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月及

 

 

kurt youn

 

Alex Yu

한걸음

 

GUEST

소설가 권해욱

외로움에 관하여

 

nuh

日本  紀行文 (05 完結 )

 

 


 

 

 

 

kurt youn

가을

 

 

 

몸이 녹아내릴만큼 피곤한 상태에서 잠이들었다.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 때 친하지도 않았던

일년에 10마디 이상 말해보지 않았던 친구가

꿈에서 나를 아는 척 했다.

그것도 아주 반갑게..

 

꿈에서 깨어나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잊고있던 옛날 기억들이 꿈 하나로 압축이 풀려

내 기억의 바탕화면에 몽땅 풀리듯

지나간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잊은지 오래된 기억들이..

 

 

초등학교 때 비를피해 학교 느티나무에 올라가서

친구와 타잔흉내를 내던 기억부터..

부끄럽고 행복하고 슬프고 즐겁고 아름답던 모든 순간들이

출근하는 내내 마음 한켠을 아쉽고 그리운 감정으로 채워준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어릴적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쟁같은 일상을 보내고있다.

 

그래 오늘 하루도

먼 훗날 언젠가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날이 있을테니..

힘을내자..

 

힘을내자..

어릴적에 순수했던 그 날들이 아직 마음속에 불씨처럼 남아있을지도 모르니..

 

 


 

 

 

 

Alex Yu

한걸음

 

 

photo by Kurt youn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사는데 걱정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몰라도

무모하게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도 커졌다.

빠르게 후다닥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크게 들지만,

당장의 생활이 불편해질까봐 ‘아직은 아니야’ 라며 고개를 젓는다.

고개를 저어가며 저어가며 그래도 천천히 걸어 나온 지금.

이제 딱 한 발자국 남았는데……

이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우린 잘 될거야… 그치?’

 

마지막 한 걸음을 앞두고 매번 하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GUEST

소설가 권해욱

 

외로움에 대하여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보람된 일 기쁜 일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중해 져버린 인간관계다. 예를 들면 학창시절 학년 초에 친했던 친구랑 학년 말에 진짜 10년 지기가 된 친구랑 전혀 다르다. 항상 그렇다. 과거를 돌아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과 친해져 있는 나를 그리고 친구를 발견한다. nuhthings의 멤버도 그렇다. ‘쟤 뭐야! 등치만 커 가지고.’ 그러던 사람이 이제 그냥 아는 사람 훨씬 이상이 되어 버렸다.

 

일본에 와서 처음 그런 인연이 생겼다. 타쿠미, 필명 쿠로헤비(黒蛇, 검은 뱀)라는 23살 청년 서예 예술가다. 처음 미야자키에 도착하자마자 같은 집에 살게 되어 알 수 밖에 없어진 인물인데, 처음에는 도저히 친해 질 수 없는 분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자기 세계에 빠져있고, 예의가 없진 않지만 주변 사람 별로 생각 안하고 노란 머리에 검은 옷만 입고 다닌다.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해 있다. 같이 여러 명 이랑 길을 가도 혼자 떨어져 허공에 대고 상상의 붓을 놀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얼굴도 넙데데한 게 무표정으로 있으면 영락없는 조폭이다. 웃을 때도 별로 친숙함 부드러움 느낄 수 없는 그런 웃음 짓는다. 살이 흰빛이라 그나마 다행인.

 

처음에 서가(書家)라 해서 관심을 가졌지만 어떻게도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그러다 알게 된 지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고기집에서 고기를 먹는데 나에게도 글을 써 주겠다는 것이다. 같이 한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말을 섞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도 써 주겠다는 작품은 써 주지도 않았지만.

 

 

그러던 어느 날이다. 쿠로헤비가 지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다고 했다. 지역 예술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방송화면을 나를 포함 셋이서 같이 보고 마사미가 평을 한다. 우리 집을 관리하는 33살 유부남이다.

 

악평 일색이다. 무슨 이런 말을 왜 했냐. 이지매 당한 이야기 뭐하러… 어법이 틀리다. 표정은 어쩌고 저쩌고. 이런 경우는 말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마지막은 처음 하는 거니까 괜찮다. 담에 잘하면 되니까 좋게 들어라. 칭찬은 하나도 없었다.

 

쿠로헤비는 마사미가 가고 나서 굳은 표정으로 칼이라도 있으면 누굴 찌를 눈을 하고 쇼파에 몸을 누인다. 33살 청년은 23살 예술가에게 뭔가 역할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설픈 선생. 아직 어린 예술가임은 분명해서 나도 걱정스런 마음으로 이 일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냐 물은 적 많지만, 이런 식의 선생질은 어린 영혼을 죽이는 선생질이다. 게다가 마사미는 그냥 동네 형일 뿐, 화려한 학력도 경력도 일천한 사람이다. 집 빌려 하숙이나 치고 사는 사람이다.

 

 

옆에 쇼파에 누워 시종일관 듣고 있던 나는 절망스런 얼굴로 누워 있는 아직 서먹한 사이의 쿠로헤비를 도저히 그냥 놔 둘 수 없었다. 안되는 일본어로 몇 마디를 해 주었다.

“티쿠미(쿠로헤비 본명)군! 마사미 이야기 듣지마. 그냥 잊어버려, 전부! 일반인이 예술을 평가할 수는 없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었어. 출연 완벽 했어. 이지매 당했단 이야기도 괜찮아. 예술가라면 자기 삶의 진심을 예술에 담는 게 당연해. 자기 스타일 그대로 밀고 나가. 남의 말 듣지 마. 재능이 있으니까 자신의 본능만 믿어.”

 

또 그러던 어느 날. 전날 맥주를 잇빠이 마시고 일어난 아주 화창한 일요일 가을 날 아침이다. 눈 비비며 엉덩이 북북 긁으며 냄비 밥 짓고 있는데 쿠로헤비가 나보고 어디 같이 가자고 한다. 어디냐 물으니 소학교라 했다. 사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단다. 나는 그냥 인스타 올릴 사진 잠깐 찍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학교 일요일 바자회 행사에 서예퍼포먼스 초빙이었다. 3백명 정도 학부모학생들 앞에서 집 안방 만한 크기의 종이에 내 주먹만한 굵기의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 모습을 전부 내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온 몸이 먹물 범벅이 된다. 그 넓은 백지에 첫 먹물이 들어갈 점을 아주 오랬 동안 온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누굴 죽일 것 같은 눈으로 그 점을 찾는다. 찾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다. 어디에 먹물 첫 방울을 떨어뜨릴까? 초조한 맘으로 땅속에 숨겨둔 먹을 거릴 찾는 두더지 같이. 사정없이 두 발로 땅을 파는 두더지, 사냥개 같이. 첫 점을 찍은 후는 대중없다. 몸이 가는 대로 자기의 필체 대로 그냥 붓은 사정없이 전진한다. 배경음악은 반드시 틀어놓는다. 학부형 학생들 앞에서 linkin park, one ok rock, 사정없이 전자기타 긁어대는 소리. 8살 때 동네 형한테 5년 동안 성폭행 당한 소년의 보컬 이랑 쿠로헤비의 필체랑 똑같다.

 

놀라운 점은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쿠로헤비의 쓰는 걸, 손이 가는 길을, 붓이 긋는 굵고 다변하는 검은 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놀라웠다. 붓놀림이 사람의 발걸음과 눈을 멈추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서예를 누가 보기나 할까 생각 했단 나였다. 그날 개인 작품 돈 주고 사 간 사람들도 전부 30대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날 쓴 작품은 한 글자였다. 그 넓은 지면에 단 한 글자. 繫. 연결

 

끝내고 사회자의 마이크를 뺏어 그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 자기가 이지매 당한 이야기. 그리고 어린이 여러분도 힘내라는 이야기.

 

퍼포먼스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감동적이어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쿠로헤비는

“켄상에게 내가 글 쓰는 모습 꼭 보여주고 싶었어.”라고 했다.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전혀 예상 못한 말이었다. 이토록 외로운 게 예술가였던가!!!!!!!

 

일본에서의 예상 못한 인간관계가 나오미가 아니라 쿠로헤비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nuh

 

 

 

한순간이다. 태어나고 선택하고 죽는 것. 모든 순간순간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나며 또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변화가 시작된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던 가족 상을 최근 맞았다.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사실 할머니와의 왕래는 많지 않았다. 할머니를 싫어 해서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 할머니를 굉장히 좋아하고 사랑한다. 장례식에는 많이 갔어도 내가 장례에 참여 한 것은 처음이라 하나하나부터 세세하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집에서 짐을 챙기고 가족과 함께 내려가는 길, 오랫동안 보지못했던 친척들과의 만남, 장례 준비, 모든 것이 예정 된 듯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새벽 2시 다음날을 위해 잠을 청해야하지만 빈소에 마련 된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선뜻 잠이 오지 않았고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잠깐 두시간 가량 쪽 잠을 자고 조문객 맞이를 시작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아는 사람들, 가족, 여러 사람들이 와서 할머니의 상을 위로해 주었고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 가고 있었다. 입관을 마치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다음날 화장터로 이동하여 화장 후 가족 선산에 할머니를 모셔두고 내려왔다. 그리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 후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마음이 무겁다. 삶 이라 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끝나게 되는 것이며, 몇 십년을 살아온 인생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볼 때 과연 우리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태어나서 해야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 즐기고 싶은 일과 돈을 버는 일 정도로 나뉘는 거 같다. 돈은 인생에 궁극적인 목적 겸 꼭 필요한 것을 하기 위해 있어야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사실 모든 것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하기 위한 시간 투자를 해야하며 또 익숙해 지기 전까지는 많은 시간을 소비 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돈은 꼭 물건을 사기 위한 것만이 아닌 우리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일생을 살면서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악착 같이 일하며 살아간다.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고 단순하게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철부지 어린 아이였다.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삶이라는 것에 절박함이 느껴지고 부익부 빈익빈 과 같은 말을 실제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돈의 무서움과 살아가는 것에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재미있게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돈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보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면 무언가가 내 가슴을 짓누르는 거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이 전부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도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은 것 같다.

 

 

17년도에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계획도 했지만 벌써 10월의 끝자락. 17년의 10개월을 지내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정작 내 자신이 계획한 거에 대해서는 이룬 것이 별로 없다. 시간은 이리도 빨리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은 나를 위해 잠깐이라도 멈춰 주지도 않는 이 슬픈 현실 속에서 과연 얼마만큼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결국 열심히 사는 것만이 답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현실 속에서 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너무나 어려운 삶의 연속에서 크나큰 일을 겪고 난 뒤에 오는 공허함과 앞으로의 걱정들이 나를 사로 잡고 있는 요즘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충실하고 꾸준하게 열심히 살며 효도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차피 시간은 계속 흐르게 될 것이고 시작을 하면 끝은 언제나 찾아온다.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 나아가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기애를 좀 더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이라고 생각해본다. 적어도 내 인생은 즐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돈을 버는 것 만큼이나 인생의 즐거움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 그리고 소소한 일들이 주는 경험과 감동 그리고 슬픔이 우리를 성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살아가는 인생 동안에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나 라는 사람의 가치를 올리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는 것이 어떤가. 한번 뿐인 인생 속에서 무언가 이뤄 내는 것이 힘든 만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청춘과 많은 시간들을 아끼고 사랑해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미래를 더욱 아끼고 소중히 생각 하는 것이 진정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다짐해 본다.

 

 

日本  紀行文 (05 完結 )

 

 

눈부실 정도로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모든 것이 갖춰진 곳에서 눈을 뜨고 정성스레 차려놓은 아침을 먹게 되었다. 어제와는 다른 일본식 요리를 먹고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인 아리타를 향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하나 둘 물건을 챙기고 숙소를 나와 결제를 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예상보다 가격이 조금 더 나온 것이다. 카드를 받지 않는 특성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을 보태도 돈은 모자랐다. 결국 동행자는 인출을 해왔고 무사히 그곳과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역시 날씨는 우리를 도와주었다. 달리는 내내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여정 중 가장 긴 운전거리였기에 동행자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우리는 아리타에 도착하였다. 도자기 마을 답게 곳곳에는 도자기 가게 뿐이었다. 우리가 운이 없는 것인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출발해야하는 다음날부터 도자기축제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머물기로 한 숙소에 짐을 풀고 하나하나 둘러보기 위해 이동을 시작 하였다. 값이 비싼 도자기부터 일반 생활자기 등등 다양하게 많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모양의 자기 뿐이었다.

 

 

축제거리 안쪽 까지 이동하여 하나하나 세세히 둘러보면서 숙소 방향으로 걸어 내려왔다. 크게 볼 것은 없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장어덮밥 가게였다. 뭐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었다. 근처 대형 마트에 들러 오늘 저녁을 마무리할 음식과 술을 구매하고 슬슬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음식을 데워 방안에서 마지막 축제를 가졌다. 서로 별로 말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냥 이런저런 얘기 뿐. 늦게 잠이 들기를 바랬다. 아니 원했을 지도 모른다. 이제 다음 날 아침이면 돌아오는 날인 것을, 너무 아쉽지 않은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너무 일찍 잠이 들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피로 탓인지 저녁 9시 30분경에 잠이 들었고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잠자리가 예민한 나였지만 한번도 깨지않고 오전 8시에 일어났다. 전날 구매해온 일본 라면으로 속을 달래고 후쿠오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도자기 축제 날, 중간중간 상점마다 할인 상품을 판매 하였고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정말 저렴한 가격에 많은 자기들을 구매 할 수 있었다.

 

 

후쿠오카. 이상하게 그냥 싫었다. 제일 큰 쇼핑몰을 둘러보고 선물을 구매하고 점심을 먹고. 공항 도착. 출국 수속 후 출국장 도착. 편의점이 있었다. 맥주를 샀다. 연거푸 들이켰다. 또 사왔다. 또 들이켰다. 나는 세 캔 정도만 마셨지만 동행자는 아쉬움에서 인지 계속 마시기 시작했고 비행기에 올랐다. 잠든 동행자와 달리 나는 창문 밖만 바라보았다. 전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이전 여행과는 너무 다른 아쉬움. 한국 도착. 차량 탑승. 헤어짐. 한순간 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적응 되지 않았고 한국 도착 이튿날 출근. 일상에 너무 큰 변화 뿐이었다. 아니 내가 많이 변해 있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 늘 가던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의 다짐 “일본 가서 살려고.” 어떤 것을 하려는 남자의 다짐과 결심 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처음 동행자와 만났을 무렵이었다. 같은 직장 동료 였으며 내가 잠깐 본사에서 근무 했을 때 잠깐씩 마주치며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뭐 이 사람을 날 기억 할지는 모르겠지만. 매장으로 다시 발령을 받은 뒤 5년째 되는 해에 동행자가 같은 점에 발령으로 오게 되었다. 내가 음반 매장에 있을 때 “명훈씨 음반 냈다면서요? 그럼 하나 사야지~” 뭐지? 정말로 정말로 왠지 모르게 대화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왜 나한테 말을? 사실 하나 줄 수도 있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선뜻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렇게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고 이 사람도 이 일 이외에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예술에 대해 서로의 생각과 견해를 이야기 하면서 무척 가까워졌다. 새로운 작업이 떠올랐다. (안 끝날지도 모르는 시작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언젠가 끝날 수도 있는 작업) 산행을 결심했다. 이 사람에게 이야기 하였다. 같이 가자고. 그 전에 “일본 한번 같이 가면 좋겠어요.” 이야기 한적이 있다. 당일 치기로 가는 산행이었기에 가능 했으며 새벽부터 만나 기차를 타고 산으로 항했다. 산 정상에서 두 번 감동을 느끼기 위해 예거마이스터를 준비했다. 정상에 도착 후 한잔씩 마신 예거마이스터는 우리의 생각을 열어주었다. 그전까지 계속 고민이었던 이 사람은 “그래 가자.” 한마디와 함께 이 여행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2개월간의 준비.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이 사람이 짜 놓은 스케줄, 그 스케줄을 보고 동의 할 수밖에 없이 짜놓은 이 사람.  그 스케줄이 싫지 않았다. 너무 좋았다. 단,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견 제시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이 싫었을 뿐이다. 어떤 우연에서인지 무언가 즐거운 마음이었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결단력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 여러 번의 술자리에서 대화 도중 추천해준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은 완전 바뀌었고 예술을 대하는 마음도 변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이 여행이 마무리가 된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현재 그는 일본에 정착하기 위해 여러 곳에 면접을 보면서 일본을 느끼고 있으며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다. 나는 12월경에 발매 예정인 작은 작품을 위해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돈 버는게 더 중요하니까.

일본은 몇 번 다녀왔다. 이번 여행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물론 방법도 다르고 지역도 달라서 내가 받아들이는게 차원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감대가 형성 된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얻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작업이라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디테일 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에 대해 두려움 있었고 또 다른 말 못할 이유도 있었다. 모든 것을 깰 수 있었다. 이 사람의 말과 추천 해준 도서, 그리고 미야자키 여행. 내가 여태까지 생각해 왔던 것들이 모두가 무너지는 순간 이었고 더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드는 걱정 근심 거리가 지금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빈도가 작아짐에 따라 더 작업에 집중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정녕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 이었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나의 길을 잡아주는 여행 이기도 하였으니까.

이후 9월 후쿠오카에서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4월 미야자키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고 이번에도 멋진 여행이 만들어 졌으며 우리는 새벽까지 즐기다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수 많은 대화 속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 바로 예술이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 입니까 하고 물어본다면 몇가지 중에 단연 이 여행은 꼭 들어 갈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인가. 이제 35세, 만으로 34세인 내 나이에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동년배, 그리고 나보다 젊은 청춘들, 모두 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꼭 그 꿈을 위해 살아가지 않더라도 내가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마음을 우리 가슴 속 작은 한 켠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러한 감정들이 어느 순간 확고해 지는 시기가 분명 오지만 그것이 당장 내일일지 아니면 노인이 되어서 일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17살부터 꿈꿔왔고 이루고 싶었던 나의 소망이 한 밴드를 통해서 이룰 수 있었고, 궁극적인 나의 목표였던 개인 작업을 내가 바래 왔을 때의 나이 만큼이나 지나고 나서, 17년이 지난 후에 또 한번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미야자키 여행을 통해 다음 목표를 향해 준비하기 위한 더욱 성숙된 내 자신을 만들 수 있었고 이 마음 작은 구석진 공간 안에 넣어 둘 수 있는 작은, 때로는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큰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무언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반 고흐의 이야기처럼 인생은 도전의 연속인 것이다. 나 자신도 어떠한 방향과 길로 갈지 예측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믿는 마음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감동은 때로는 단순한 즐거움 일수도 있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하기에 앞으로 있을 새로운 여행의 여정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생각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더 멋지고 빛나는 당신과 나의 인생을 위해.

 

우리 우정 영원히 변치 않길 바래요.

 

 

nuh & Kwon

170424 ~ 170429 미야자키 여행기 完

 

nuh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