없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다음 일정을 위한 준비를 시작 했다. 전날의 먹은 술기운은 결과적으로 동반자에게는 오지 않았다. 순전히 나를 위한 숙취,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또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볼 수 없었던 하늘과 드넓은 대자연이 반겨주고 있었고, 맑은 공기 따스한 햇살, 이튿날 역시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뭐가 좋다고 들이켰는가. 속을 달래기 위해 찾은 우동 집은 예상을 뛰어넘는 너무나 훌륭한 맛을 제공 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 된 두번째 여정 길. 오래 된 작은 사찰. 그 지역 사람들이 마음을 두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 이 마을을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서있었는가.

타카치오 협곡을 방문, 한국 사람이 참 많았다. 더 쓸 내용이 없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한 방울 아니 의외로 많은 양의 비. 비를 맞으며 걷는다. 커피를 마신다. 나는 체질상 커피를 마실 수 없기에 파인애플 주스를 마신다. 내가 지내온 시간을 되돌아 본다. 무엇을 위해 살아 왔으며 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등등의 삶에 대한 그냥 막연한 생각들. 빗방울이 들려주는 작은 물 소리는 동반자와 필자 둘의 마음에 고요하게 다가와 폭풍처럼 울려주고, 서로의 삶에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참으로 고마우면서도 슬픈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

마음의 무거움을 뒤로 하고 저녁을 위한 숙소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역시나 즐거웠고, 모든 것이 재미있는 순간 이었다.

도착한 곳은 해변과 가까운 서핑하우스. 그냥 부러움의 대상이 운영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런 게스트 하우스였다. 바다를 보았다. 의미를 담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한국과는 다르다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 담겨있다.

 

 

시내는 차가 없으면 엄두 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곳. 음식도 입맛에 맞았고, 어느 마트에서나 파는 싱싱한 사시미와 초밥, 그리고 여전히 맛있는 일본 맥주는 최고의 밤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테레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보지는 않았다. 그 날을 정리하기 위해 무겁게 들고 간 맥북을 켰지만 이튿날의 감동을 담기에는 버거웠으며, 오전에 있었던 숙취로 인해 결국 일찍 잠을 청했다.

 

쌀쌀한 아침. 다시 미야자키 아침 바다를 향해 외투를 입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