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月及

 

 

MinHo Yu

난장판을 꿈꾸며

 

 Alex Yu

사물의 인격화

 

ケン (ken)

통제 불가능

 

nuh

흐르는 강물처럼

 

 


 

 

 

 

MinHo Yu

 

 난장판을 꿈꾸며

 

당신은 당신답나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살면서 다들 어디서든 자기소개 해보셨죠?

그곳이 면접 장소던, 가슴 떨리는 소개팅 자리던 사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 더라 구요

저는 이런 이런 사람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생각만 해도 오글거리고 싫지 않나요?

전 정말 싫어요

 

요즘은 자기 PR 시대라고 하죠 어디서든 자기를 스스로 어필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그 또한 인생의 큰 능력이라고 여기 더군요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처음 들어본 용어 인데

요즘은 퍼스널 브랜딩 이라는 단어도 많이 사용 하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이것도 자신을

상품화 해서 내다 파는 것에 지나지 않나 싶어서 좀 씁쓸 하더라고요

물론 자신을 강점을 내세우고 알려 정당한 평가를 받는 일 중요하죠

 

그래야 물건도 팔아먹고, 소개팅 성공해서 달달한 연애도 해보고

중요해요 그런데 그게 정말 당신인가요?

 

저는 사실 그래요 식탐도 많고요, 야동 무지 좋아하고요, 섹드립 치는 거 좋아하고

성질도 좀 욱하고요 남잔데 드라마 보고 막 울어요

 

자……

이만큼만 보면 확실한 돌+I 같죠? 이럼 팔릴까요?

저는 그래도 팔릴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안 팔리겠죠?

 

물론 장점도 있어요 오해 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이게 저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부분 이예요

단점은 숨기고 장점을 잘 포장해서 나를 내다 팔며 살아야 하나요?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솔직히

전 생각만 해도 숨 막혀요

 

회식자리서 먹기 싫은 술 먹으며 맞장구저주는 것도 짜증나는 세상인데 뭘 더 팔아요?

어디 변두리 선착장 술집 작부도 아니고 웃음도 팔고 뭐 몸도 팔도 다 파나요?

 

얼마 전에 저희Nuhthings 매장을 준비하는 공덕동에 다녀왔습니다.

아직은 좀 휑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제가 받은 첫 느낌은 자유로움 이었어요

어릴 적 저의 동네는 버려진 훈련용 진지? 이런 것들이 꽤 있었거든요 뒷산에

친구들 하고 거기 들어가서 여기가 우리 비밀 기지라며 옥신각신하며

놀았답니다. 불장난도 하고요 집에서 하면 큰일나니까

거기는 우리만의 자유로운 공간인 거죠

 

저희 공덕동 매장은 명목상 여러분께 물건을 파는 곳 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희망은 이곳이 단순히 매장이 아닌 즐거운 난장판이 되길 꿈꿔 봅니다

저희가 그랬듯 또 다른 사진쟁이, 딴따라, 글쟁이 이런 사람들 모여서 신나게 난장판을 한번 벌려 보기를, 조금 투박하고 부족해도 진짜 내가 되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이곳을 처음 생각한 저희도 음악하고 글 쓰고 사진 찍는 동안에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있었기에 판은 저희가 벌리지만 그곳을 채워 주는 건 앞으로 찾아주실 분들이 해주시길 기원해 봅니다 저희도 이곳이 여러분에게 그런 곳이 되기 위해 오늘도 저렴한 손가락과

머리를 굴려 봅니다.

 

 


 

 

 

 

Alex Yu

 

사물의 인격화

 

 

어렸을 때부터 전자제품을 년식에 비해 참 깔끔하게 잘 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진짜 어렸을 때는 내가 가진 전자제품에

정식 풀 네임을 마음 속으로 외치며 오늘도 달려보자고 다짐을 하고는 했다.

(예를 들면 다들 뒷자리인E900이라고 불리는 모델을 꼭MZ-E900 이라고 부름)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기계를 충전할 땐 ‘오늘도 수고했다.’ 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마음가짐 같은 것이 티가 났는지,

내가 쓰는 전자제품들을 빌려달라는 이가 많지 않았고,

막상 빌려가도 대체로 큰 이상 없이 잘 돌아왔다.

아무래도 부담이 걸렸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고가인 휴대폰 만큼은

전투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예전의 인격화 수준의 마음가짐은 거의 없어졌다.

 

아니, 인격화를 했다가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관두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만큼 전투적으로 쓰는 제품 군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카메라다.

 

카메라는 휴대폰과 달리, 생각보다 상당히 튼튼하며, 타인에게 빌려주기 어렵지 않고,

상당한 고가 제품이 많아 현금화 시키기가 쉽다.

 

그리고 내가 카메라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첫 모델은 여기저기 막 빌려주는 바람에

지금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팔지도 못하고 박스 속에 모셔져 있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기계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후 장비 기변병에 걸려 여럿 카메라 제품들이 내 손을 거쳐 중고거래로 팔려 나갔고,

최근 심경의 변화가 생겨, 메인 카메라였던ILCE-7K도 며칠 전에 중고로 판매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중고로 판매를 할 때마다, 썩 좋지 않은 감정이 든다.

 

사물에 대한 인격화가 어렸을 때부터 자리를 잡아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며칠 뒤면 메인 카메라가 곧 내 손에 도착할 예정이다.

 

위에도 적어놓았지만, 최근 심경의 변화가 생겨 이번에는 어렸을 때처럼

인격화를 오랜만에 시켜보려 한다.

 

새 상품을 사서 좋은 기분이 아닌, 전혀 다른 두근거리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이번 월급에는 곧 들어올 메인 카메라의 할아버지뻘 되는 모델로 찍은

10년 전11월의 사진을 올려본다.

 

10년 전의 사진을 넘어서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ケン (ken)

 

통제불가능

 

사람이 살면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고 싶은대로 전부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을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맞이하며 어떤 마음 자세와 태도를 가지느냐는 충분히 인간에게 달린 일이라 할 수 있다.

 

일이 잘 될 때는 자기가 잘해서, 타이밍을 잘 맞춰서, 내가 인맥이 좋아서 등등의 이유로 자화자찬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일이 안 될 때는 환경을 비관하던가, 남 탓을 하던가, 정부정책, 정권의 문제 등등을 운운하며 한탄을 하고 자포자기에 빠지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문재인 대통령 욕하는 것, 그런 일들이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면 잘 되는 일이나 안 되는 일이나 우리 능력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아주 많다.

 

100퍼센트 내 능력으로만 성공을 했거나 실패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모든 주변환경을 스스로 통제 가능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고객의 마음까지.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이상 그럴 순 없다. 언제 어디서 내가 통제 못하는 원인이 불어닥쳐 내 사업과 미래를 망쳐 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기회와 타이밍이 와서 내 인생에 고생이라는 단어를 지워 줄 수도 있다.

 

독자들은 살아가면서 돈과 권력있는 사람들 말고, 인류보다 더 큰 존재가 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되고 운영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소위 말하는 종교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알라신이나. 심지어 외계인까지 포함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확신한다. 사람이40이 되어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은 멍청한 인간이라고. 그 존재가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외계인이든 그건 상관없다. 개인의 자유다. 성공을 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사실을 명확히 깨닫는다. 그런 경우가 아주 많다.

 

이것이 곧 겸손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만이 겸손의 미덕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통제할 힘이 생긴다. 불어닥친 재앙과 운 좋게 거머쥔 재물 앞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위기를 돌파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돈이 생겼다고 경거망동하지 않고 들어온 재산을 의미있게 쓰고 지킬 줄 아는 것. 그 능력은 곧 인간의 부족함을 인식하면서부터 생기는 것이다.

 

일본와서 처음으로 쉽게 될 줄 알았던 일이 위기에 봉착하는 경험을 했다. 주변에 쉽게 빈집들을 볼 수 있어서 단독주택 하나 임대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부동산 담당자와 같이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아주 썪은 집들이 대부분이고, 딱 마음에 드는 집이 두 채 있었으나 둘 다 주인이 거절했다. 첫번째 주인에게는 외국인들은 화장실을 더럽게 쓴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두번째 주인은 외국인 차별보다 사람 자체를 가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연락하기 전에 먼저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술집을 경영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거절 사유였다. 물론 일본인이다. 밤낮이 바뀐 사람 주위 이웃들에게 민폐라고. 주인 양반은 누군지 모르지만 부동산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높으신 분이라고 했다. 그 전에 세들어 살던 사람도 전부 의사 간호사 자위대 간부 등이었다. 듣고나서 나도 안되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부동산으로 부터 죄송하다는 전화가 왔다.

 

두 번째 경우는 외국인 차별은 아니지만, 하여튼 옛날 백제 선조들이나 조선이 한창 군사력이 강할 태종 때나 세종 대왕 때 일본열도를 완전 초토화 시켜버렸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한국인들인데… 아주 굴욕이었다. 두번째 주인은 얼굴 본 적 없지만 첫번째 주인은 얼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좁은 동네라 앞으로 만날 일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악하게 먹는 건 절대 겸손의 미덕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냥 나도 인간이니 잠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은 양해해 주시길.

 

이쯤에서 나가오상을 다시 평가하게 된다. 저런 인간들이 있는 반면 내가 나가오상의 건물에 세들어 가겠다고 했을 때 나가오상은 망설임 없었다. 부동산 담당자로부터 나에 대한 것 다 이야기 듣고 쉽게 허락했다고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상상이상의 부자였다. 미야자키 부동산 투자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모든 복덕방 아줌마들의 롤모델이었다.

 

며칠전에 나가오상과 마주 서서 본인의 옛날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중학교 마치고 단신으로 전혀 연고가 없는 쿄토로 가서 주경야독으로 고등학교 마치고 다시 미야자키로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표구상을 했다.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 어릴 적 객지생활할 때 본인은 반드시 성공해서 높은 사람이 될 거라 다짐했다고 한다. 나는 꽤 젊은 시절부터 부를 축척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도박의 순간은 불과11년 전이었다. 그전까지만해도 아파트 두 서너 채 가지고 은행이자와 월세 차익 챙기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11년전에 결단을 내렸다. 순재산1억과 와이프 순재산5천만원. 1억5천만원 전부 던져서 상업용 빌딩에 투자를 한 것이다.

 

사람들 누구나 안다. 은행대출로 가치가 오르는 부동산 투자해서 팔아서 차액남기고 또 투자하고. 술자리에서 누구나 이야기하고 마치 자기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보고 있다는 듯, 마치 자기가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된 듯, 그렇게 떠든다.

 

“부동산? 그거 돈있으면 나도 하겠다. 누구누구? 아하 그냥반? 아~ 계? 계 그때 아파트 잘 잡았지. 운이 좋았지 뭐.”

이런 대화, 이런 말들 쉽게 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기회를 포착해도1억5천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단한 배짱과 용기가 아니면 감히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노후자금 다 날릴 수도 있으니.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전부터 보통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네요.” 그러자 나가오상은”자네도 보통아닌데. 남의 나라와서.”

 

지금까지 가장 내 양말을 많이 사준 고객이자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금만 더 있으면 아버지 같은 분이 될지도 모를 정도다.

 

이런 게 인생이다. 나랑 이야기도 한 번 안 해보고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본어도 잘 못하는 나를 아무 조건없이 받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둘 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

 

참고로 첫번째 집은 완전 썩은 집을 전면 리모델링 한 집인데4개월 째 아직 빈집이다. 동네가 구려서 쉽게 안 나갈 것이다. 두번째 집은 부동산 담당자에 의하면 높으신 주인분께서 적당한 사람없으면 그냥 집 비워두라 그랬다고 하니… 월세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닌 듯. 나가오상 만큼이나 부자인듯하다. 나의 패배가 확실. ㅋㅋ

 

 


 

 

 

nuh

 

흐르는 강물처럼

 

 

몇일 전의 일이다. 유난히도 배가 고픈 밤이었다. 너무나 고파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찰나, 아직은 문을 닫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치킨 가게는 영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옷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 사실 가벼운 걸음보다는 무거운 느낌에 가까웠다. 굳이 먹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의미가 있었던 밤이었기에 누구나 하는 오늘만 허락하는 날이었다.그곳에 도착. 한 남성의 등이 보였다.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요즘 많이 설치 되어있는 셀프 주문 기계가 있었다. 사실 이 가게의 주인은 여자였는데 남자가 있어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강했다. 뒤돌아보는 남자, 나를 보고 다른 남자에게 한마디 한다.

 

“형 이것 좀 고쳐줘.”

 

형이라 불리우는 남자가 나온다. 낯이 익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것도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큰 비중을 차지했고, 정말 친하게 진했던 친구였다.

 

“야!!! 너 뭐야!!!

 

“이야~ 진짜 세상 좁구나. 잘 지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주문했던 치킨을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내 머리 속에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여느 친구들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하지만 뭔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었다. 몇차례에 걸쳐서 nuhthings 월급을 통해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 했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느꼈던 모든 것들을.

 

회사, 이제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회사에서 금을 준다. 그것을 받았다. 큰 감흥은 있지 않았다.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 그것을 팔려고 했었다. 부모님께서는

 

“그래도10년 일한 너에 대한 표창장 같은 건데 너무 아깝다.”

 

라는 말을 남기셨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일하며 보낸 시간, 그 10년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나의 청춘이 묻어있는 회사, 이곳에서 준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기쁨보다는 그냥 애증이었다. 지난 시간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큰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10년이라는 세월이 묻어있는 소중하다면 소중한 금이기에..

우리 회사는 직원의 퇴사율이 굉장히 낮다. 초반에 그만 두던가, 아니면 끝까지 버티던가. 이런 회사에서 당연히 나는 늘 막내였다. 10년이 된 지금도 내 밑으로는 많지 않다. 그저 나이 많은 막내 일뿐.

 

그 친구의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여기는 어떻게 하게 된 거야?”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게 됐어요. 저도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사업하고 있는데 거기랑 가까워서 종종 왔어요. 우리가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얼마나 걸리는데?”

 

“한9분 정도?”

 

“아 버스로?”

 

“아니요 운전 해서요.”

 

정말 뻔한 대화였고 단순한 대화였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에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에 조금이지만 멍한 상태가 되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리기만 했던 친구의 동생이 이제3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결혼을 했고 아이는 없었지만 열심히 살고 있었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가 늘 생각하고 다짐했던 올바른 인생이었는가. 이런 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정말 단순했다. 그저 부모님께는 막내아들, 회사에서도 막내, 연락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동생 정도였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지금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현실이라는 것이 금전적인 그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나이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같이하는 팀의 멤버 두 명은 이미 결혼을 했고, 유일하게 나만 미혼이다.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와 조우를 한 이후, 엄청나게 큰 압박감을 느꼈다. 지금의 내 나이와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무엇을 했으며, 이제 어리지 않구나 라는 생각. 삶에 대한 무게를 생각해야하는 나이라는 생각, 철부지처럼 지내면 안되는 구나 라는 생각.우리는 추억을 공유했지만, 슬프게도 어른이 되어있었다. 누가 그랬냐는 듯, 모두가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었다.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마주하게 되었다. 현실이었다. 시간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고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가지고 보낸 밤이었다.

1시간, 1분, 1초 시간은 계속 흐른다.이 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도 벌써 과거가 되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조급해 하지마. 초초해 하지마. 그냥 순리대로 맡겨.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스러운 너를 알게 되고 즐거운 날도 힘든 날도 있을 거야. 과거에 얽매인 사람,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 그것보다 지금 자신에게, 그리고 지금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 되려무나.’

 

친구와의 만남은 내가 나아가야하는 길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며,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좀더 무게감 있게 접근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것을 통해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의 어느 부분을 포기하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 좀더 신중하게, 무게감 있게 접근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하면 맞을까? 무거운 마음, 하지만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며 잠들 이 밤을 지내고 또 아무일 없다는 듯이 흐르는 시간 속에 하루를 보내겠지.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테니.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