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月及

 

 

MinHo Yu

인생템

 

 Alex Yu

번역 그리고…

 

nuh

당신의 인생은 과연 얼마나 소중한 선택을 해왔는가.

 

 


 

 

 

 

MinHo Yu

인생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이시니 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한복음20장27절~29)

 

성당이나 교회를 좀 다녀봤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구절은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그의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제자 중 한명인 도마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자 도마를 향하여 한 말이다.

그리고 신부님의 따라오는 레퍼토리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정한 구원을 받는다.”

난 솔직히 어린 마음에 이 이야기가 정말 싫었다.

신부님은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어차피 크리스마스 선물도 부모님 주머니 사정 따라서 적당히 정해지는 거지 나의 선행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걸 알아버린 마당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을 믿으라는 신부님의 말씀은 야속하기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도 않고 세상 가장 못 믿을 건 사람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이미10세 이전에 깨달아 버린 마당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니

그런데 살다 보니 이제야 이 믿음의 용도가 무엇인지 조금 깨닫는다. 일명 “즉시부활효과”이다.  온라인 게임을 해보면 알게 된다 사냥을 하다 죽으면 죽은 자리에서 흘린 아이템을 주섬주섬 주워서 원래 자신이 사냥하던 포인트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이다시피 이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서 등장한 것이 “즉시 부활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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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라는 게임에서 무일푼 쪼렘 유저로 살아가다 보면 필드사망은 일상 다반사이다. 그저 일정 레벨이 되고 아이템이 갖추어질 때까지 존버(존 나게 버틴다) 만이 살길이다.

그러려면 바로 이 부활권이 많이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재료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은 이 믿음이란 놈이다. 그래야 사냥터에서 뻗어버려도

얼른 네 캐릭터를 살려내 사냥터로 즉시 복귀가 가능하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한번 시작하면 리셋버튼 없는 오픈 월드 서바이벌 어드벤처RPG쯤 되는듯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요즘 사람들이 만성 불신자인지라 신은 고사하고 나 조차 믿질 못한다. 믿음은 개나 줬다. 말 그대로 자발적 신용불량자 인 것이다.

자꾸만 나를 의심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도마 보다 더하다 내가 여기서 만져지고

느껴지는데 자기자신을 자꾸만 부정하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그래서 이 부활권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미리 미리 준비하길 바란다.

나처럼 개 고생 하지 말길.

 

어차피 선택권 없는 강제 부활이다.

왕이면 좋은 아이템 인벤에 꽉 채워서 편하게 가자.

 

 


 

 

 

 

Alex Yu

번역 그리고…

 

 

나는 한국인 아티스트nuh와 일본인 아티스트 黒蛇(쿠로헤비), 그 사이에 있었다.

 

나름 일본어 학과 출신이기도 하고 과거3~4년간은 일본제품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현장의 비즈니스도 해본 입장이라 어느 정도의 번역에는 자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한 번역은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결말을 기다리는 정치인의 회담 번역도 아닌, 비즈니스의 계약관련 번역도 아닌,

서로의 국가가 좋아서 연예인이나 드라마 등의 이야깃거리를 꺼내는 자리도 아니다.

 

그저 서로 각자의 국가에서 각자의 생활에 맞게 적절히 자라온 성인 두 사람이,

갑자기 만난 자리에서 본인들의 감정을 막 끄집어 내듯이 말을 던진다.

 

서로의 공통점은 그저 아티스트 라는 것, 심지어 장르도 다르다.

 

나는 그 둘의 감성을 가능한 서로가 정확히 느끼게끔 전달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뜬금없이 막 던지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잘 해야 했다.

 

nuh와 나 단 둘이 대화했던 내용도, 黒蛇와 나 단 둘이 대화했던 내용도,

셋이 만나면 불현듯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갑자기 튀어나온 그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도 설명해야 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도 가능한 정확히 설명해야 했다.

 

이 셋이 만난 후 나는 다음 날 출근으로 인하여 늘 집으로 귀가 했지만,

nuh의 집에서 묵게 된 黒蛇와 집주인nuh의 이어지는 대화에도,

귀가 전 만나고 있는 동안의 이야기 속에서 번역이 잘못 되어

nuh의 집에서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만나는 동안에는 내 이야기를 줄이고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쪽 귀에는 일본어, 한쪽 귀에는 한국어, 게다가 아티스트 특유의 민감한 감성이야기…

 

그저 단어의 선택이나 어휘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 아티스트의 인생이 오롯이 담긴 말을 전달해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내 자신의 일본어 실력에 대한 시험 같은 느낌도 들었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번역이 힘들었냐고? 아니다.

 

이 만남을 통해 나를 매개체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워서,

다음 날 출근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런 힘듦을nuh에게도 엄청 표출하였다, 정말 미안했다. (이 자리에서 사과한다.)

 

그리하여 지독한 나 혼자만의 두뇌 속 우여곡절을 겪고 시간이 지나,

이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 계획에 관한 대화까지 오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선택의 기로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nuh

당신의 인생은 과연 얼마나 소중한 선택을 해왔는가.

 

 

모든 순간순간은 선택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밖에 나갈 때도, 잠을 청할 때도 모든 것이 선택이다. 우리가 의무적으로 출근 하는 회사도 사실은 갈지 말지 고민 할 수 있는 것이지 꼭 가야하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듯이.

의도치 않은 몇몇의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내가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제공 해주는 방법과 지금 이 자리에서 머물 수 있는 머물게 되는 방법, 하지만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은 이미 선택이 되었지만 현실이라는 장벽에서 너무나 크게 부딪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서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이 기로에서 올바른 길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생각,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적인 마음, 이 모든 것이 지옥같은 하루 하루의 일상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즐거운 기운이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맞다 생각 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는 것이 인생인데 앞으로의 예측 할 수 없는 모든 미래에서 과연 얼마나 옳은 길을 선택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기분 좋은 생각으로 ‘순리에 따른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 ‘이런 것을 답으로 염두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 인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나게 되어있으며, 그 결론으로 인해 바뀌어가는 내 삶을 생각해보면 한번쯤 너무 사소한 선택이라도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한 것도 좋지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 해본다면 내 인생도 꽤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삶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그 모든 사람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주변의 눈치와 오지랖, 그런 것에서 오는 자괴감과 나 자신을 점점 낮추는 그런 행동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소중하게 보이는 내 삶이 본인 스스로는 자신을 하찮은 사람, 쓸모 없는 사람으로 평가 하게 되어 버린다면 이 삶이 타인의 삶일 뿐. 본인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내 선택과 나의 길인 것을.. 그것을 남이 평가해주는 것, 남의 의견대로 살아가는 것 과연 그게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번 뿐인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결국 그 사람과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뿐, 그 우정을 위해 내가 원하는 선택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각자의 인생은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 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각박해저가는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우리를 위한 좋은 길로 인도 해주는 세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조금 더 윤택하고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시간과 행복을 만들어 나아 갈 수 있는 조금의 틈이 있을 때 과감히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인생에서 더욱 즐거움과 나를 발전 하는 삶으로 선택해보는 것은 어떤가.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