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月及

 

 

MinHo Yu

너 왜 사니?

 

Kurt youn

방학

 

 Alex Yu

차이, 그 첫번째와 두번째

 

GUEST

소설가 권해욱

자서전-아버지

 

nuh

눈치 그리고 참회

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MinHo Yu

너 왜 사니?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고민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철학이나 인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춘기 시절을

보내셨다면 누구나 적어도 한번은 해봤을 고민 같은데요

사람이 살려면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집, 차, 음식, 옷 물론 이러한 것들이 요즘에는

돈 이라는 파란 종이 쪼가리로 어지간히 해결이 되기도 합니다.

서글프게도 돈으로 해결 안될 것 같은 사랑도

이 파란 종이 쪼가리로 네고가 가능해진 참으로 아름다운 중고나라 같은 세상인데요

참 신난다. 그죠?

 

그런데 문제는 왜? 인데요 다들 왜 사세요? 그럼 이렇게 말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죽으리?” 태어났으니까 살지. 그런데요 이 왜? 라는 말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나이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 자기계발 서적을 종종 읽어요 그런데

사실 이 책들이 읽다 보니 다 비슷해요 자기절재, 믿음, 인내 이런 것들이 써있어요

그리고 각종 뼈 때리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왜 지금 당신이 이런 것들을 해야만 하는지 주저리 주저리 써있어요 이대로 실천만 되면 많이 읽을 필요도 없어요 1권이면 다 스티브잡스 같은

성공한 인생을 살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 말로 소위 말하는 동기부여 라는 걸 하기 위해서

이런 책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인간이란 어찌 보면 참 미련하죠?

지가 하기 싫으면 절대 안 해 아니 못해요 좋은걸 알면서도 운동을 못하고 맨날 결심만 하는

우리처럼요

그럼 이 논리 데로 사면 우리 죽어야 되는데? 왜냐고요? 우리 왜 사는지 모르잖아?

그런데요 우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솔직히 그런 적 있지 않나요? 친한 사람이 죽어서 상갓집에 갔더니 육개장이 맛있어

여자친구랑 이별을 해서 너무 슬픈데 TV에 나오는 개콘이 웃겨

얼마 전에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다가 특이한 제목의 책을 봤어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는 제목이었는데요 사실 읽어보지 않아서 내용은 몰라요 그런데요 개인적으로 뭔가 쉬우면서도 여려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제목 이구나 싶었어요 죽고 싶은 사람을 세상 잡아두는

것이 고작 떡볶이 라니. 그러면서도 그저 맛난 떡볶이 한 접시면 되려나? 그만한 행복이면 세상

살아갈만한 싶기도 하고요

하긴 우리가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고 지구를 구할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한테 필요 한 건 지구를 구할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걸핏하면 뚜껑 열려서

죄다 날려 버리겠다는 2호기를 같은 우리를 뜯어말려줄 누군가 입니다

 

나도 싫고 너도 싫으니 미사일 날려서 다 죽자 이러면 곤란해요 어렵고 힘들지만

떡볶이나 한 접시 먹고 릴렉스 해서 잘 살아 보자 구요.

 

 


 

 

 

 

Kurt youn

방학

 

 

주말도 없이 일에 치여, 여유 조차 없는 나날을 보냈다.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족을 포함한 내 주변을,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던 미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nuhthings 말이다.!

긴 침묵과 방황 아닌 방황에도 대론 격려와 응원을, 때론 함께 안타까워하며 멀리서도 힘이 되어주던 사람들..

늘 이번 달, 이번 달.. 하면서 미루고,잊고, 지나쳤던”월급”

미안함과 게으름, 약속에 대한 책임감..

점점 멀어지던 나의 꿈과 열정이 한순간 나를 깨어나게 해 주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두서 없고, 재미도 없지만 적어본다. 9월의 추억들을..

 

나이게9월은 늘 마음 한편이 아련한 시간이다..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하늘이 너무 맑아서 슬펐던 논산 훈련소의 입소식..

 

늘 방학이 그리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새학기…

 

가을이면 버스 타고 창 밖을 구경하던 사춘기의 가을..

 

9월은 나에게 기쁘고 행복한 기억보단, 그리움과 슬픔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매년 떠오르는 기억은9월 논산훈련소 입대하던 날이다.

남자라면100에99는 가기 싫어 하는 군입대..

한학기를 휴학하며 즐거움 가득하던 추억을 뒤로하고 입대하던 날, 논산의 하늘은 정말 맑았으며, 입대하기 전 줄담배는 아무런 맛이 없었다. 정신 없던 훈련소 생활에도 틈만 나면 하늘을 보며 밖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했다.

잔인하게도 훈련소 기간 날씨가 좋아 하늘만 봐도 모든 게 그리웠다.

지금도 가끔 하늘을 보면 그 때가 생각난다. 9월에는 더욱 더..

어쩌면 그리움 보다 맘을 아프게 하는 건

전역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21살의 내가, 시간이 흘러 일에 치여 하루하루 여유도 열정도 없이 그저, 살아 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도 날씨가 맑다고 한다.

내일도 반팔이 선선한 아침공기만큼 마음 한 켠이 쌀쌀할 것 같다.

 

 


 

 

 

 

Alex Yu

차이, 그 첫번째와 두번째

 

 

어찌하다 보니 해외를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나가게 되었다.

 

첫번째는 내가 원해서

두번째는 원치 않게…

 

첫번째는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두번째는 남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첫번째는 억지로 외국어를 구사 할 이유가 없었다.

두번째는 억지로 외국어를 구사할 수 밖에 없었다.

 

첫번째는 여유가 많았다.

두번째는 여유가 없었다.

 

첫번째는 힘이 들지 않았다.

두번째는 힘만 많이 들었다.

 

첫번째는 미래의 꿈과 생활을 바라보고 왔다.

두번째는 현재의 처절한 생존을 느끼고 왔다.

 

첫번째는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

 

첫번째, 두번째, 그렇게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GUEST

소설가 권해욱

자서전-아버지

 

가게 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장사 거의 다 한 듯하다. 그래도 아침에 양말 좋다고 다시 방문해주신 아주머니 때문에 다운되었던 멘탈이 많이 회복되었다.

 

저번 주에 너싱스 맴버 둘이 다녀갔다. 3박4일이 얼마나 짧은 기간인가를 확실히 깨우쳐주는 시간이었다. 항상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술 더 마시고 이야기 좀 더 많이 할 걸, 여기 저기 더 가볼 걸, 뭐 그런 후회. 하지만 막상 닥치면 피곤한 몸 때문에 먼저 잠들거나 돈 없다는 핑계로 가 볼 만한 곳도 안가고 말기 일쑤다. 인간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아주 하찮은 일상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아주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느껴야 분수를 알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도 알랙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자주 만날 시간도 없고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이야기 좀 많이 해야지 했었다. 나중에 두 사람 보내고 나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알랙스 이야기만 듣기만 하고 내 이야기를 거의 안 한 것 같았다. 무슨 내가 면접관도 아니고 물어보기만 했던 것 같다.웃기다. ㅋㅋ

 

그래서 말인데 내 지난 날을 좀 이야기 해 드릴까 한다. 작가의 관점에서. 작가라는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이라는 단어를 뺄 수 없다. 물론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들 다 하는 것 많이 못해보고 자란 건 사실이다. 나의 가난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존재가 아버지다. 가장이 돈을 못버니 가난한 거니까. 아버지는 어릴적 사고를 많이 당해 정신이 이상해졌다. 거기에 대해 그 누구도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좀 그렇지만, 이모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머리다친 일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큰 아들만 챙기고 작은 아들인 우리 아버지는 심하게 편애했던 일이 더해져서 그렇게 된 거라고 추측이 된다.

 

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똑똑했지만 가난했던 집안 출신인 엄마와 아빠사이에 싸움은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내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대학 졸업 즈음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가26살이었으니까 내인생26년동안은 항상 불안한 마음에 살았던 것 같다. 막연한 불안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그런 느낌. 그나마 고모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시킨 뒤로부터는 정서적으로 훨씬 안정되었다. 가족의 울타리 밖, 저 멀리에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가끔씩 있지만 대부분 아무 느낌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릴적부터 아버지와 추억이 전혀 없어서다. 항상 무기력하고 자식이라고 특별히 다른 아빠들하고 다르게 뭔가 해준것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신병원 입원 후 빛의 속도로 아버지를 잊어버릴 수 있나보다. 입원 후 처음 몇 년 동안 명절마다1년에 한 두 번 면회를 갔었지만, 이후 다분히 의도적으로 거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정신병원에서 나와봐야 세상에 치이고 엄마에게 치이고 고통만 더 받을 뿐인 인생이다. 병원이 더 편안할 것이다. 가끔 여동생이 나에게 말한다. “아빠 어째?” 그럼 나는 “어쩌긴 뭘 어째. 아빠에게는 저 생활이 더 낳아. 너도 알잖아.” 그럼 동생은 “그래도 불쌍해서.” 그러고 마는 것이 우리 남매의 아버지에 대한 대화의 전부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으니까.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일단 여기까지만 이야기 해 드리겠다. 시간 많으니까. 누가 들으면 참 어렵게 살았구나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보다 더 어럽게 산 사람들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역사의 핵심주재는 아버지의 존재감 없음이다. 내 인격과 정서를 형성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날 감싸고 있던 불안감이 부정적이지 많은 않다. 반대로 그것이 내 삶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뭔가 삶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 그리고 내 딸에게 추억이 많은 아빠로 남는 것, 다른 아빠들하고 비교했을 때 결코 품질이 나쁘지 않은 아빠로 남는 것, 그런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확신이 되었다. 그런 가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내인생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적이 없다. 가난했지만 밥은 먹고 살았고, 눈비를 맞은 적도 없고 공부도1등까지는 아니지만 상위 등수에서 서성거렸고, 대학졸업 후에도 쿠로헤비처럼 노숙을 했다던지 그런 어려움 없이 중요고비마다 일이 잘 풀렸다. 지금 내가 일본에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제로 와서 살 수 있는 이유도 이런 내 인생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뭔가 막연히 잘 될 거라는 느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할 수 없지만99%확실한 그 느낌.

 

일부는 내 소설 예루살렘에 조금씩 섞여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올 다른 소설에 꼭 등장할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버지로 돌아가는 이야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주인공은 우리 아버지와 나와 똑같은 부자지간이다. 지금 나처럼 아버지 정신병원에 버려두고 젊은 시절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살다가 처자식과 남남되고 고생하고 돈 다 잃고 방황하다 다시 재기한 인생. 50대 초반 쯤 되어 평생 먹고살만큼 돈을 다시 모은 다음, 재혼을 하거나 다른 사업을 벌이지 않는다. 바닷가 한적한 곳에 집을 사고 조그만 통통배를 한 척 산다. 그저 하루종일 낚시나 스쿠버다이빙,서핑을 하고 산다. 밥상은 늘 생선국에 횟감. 그리고 자식이 외면한 세월 동안70을 넘겨버린 아버지를 집에 대려다 놓는다. 마치 그동안 정신병원에 넣어 놓은 걸 속죄라도 하듯이. 아버지에 대한 아무런 느낌도 없는 아들 주재에 내가 죽기전에 꼭 그렇게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왠지 그렇게 해야 뭔가가 완성되는 느낌. 마치 한국인 밥상에 국이 없으면 안되듯.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자기의 지난 흑역사에 아무느낌없다. 그저 나를 보면 웃고”밥은 먹었냐?”하고 자동음성안내장치처럼 언제나 똑같은말만걸어올 뿐이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가 소설로 탄생할 것이다. 현실이 될 가능성도 조금은 있지만 아주 희박하다. 아내와 딸과 우리 아버지를 같이 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며느리가 있는 이상 나와 아버지가 같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조금은 웃기기도 하다. 아버지도 내 가족이고 아내도 내 가족인데 아내와 아버지는 한 집에 사는 가족이 될 수 없다니.

 

 


 

 

 

nuh

눈치 그리고 참회

 

 

지난 십 몇년간 있었던 일들을 토대로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렸을 적에 나는 항상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모든 일과 문제에서 척척 해결을 해내고(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평범하지만 공부는 못하는 평범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되었다. 첫 자대 배치를 받았을 무렵, 우리 소대는 구타 사고가 일어나 구타한 선임은 영창을 가게 되었고 그 사건이 있은 지 딱1주일 만에 내가 신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소대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 했다. 나의 군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만 계속 따라다닐 거라는 생각에 마음은 굉장히 무거웠고 군대 전역한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군인인 시절에는 누구나 효자이고 가족이 가장 그리울 시기일 것이다. 가족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 와중에 소대 최고 고참이 나를 불러 자기 앞에 앉혔다. 겁을 주기 시작했다.그리고 가족에 대한 것을 묻기 시작 하였다.

 

“형은 뭐하냐?”

 

“군인입니다.”

 

“지금 계급이 뭐냐?”

 

“상병입니다.”

 

“너랑 너네 형이랑 짬밥 합쳐도 나보다 안되네?”

 

그 때 였다. 나의 서러움이 폭발 하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고, 그 어느 때 보다도 서럽게 울었다. 나를 놀리기 위해 장난을 쳤던 최고 고참은 당황 한 듯 나를 밖으로 불러 복숭아 주스(당시 군대 가격으로100원에 한 잔)를 뽑아주며 이야기했다.

 

“군생활 그지 같을 거야. 잘 버텨야 한다.”

 

그 이후로 그 최고 고참은 전역 할 때까지 나에게 잘 해주고 같은 분대가 아니었지만 항상1순위로 챙겨줬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 뿐. 초반 군생활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자대 배치 후 거의2달 가량 매일 매일이 지옥 같았고 그 누구보다 욕을 많이 먹었다. 반면 내가 자대배치 받고 그 다음 주에 새로운 신병이 왔는데 구타 사고의 암울함은 단2주일 만에 없어졌고, 그 후임은 그 누구보다 소대 내 모든 고참에게 이쁨을 받았다. 어떤 것을 해도 칭찬을 받고 어디든 같이 데리고 가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그 친구의 영향이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였다. 내가 누군가에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단1주일 차이에 명암이 확실하게 구별이 되었고, 나는 결국 살기 위해 눈치를 봤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청소며 정리 그리고 빨래까지, 어느 하나 뒤질 것 없이 정말 최선을 다해 뭐든지 해 나갔다. 그리고 인정을 받게 되었다.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하지만 그 눈치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군대 생활이라는 것이 눈치와의 전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해왔던, 욕먹지 않기 위해 해왔던 그 모든 것들이 그때 나의 삶을 어느 정도 차지하는 일부분이 되었다.

 

1년 후 나는 우연찮은 기회로 육군본부에서JSA 한국군을 뽑는 선발 명단에 포함 되어있었고 한번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소대장의 말에 당연히 안될 거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결과는 합격. 그때 이후로 나의 군생활은 많이 풀렸다. 어디에서든 눈치 보지 않고 맡은 임무를 성실히 행하며 분대장을 끝으로 기분 좋게 전역 하였다. 하지만 눈치를 보는 습관이 없어진 줄 알았던 내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아주 작게 나마 남아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무서운 습관이 전역 한지11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나이30대 중반. 요즘 가장 힘든 것은 어떤 것이든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유를 모르겠다.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또는 무언가에 이슈가 생기면 항상 스스로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 굉장히 많아졌다. 혹자는 그게 소심한 사람의 행동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소심 한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하게 소심해서라고 하기에는 생각의 깊이가 너무나 깊다.

 

가장 오래 일했던 매장이 있다. 내 회사 생활의 반이 그 매장이었고, 그 매장에서 일 할 때를 내 스스로는 암흑기라고 지칭하고 있다. 내 인생의 암흑기.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게 되었고2~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적응을 하지 못했고,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반대의 생각.

 

“쟤랑 같이 일 못하겠어.”

 

타인을 통해 듣게 된 이 말이 가슴에 꽂혔고, 그 문제로 나와 대화를 나눈 상사 또한 그 사람들 편이였다. 물론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낑낑대며 남들 눈에는 일하지 않는 사람 같이 보였을 수도 있다. 나 스스로는 열심히 일했다. 모든 사람들이 느끼기에 내가 일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 되면 결국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게 사람의 심리가 아닌가.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다.내가 잘하겠다. 적응 못한 내가 잘못이다. 그렇게1년이 흐르고 그 당시 사람의 대부분은 다른 매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입사 초기, 즐겁게 일을 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 예전처럼 일하던 중,기회가 생겨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제일 하기 싫은 말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 나름…. 그 나름이라는 것의 기준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고 새로운 업무를 위한 여러가지의 제안도 냈다. 하지만 왜인지 무슨 이유인지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맡았던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나서 내가 제안 했던 제안들이 하나씩 진행되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제안 했을 당시에는 이렇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이야기 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왕따가 되어있었고 최측근을 통해 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그래도 그들에 대한 조금이나마 믿음이라는 단어 아래 어떤 일이든 도와주고 싶었고 먼저 나서서 하려했고, 그러나 그런 일들은 전부 헛수고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눈엣가시였고, 같이 숨도 쉬기 싫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때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14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눈치가… 무슨 일을 하든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그들끼리 무리를 지어 이야기 할 때는 모르는 척 다른 일을 하곤 했다. 참 웃기고도 어이없는 상황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같이 일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매장으로 왔기 때문에… 6년 이라는 시간 안에1년이라는 정말 칠흑같이 어둡고 무거운 시간. 최악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인가, 짧은 시간 두 번의 매장을 옮겼지만 두번의 매장에서도, 지금도 눈치를 보고 있다. 특히 지금의 매장에서는 왜인지 더더욱 눈치를 보고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평온하다. 나만 그렇다. 늘 죄인 같은 마음이다. 무엇 때문인지 항상 마음이 무겁다. 늘 긴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항상 웃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닌데 말이다. 항상 생각한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무엇 때문인가를..그래도 눈치를 보겠지.. 그리고 지치겠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신뢰라는 단어 아래 한달에 한번 받는 꿀같은 돈으로 살고 있는 이 시대 직장인들. 하지만 왜 그 안에서 무리를 짓고 문제가 되는 사람을 늘 구설수에 오르게 하고 그 사람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했다. 그들과 똑같았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요즘 들어 부쩍 힘들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정신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프로같이 딱! 일 처리를 하지도 못하고,뭔가 어중이 떠중이 생각은 다른 것들로 가득 차있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시간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와중에 보는 눈치.

 

두서 없이 여기까지 왔다. 결론은 힘들다는 것이다. 눈치를 보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혼자 답답해하고 혼자 결론 짓고.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작업을 하고 그것을 내놓는 과정에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좋은가 나쁜가 욕먹을까 멋지다고 할까. 음악을 해 온12년의 길 안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고 그것이 나의 이런 모습에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는 일정 기간 안에서는 음악 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고쳐질지 알 수 없다. 어떤 것에서 인정을 받아도 아마 이것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30대 중반,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분명 맞는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작업하고 결과물을 내고, 내 자신이 대견하다. 두렵고 무섭고 눈치도 많이 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얼마만큼의 눈치를 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연습 중이다. 버리는 연습. 안좋은 것을 버리고 안좋은 습관도 버리고,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연습 중이다. 평생 하게 될 연습.

 

이 기회를 빌어 한마디 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분명 나도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 날의 상처에 대한 기억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얼굴, 전부 기억하고 있다. 나도 이렇게 상처를 받았는데 분명 나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친구든 동생이든 윗사람이든 전 애인이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물론 이 한마디로 그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가 생기면 흉터는 꼭 생기기 마련이니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에 있었던 몇몇 사건을 통해 배운 것들이 많다. 상처를 안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당사자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그래서 생각해 본다. 상처주지말자 라는 나의 작은 다짐을. 그리고 나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으로 나마 사죄 하는 이 마음을..

 

나에게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 정말 미안했습니다.

 

 

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20대 중반 정말 미친 듯이 한 게임이 있다. B사의 W게임. 어느 지역에 가면 NPC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시간은 금이야 친구~”

 

게임을 하는 당시에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지금의 나이에 다다랐다. 우연한 기회로 티비를 바꾸고 바꾼 티비로 영화가 보고 싶어 수집해온 영화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The Wrestler’ 큰 인기를 누리던 퇴물 레슬러의 인생의 회고를 담은 영화이다. 분명 이번이 세번째 보는 것이었다. 20대 시절에 한번, 30대 초반에 한번, 그리고 한달 전. 이 영화를 또 보는 것이 아니었다. 보고 난 뒤, 엄청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인생에 대한 생각을 어마어마하게 하게 되었다. 그 압박감은 상당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무척이나 무겁고 힘겨웠던 주제. 물론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이유는 당장 내일 나에게 닥칠 일이 무엇이 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며 준비하고 있을 것인가. 하지만 적어도 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방향을 잡기 위한 생각, 그 시간 마저도 무겁고 어려웠던 순간. 영화를 보고 시간에 대한 생각은 더욱 깊어졌고, 미키루크를 통해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시간을 잘 활용하고 그 시간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결론은 역시 아니었다. 그냥 되는대로 지나가는 대로, 회사는 회사 대로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지금을 열심히 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뿐 인데 최근 몇 달간 정말 놀고 먹기만 했고(회사를 다니면서…) 제일 좋아하고 즐거운 일인 나만의 작업을 항상2순위가 아닌 순위권 밖에 머물게 두었다. 오늘 오랜만에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작업을 시작 해보았다. 시간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너가 작업을 위해 얼마만큼 생각하고 연습 했는지 생각해봐. 안했으니까 이런 거 아닐까?’

 

아무것도 만들 수도 없었고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해야하는 일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20대 시절 나에게 끊임 없이 이야기 해주던 NPC의 조언을 잊어 버리고 시간을 그냥 이렇게 흐르게 했고 지금 이 순간까지 왔다.

최근 우연찮게 정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다.

 

“장사 해서 돈 많이 벌었지? 요즘은 장사 잘돼? 별일 없고”

 

“장사는 똑같지 뭐. 너는 작업은 잘 되어 가고?”

 

“요즘 작업을 거의 안하고 그냥 세월아 네월아 이러면서 지내고 있어. 돈 많이 벌어서 좋겠수.”

 

“돈은 좀 벌었지만 만약에 내가 이 돈으로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다시 사고 싶다. 내가 요즘 제일 아까운 거는 지나가는 세월이야. 그냥 막연하게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도 없고 다시 살 수도 없다는 게 가장 슬프다.”

 

라고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사실이다. 절대 살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저 말을 알고 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무의식 중에 잊고 살고 있지 않는가. 먹고 살기 바쁘니까. 어쨌든 결국 결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자. 이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은 돈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 내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것을 소비하는 과정 안에서 기쁨과 행복, 즐거움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티비 모프로그램에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이거 판다고 행복할까? 난 행복하려고 시작 했는데..”

 

어느 사람은 그냥 스쳐 넘길 수 있는 이야기 였지만 나에게는 좀 진지한 질문이었다. 분명 나도 내 시간을 돈과 바꾸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과연 돈과 시간을 바꾸는 그 순간이 행복한가. 결론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난 지금 눈치를 엄청 보고 있으니까. 정말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 주어진 시간 안에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나 스스로 행복하기 위한 본인만의 해답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지금 나도 그 해답을 하나 둘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자신을 비관하며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도 없고 월급도 적고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생각. 하루의 힘든 스케줄에서 살아남고 돌아온 나에게 나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하루를 일하고 수고한 나 자신을 칭찬 해주고 아무리 일하는 시간이 지겹더라도 그 안에서 좀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행복 해지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시간 새벽3시30분. 정신이 몽롱하고 눈은 침침하다. 두서 없이 써 내려간 글, 결론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시간, 인생, 모든 것이 소중하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