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月及

 

 

kurt youn

희망

 

Alex Yu

Food Photo

 

GUEST

소설가 권해욱

4060

 

nuh

아쉬움과 두려움의 사이

 

 


 

 

 

 

kurt youn

희망

 

 

 

생각이 전혀 다른사람들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들

전혀 만나고싶지 않은 사람들

정말 평생 같이하고싶은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돈이라는 목적으로 함께 공존하는 곳이 바로 회사다.

 

때로는 밖에선 좋은사람이 회사에서는 똑부러지지 못하는 상사가 되고

,집에서 무관심한 가장은 야근을 밥먹듯이하면서 성과를 가져오는 기특한 직원이 되는 곳 회사.

 

성격탓인지 꾸준하게 오래회사를 다니지 못했다. 아니 오래다니고 싶은 회사가 없었다고 생각도 한다. 권위적이고 때론 몰상식하며 이윤이라면 사람의 일생도 휴지가 되는 상황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 회사 또는 직장이기에 늘 실망하고 때론 이겨보려고 발버둥도 치고, 어느 순간엔 그래 할일만 하다가 월급만 받아가자라는 생각에 도달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보는 회사가 아니라 다시 싸우고 체념하고의 반복이 이어진다.

 

 

때론 내 모든 것을 걸고, 나를 넘어 다수의 사람들에 생명같은 가정까지 짊어지고 나아가 싸우면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내 가족에게 소홀하기도 했으며 돈이라는 허무함을 쫒아서 몸이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일하기도한다.

누군가는 그것이 삶이라고하고

누군가는 자본가들의 탐욕에 굴복하는 것이라고도하며

누군가는 머리아프게 생각말고 시키는대로만 하고 돈을 받아가자고 한다.

 

정답은 있을거라 믿지만 회사라는 곳에서는 모두 자신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경쟁을 치루고 살아남으려 각자의 생각과 요령에 하루하루를 회사에 제출하며 살아간다.

 

자고일어나면 다시 일할 수 있다.

적당히 적게줘도 열심히 버티는 사람이 있다.

막 대해도 귀찮아서,무서워서,돈이 없어서

그냥 묵묵히 버틴다.

서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여기에서

이번달도 잘 버텼네.

잘 버텼다.

 

 


 

 

 

 

Alex Yu

Food Photo

 

 

나는 음식사진을 상당히 자주 찍는 편 이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아가는 맛 집이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간 식당의 음식이

예쁘게 혹은 맛있어 보일 때,

수저보다는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을 먼저 찾는다.

 

 

지금이야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의 향상으로 인하여

촬영이 간단해져 시간이 대폭 짧아졌다만,

몇 년 전에는 DSLR을 매일 가지고 다닐 때라

가방에서 꺼내 전원을 켜고 구도를 맞추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시간으로 인하여

동승자에게 한 소리 들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촬영하는 데에 있어 움직임의 폭도 크고 카메라도 크니

당시 파워블로거지들의 여러 가지 활약상으로 인하여

식당 종업원에게 여러 가지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음식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게 된 것도

디지털 카메라가 많은 발전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필름 시절을 생각해보면 일상생활에 한 컷 한 컷

돈이 들어가는 셔터를 음식사진에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부의 상징이었던 필름과 필름카메라가

디지털 시대로 넘어와 필름 값의 부담을 줄여주었고

지금은 휴대폰의 카메라기능으로 인하여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긴다는 행위가 매우 쉬워졌다.

그러면서 더욱 더 사진은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와

각종 음식사진들이 식당 소개로 이어지며,

또한 그 행위가 싫은 식당은

촬영금지를 외치는 등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행동이 크지 않는 휴대폰 카메라로 조용히 찍을 수 있고,

GPS의 도움을 받아 위치도 추적할 수 있으며,

SNS에 업로드를 하면 음료수나 약간의 할인을 해 주는 식당들도 생겼다.

이렇게 사진촬영이라는 재미에 가까워짐으로써

반대로 보다 전문적인 디지털 이나 필름 카메라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필름 가격이 아까워 음식사진은 고사하고

한 컷 한 컷 사진을 소중히 찍어왔던 시절과

DSLR로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며

예쁘게 음식사진을 담아낼 때는

본의 아니게 괜찮다고 사양하는데도

사이드 메뉴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어디에도 촬영금지라는 안내가 없었음에도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종업원의 썽을 들어가며

부담감을 안고 식사를 하던 그런 시절이 지나

지금은 개인 SNS에 하나 정도는 있을 법한,

식당에서도 촬영을 권장하는 시절이 되었다.

[사진05]

기술의 진화, 정보의 공유와 거부, 인간의 심리를

이런 일련의 기간을 거쳐 변화한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 지 기대된다.

그리고 당신은 먹을 때가 가장 예쁘다.

 

 


 

 

 

 

GUEST

소설가 권해욱

4060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다. 한국나이 40살에 모든 걸 정리하고 외국에 정착하겠다고 마음먹고 일본으로 왔다. 오면서 여러 가지 걱정과 다짐이 믹서기에 잘 갈려서 뭐가 뭔지 다시 골라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완전 새로운 나 자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다짐은 분명하다.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는 것! 왜?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제 일본인이 내 이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지금 우리 옆집에 이사 온 인도 사람이 인사도 안 받고 한국말도 못 알아듣고 자기네 나라 사람들하고만 놀고 먹고 돌아다니면 누가 좋게 보겠는가. 기왕이면 인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늦가을쯤 김치를 담아서 유창한 한국어로 ‘이거 드셔보세요. 인도식 풍미가 약간 가미됐는데 먹어 본 한국 분들이 다 좋아하시네요’ 하며 웃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곳, 미야자키 한적한 외곽 동네 하숙집은 너무나 내 이상과 잘 맞는 곳이다. 6명 정도의 일본이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듣는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엿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시골 농장에 일도 따라 다니며 더더욱 많은 일본인을 보고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하숙생 중 한 사람, ‘나오미’라는 여자가 있다. 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어느 날 밤 11시다.

 

나오미 : 곤방와 켄(내 이름 한자의 일본식 발음)상~

켄(나) : 오카에리나사이(어서와요~) 밤 늦게 뭐하다 이제 와요?

나오미 : 알바.

켄 : 알바하고 있었요?

나오미 : 네. 8개.

켄 : 엥! 대단하네요. 무슨 알바를 그리 많이 해요?

나오미 : 돈 없자나요.

켄 : ㅋㅋㅋ 글쵸. 살다 보면 돈이 필요하죠. 딱 쓸 만큼만 있음 되지만.

나오미 : 그렇죠. 요즘 다시 취업할까봐요. 돈이 없어서… 아시아나항공 어때요?

켄 : 아~ 미야자키공항? 항공사야 뭐 비슷하죠. 한국은 대한항공이 최고 그 다음이랄까. 역시 돈이 문제네~

나오미 : 에~~ 돈 떨어져서 좀 걱정이네요.

켄 : 전직 영어선생님이셨다면서요? 히로키한테 들었어요.

나오미 : 네. 그랬죠

켄 : 왜 그만 뒀어요?

나오미 : 이 생활이 더 좋아서요. 80개국 돌아다녔어요

켄 : 영어 발음이 그래서 좋군요. 글쿠나. 역시. 난 한번도 영어 원어민 국가에 있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서양사람들 내 영어를 처음에 잘 못 알아 들어요. 나중에는 잘 되지만.

나오미 : 잘 하는데요 뭘. 일본어도 유창하시고.

켄 : 에이~~ 유창은 아니죠. 그냥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수준.

나오미 : ^^. 진짜 농사지을 거에요?

켄 : 그러고 싶어요. 식물이 자라는 것 신기하기도 하고. 근데 직접 농사는 비자가 안 나와서 경력 살려야죠 뭐.

나오미 : 어쩌려구요?

켄 : 뭐 농사짓는 일도 일이 커지면 복잡한 숫자 다룰 일은 있을 테니 어딘가 내가 할 일이 있겠죠.

나오미 : 한국에는 해도 되잖아요?

켄 : 생활을 바꾸는 건데, 쉽게 결정한 건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요.

나오미 : 켄상, 나이가?

켄 : 38세, 한국나이로 40

나오미 : 에~~!! 진짜? 그리 안 보이는데… 나랑 동갑이네.

켄 : 진짜로요? 헐…

나오미 : 맞아요. 20년에 한 번씩 인생의 큰 전환점이 있어요. 20살 때, 40살 때, 안 살아봤지만 60살 때.

켄 : 그러게요. 내 나이가 지금 그러니. 60살도 그럴 거 같아요. 딱 노인이냐 아니냐의 갈림길 아니겠어요?

나오미 : 그러니까요. 20살 때도 진로 때문에 고민 엄청 하잖아요. 일단 정해지면 10년 정도는 그냥 가야 되고.

 

이쯤에서 나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려다 상대가 일본 사람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한다. 사실 안 물어봐도 답은 뻔하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여자가 아니다.

 

켄 : 요가 강사도 그럼 8개 알바 중에 하나?

나오미 : 네. 맞아요.

켄 : 스트레칭이 안 되는 요가강사? 히로키가 그러던데요.

나오미 : (까르르 웃는다) 그거 아니에요. 태국요가에요. 인도쪽 요가 아니고.

켄 : 달라요?

나오미 : 많이.

켄 : 가장 쉬운 동작 하나만 보여줘 봐요. 따라 해보게.

나오미 : (자세를 고쳐 앉으며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을 한다) 이게… 음… 뭐랄까.

켄 : 죄송해요, 괜히 물어봤나.

나오미 : 아니아니~! 천만에요. 태국요가가 좀 달라요. 인도쪽 요가가 워낙 몸을 많이 상하게 해서 그거에 대안으로 나온 거에요. 그래서 아주 부드럽고 우아해요. 뭔가 간단한 동작이 좀 애매하네요.

켄 : 아하~ 글쿠나. 그거 좋네. 뭐든 그래야 되요. 아무리 좋아도 상대방에게 맞지도 않는 걸 억지로 강요해봐야 역효과만 난다니까.

나오미 : 그러니깐요. 음… 하체의 건강을 강조해요.

켄 : 음~~~! 역시~! 나오미상 제대로 뭔가 하시네요. 맞아요. 운동도 그래요. 하체를 튼튼히 하는 운동을 해야 되요. 상체는 자연히 따라와요. 다들 식스팩 만든다고 아주 비균형적인 운동법 많이 하잖아요.

나오미 : 히로키도 수강생이었어요.

켄 : 그랬구나.

나오미 : 살쪄서 큰 일이에요. 옛날에 나 알던 사람이 지금 보면 나 못 알아 볼 걸요.(그러면서 먹던 편의점 도시락 다 먹고 밥솥에 밥을 한 숫가락 퍼서 그릇에 담고 미소된장국 한그릇 같이 가지고 거실 테이블에 앉는다)

켄 : 만날 11시에 저녁 먹어요?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시더만… 이 패턴 빨리 정리하시는 게 좋을 듯.

나오미 : 그죠? ^^

켄 : ^^

나오미 : 내일 아오시마에 같이 갈래요?

켄 : 거긴 왜요?

나오미 :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기로 했어요. 가는 길에 회전초밥집 맛있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점심도 먹고요.

켄 : (나는 되도록 많은 일본인과 어울리고 싶기 때문에 나오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찬성한다) 당연하죠~!

 

그렇게 간 곳, 아오시마에는 마침 미야자키 지역 벼룩시장 중이었다. 나오미는 그녀의 생활 스타일답게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일일이 나를 그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이 분들도 농사일 중이시라고. 가운데 스테이지에 음악행사가 있다. 아프리카 토속 음악 공연이었다. 사람들이 다들 모여 같이 춤을 춘다. 나오미는 나랑 같이 나가자고 이끈다. 예전에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처음에 거절했다가 아프리카 부족의 단순한 리듬에 몸을 맡긴 나오미의 뒷모습을 보고 나도 슬그머니 일어나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오미의 옆으로 가서 무대에서 동작을 이끄는 사람이 아닌 나오미의 몸을 보며 춤을 따라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만한 여자다. 밝고 명랑하다. 60살까지 소녀같이 살 수 있을 여자다. 가지런하지 못한 이빨이 사람 이미지를 완전 망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변에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베풀어 준다. 나오미는 물론이고 아오시마에서 만난 모든 일본인들. 도대체 그들이 왜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아침에 그녀가 싸들고 온 보온병들 물컵들 내가 다 들고 다녀도 하나도 안 피곤하다.

 

이제야 나 자신도 확실하게 확인하게 된다. 사랑을 다시 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돈도 시간도 없고, 그런 특별한 감정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딸아이를 아빠 없이 자라게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날 밤 웃으며 나오미는 인사하고 방으로 올라간다. 그녀의 못난 이빨도 완전히 묻혀 버린다.

 

나오미 : 오늘 재미있었어요. ^^

켄 : 나도요~. ^^ 오야스미나사이(푹 쉬어요 또는 편안한 밤)

나오미 : 오야스미~!

 

 


 

 

 

 

nuh

아쉬움과 두려움의 사이

 

 

 

마지막 날 2일 전 오후 1시 30분.

지난 날의 숙취로 인해 정신도 차릴 틈이 없었다. 한통의 전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 내일 얘기하자. 뜬금없는 전화에 그날 하루는 생각지도 못하게 전부 날려버렸다. 일방적인 통보, 요즘 들어 회사에서 내는 발령이 한사람의 인격으로서 인정을 해주는 것인지, 그 인격조차 없이 물건 대접 받으며 이리저리 옮겨 놓는 그런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쉽게 생각하면 인생은 예측 할 수 없기에 그냥 편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면 되는 것 이지만 그리 쉬운 일이었다면 어떤 일이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수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밝고 맑은 생각을 위한 계획, 나 자신을 위한 계획, 그리고 앞을 위한 계획 등 많은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린 이 계획들은 쓰레기 마냥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고 생각했던 계획들은 앞으로 이뤄 내기엔 조금 어려운 계획이 되었다. 과연 지금 현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으며 나 자신을 위한 길에 대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초안부터 다시 작성을 해야하는 아주아주 안타까운 상황.

 

 

마지막 날 오후 5시 55분.

분명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고 짜증만 가득 가지고 있었던 나지만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무언가에 대한 압박과 견딜 수 없는 떨림이 나를 사로 잡기 시작했다. 늘 정시가 되면 칼 퇴근 하기 바빴던 나의 발이 정각 6시에 도달 했을 때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분 또한 이상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한 단어가 나의 마음 속을 조여오게 만드는 순간, 머리는 이해가 되었지만 내 몸이 이해를 못해주는 그 시간. 정말 이제는 가야하는 순간이라고 확신에 찼을 때 즈음 나의 사물함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 둘 씩 빠져나와 텅 빈 모습으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물건을 담아 주었던, 문이 고장이라 다른 누구의 사물함보다 문 여는 소리가 크게 나 끊임없이 고쳐야만 했던 시간들, 하나하나가 내 눈에 들어오고 밟히는 순간 이었다. 분명 그 매장에서 나는 좋았던 기억보다 좋지 않은 기억이 훨씬 더 많았던 게 분명하다. 그 곳 생활에서 정규 앨범 또한 만들었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그 곳, 매장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하고 문 밖을 나선 뒤에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보안 담당자도 심지어 모든 직원들도 날 막지 않는다. 하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설명할 방법 조차 없이, 말 할 수도 없이.

 

 

마지막 날 오후 10시 20분.

아쉬움이 남는 몇몇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술집은 두 군데로 압축 되었다. 나와 Soulmate 와 늘 함께 갔던 일식 이자카야, 우리나라 포장마차 느낌의 작은 술집,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다. 분명 업무 마치고 Soulmate와 함께 갔던 그 곳을 다시 눈에 담기 위해 혼자 가서 즐겨먹던 산미구엘 500을 시켜 마시려 했으나 아쉬움이 많은 회사 직원의 요청으로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모두들 모인 시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처음 이 곳에 와서 봤던 풍경들이 하나하나 겹쳐지고 시간들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나도 모르게 갖게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곳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곱씹으며 하나하나 추억 할 때 즈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문장. ‘내가 일부러 이 곳에 와서 이 시간 (오후 10시 이후) 에 술 마시러 오지 않는 이상 이 곳에서는 자연 스럽게 한잔 할까? 라는 말로 술 마실 일은 없겠구나.’ 너무나 당연하지만 너무나 아쉬운 그 한 문장. 결국 일식 이자카야로 가게 되었고 자리를 잡아 착석 하였다. 그렇게 살갑지 않은 가게 주인과는 많은 시간 방문 했던 것 때문에 기억해 줄 수 밖에 없었고 짧은 인사와 나의 Soulmate의 사정을 전하고 나 또한 이 곳을 벗어 나는 것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이 가게 에서 저랑 친해 지신 분들은 전부 떠나시네요.” 의 말 한마디와 작지만 아쉬움이 담긴 짧은 웃음을 나에게 남겼다. 술잔을 기울이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고 가고 자리는 생각보다 즐겁게 이어져 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1시 20분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2일 전부터 계속 신경이 쓰인 탓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입술에는 누가 봐도 ‘얘 피곤 하구나.’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훈장 하나가 달려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고 버스에서 하차 후 택시 승차 그리고 집으로 도착.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34년 5개월 동안 같이 살아온 부모님과 형제의 곁을 떠나 멋있는 걸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만들게 된 작업실 겸 나의 주거 공간. 첫째 날 밤을 떠올려 보았다. 슬픔이 가득. 분명 너무 좋을 것 같았던 나의 첫날은 그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가족들의 모습과 즐거운 시간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슬픔에 잠긴 채 하루를 보냈던 그 날. 그래도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슬픈 건 마찬가지.

최근 2달 전 왜 시작과 끝이 있을까 라는 주제로 혼자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반복은 있지만 그래도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하고 너무 무거웠던 이 주제를 혼자 감당해 내자고 결론을 내린 뒤 그렇게 흘러버린 두 달여의 시간, 나에게도 작은 시작이 아닌 큰 시작과 함께 끝이 다가왔다. 끝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렇게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우리의 인생.

인간은 적응 하는 동물이라고 하였지만 적응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확실히 힘든 부분도 있다. 모든 것은 사소한 감정 하나로 결정되고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약간의 숙명같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다가 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100% 완벽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당한 것들이 없이 웃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며..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