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月及

 

MinHo Yu

눈먼 이에게 길을 알려주는 법

잘 못해요

 

Alex Yu

동네 친구

 

ケン (ken)

패턴(PATTERN)

 

nuh

ongaku

 

 


 

 

  

MinHo Yu

 

눈먼 이에게 길을 알려주는 법

 

눈먼 이에게 길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면 가장 쓸모 있는 법을 무엇일까?

건널목 음성신호기 같은 소리로 된 것이 가장 쓸모 있지 않을까?

nuh의  “LIFE” 에서 나는 그런 쓸모를 발견했다. 실용성 말이다

그는 소위 말하는 배짱이 형 아티스트는 아니다.종일 음악만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음악인 이기 이전에 그는 생활 인이다. 아침에 눈뜨면 출근해야 할 직장이 있고 처리 해야 할 업무가 있다.

그는 이 음반을 만드는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음반을 듣는 동안 바쁜 와중에 그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작은 인생의

편린들을 모아서 소리라는 형태로 가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번 음반에서 쓸모를 발견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그의 수고스러움 덕에

소리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것도 속성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의 이번 음악들을 들어보면 “말” 이라는 기본적은 형태의 전달 형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베이시스트 라는 이유도 있겠으나 그에 앞서서

말보다는 좀더 원초적인 형태의 소리 그 자체로 세상을 그려내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빛을 잃은 이에게 소리로 이 세상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진 듯한 절박함 그것과도 닮아 있는 듯 한 느낌은 나만의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음반을 들어보고자 하는 당신에게 권한다.

일단 눈을 감아라. 그리고 nuh 가 그려놓은 세상을 차분히 귀를 써서 들여다 보자

 

잘 못해요

 

저는 잘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뭐든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공부도 못하고요,운동도 답이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월급을 써서 보여드리곤 있지만

글 잘 못 써요 그래서 더 많이 써야 하는데

자꾸만 자판만 들여다보다가 그냥 잠들어 버리기 일쑤 이었죠

 

그런데 오늘 쓰려고 가만 고민을 해보다 그간 썼던 월급을

쭉 한번 봤습니다. 그런데요 이상한 체험을 했습니다.

처음 쓸 때는 그렇게 못 봐주겠던 글들이 한 10편쯤 모아서

1년 후쯤 보니까 어딘가 그럴싸해 보이는 이상한 착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건 무슨 효과일까?

제가 생각 할 때는 노력 보정 효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의 월급은어느 달은 하루 만에 나오기도 하고 어느 달은

10분 만에 쓴 글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글이 좀 들쑥날쑥

합니다 어떤 달은 그럭저럭 봐줄만하고 어느 달에는

제가 보기도 참 남 부끄럽습니다. 그런 글이지만

 단 한 번도 마감을

지키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 라고 말씀 하실 수도 있지만 그간 이 하찮은 글을 쓰면서

생각보다 여러 가지 마감을 지키지 못할 위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비겁한 변명인 것 압니다.

 

하지만 나름 어떻게든 작성해서

여러분께 보여 드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나름 혼자 생각에

열심히 썼다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못 하는걸 더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그게 뭐가 됐던 말이죠, 가만 생각해 보니 손해 볼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다 잘되면 좋은 거고 설령 생각보다

잘 안되더라도 그 노력의 시간은 순전히 저의 것 이니

나중에 모아두고 자화자찬이라도 하면 어떨까 싶어요.

 

뭐든 잘하면 좋겠죠.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보상도 따라오고

하지만 언제 부턴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점점 잘하는

가장 중요해져 버린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가만 생각해 보면 잘하는 거 보다 못하는 게

많은 게 당연한 거예요 뛰어난 사람들도

뛰어난 거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렇지 세상에

그들도 못하는 게 왜 없겠어요? 세상에 만능은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다들 못해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자구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잘하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Alex Yu

 

동네 친구

 

얼마 전 유일하게 하나 남은 국민학교 동창 친구가 이 동네를 떠났다.

내가 이 동네를 이사도 안가고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정말 이 동네는 동창회 따위는 없으며, 심지어 고등학교 때 서클활동을 했음에도

학교 다닐 때뿐, 실제로 그 인연이1~2명 빼고 길게 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동네 친구라는 것이 막상 떠나고 나니까

그 때는 별거 아닌 것들이 지금 와서 아련하고 소중한 생각이 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화 한 통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밥은 먹었냐? 이따 볼까? 안 먹었으면 나와.”

이 것이 동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 바로 시작하는 대화다.

또한 서로 직장 포지션이 영업직이라, 외근 복귀길 차를 끌고 들어가는 날에

같이 동네 들어가려고 늦게 끝나는 친구의 회사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주로 내가 늦게 끝났다.)

같이 들어가는 날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각자 삶에 어려움이 있는 날이면 곧바로 불러내어

술 한잔 기울이며 가장 먼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만큼 거주하고 있는 동네에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마치, 사이 좋은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이 동네 친구는 너무나 갑작스럽게도

직장 때문에 얼마 전 이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떠나고 난 후, 잘 도착했냐는 인사와 함께 첫 전화통화를 했는데…

평소와 같이 “밥은 먹었냐? 이따 볼까? 안 먹었으면 나와.” 라는 대사를 할 수 없게 되니

왠지 먹먹한 느낌이 들면서 너무나도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에도 평소에 자주 통화는 하지만… 잘 지내라는 인사를 이 자리 빌어서 다시 전해본다.

친구야, 이사 간 그 곳에서는4면이 탁 트인 바다이고 하니

항상 넓은 마음을 가지며 난폭하게 굴지 말고, 제발 나 같은 동네 남자친구 만들지 말고

결혼 할 여자를 잘 만나서, 다음에 서울 올 때는 꼭 청첩장 가지고 와야 한다!

항상 건강해라.

 

 


 

 

 

ケン (ken)

 

패턴(PATTERN)

 

디자이너가 된다는 건 무엇인가? 정해진법칙은 없다. 반드시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 아티스트들 중에서 전혀 관련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보냈다. 다른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의 경험과 글을 듣고 읽으면서 내가 과연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일까 의심도 하고 나름 그림도 그려보고 자찬도 하고 실망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객들에서 어떤 양말디자인이 좋으냐 물어 본다. 대부분 아무 생각없다. 고객들 즉 대중들이란 그렇다. 아무생각없는 유기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존재들이다. 만들 줄도 모르고 말로 정의는 못하지만 뭐가 세련되고 아름다운지는 한 눈에 딱 알아본다. 고도의 감각으로 개발한 디자인일수록 더더욱 평범한 사람들의 감성까지 파고든다. 

그 와중에 내 질문에 대답한 손님이 계셨다. 70대 연세의 여자 손님이 대답을 해주셨다. 

“심플한 거요.”

99세 어머니에게 내 양말을 선물해드렸는데 촉감이 좋다고 하셔서 또 사러 오셨다면서 심플한 대답을 주셨다. 99세 노인도 느끼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 당연히 좋은 디자인이란 기능성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랬다. 결코 내가 디자이너로서 맨손이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한 맨땅의 헤딩이 아니었다. 소재, 기능성이라는 한 마리의 토끼는 손에 쥐고 있었다. 이제 한 마리만 더 잡으면 된다. 그 토끼가 패턴이라 불리는 놈이라는 사실까지 깨달았다. 

앞으로 패턴이라는 관점에서 내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며 연구해볼까 한다. 

 

 


 

 

  

nuh

 

Ongaku

 

중학교2학년 무렵, 아버지는 기타를 하나 사오셨다. 평소 기타 치는 것을 좋아 하셨던 아버지는 형과 나도 취미로 기타 정도는 쳐보는 것이 어떠냐며 권유는 아닌 권유를 하셨다. 교회 선생님에게 기타를 아주 잠깐 배웠다고 하긴 좀 그런.. 1주일 교육을 받고 말도 안되는 교육 방식에 화가나 다시는 배우지 않았다.오히려 지금까지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혼자 독학을 하게 되었다. 이정선의 기타교본과 함께.

고등학교2학년, 한 친구를 만났다. 일본 음악을 엄청 좋아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통해서 처음으로 한국 음악이 아닌 해외 음악을 듣게 됐다. 그 첫 팀은 X, 지금의 X-JAPAN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런 음악이 존재하다니!! 라는 충격과 함께 매일 매일 그 친구와 함께 지내며 음악을 공유했다. 인터넷이 발달해가던 시기였고, 무료 음악 공유라는 어마어마한 것을 접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음악을 알게 되고 듣게 되었다. 밴드를 하겠다던 그 친구의 말에 괜시리 “나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베이시스트를 구한다는 말에 “내가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베이스 기타를 만지고 잡던 날, 아무런 교육도, 연습도 하지 않고 오로지 듣는 것에 의지하여 한음 씩 손에 익혀갔다. 그렇게 한 곡을 마스터 했다. ‘dive to blue’. 지금은 못친다. 까먹었다.

고등학교3학년, 지금의 그 녀석을 만났다. 해외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씨디도 빌렸다. 너바나, 메탈리카, 펄잼, 엘리스 인 체인스. 새로운 충격이었다. 거기에 페이브먼트. 더욱 새로운 것이 듣고 싶었다. 이것 저것 찾아서 들었다. 그 녀석에 의해 학교에는 아주 좋은 부서가 생겼다. 밴드부. 후배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후배들도 들어왔다. 이런 저런 곡을 했다. ‘후뢰시맨 오프닝곡, champagne supernova, bombtrack, bulls on parade 등등의 노래들. 즐거운 시간이었다.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20살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녀석이었다. 후배들의 축제가 있다고 하는데 너도 같이 가겠냐는 내용. 안 갈수 없었다. 우리는 졸업했지만 공연에 참가하며 도와줬다. 즐겁게 마무리가 되었고, 몇 년뒤 밴드부는 사라졌다.

 이런 저런 추억이 생긴 후 이런 생각을 했다. 음악이 하고 싶다고.

 군대에 상병이 지나고 나서 음악 관련 서적을 가져갔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연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선택인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 군대 가기 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음악으로 먹고 살고 싶다고. 하지만 군대에서 생각을 접었다. 일이나 하고 돈이나 벌자 라고. 그리고 그 이후 음악 서적은 단 한번도 읽지 않았다.

 군대 전역 후, 피씨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녀석이었다. 밴드 내에 베이시스트가 없는데 너가 좀 해줄 수 있냐고. 고민 해보고 하기로 결정 했다. 가지고 있는 베이스라고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그냥 조립식 베이스 한대 뿐. 그렇게 합주를 하고 첫 공연을 마쳤다. 그렇게 그 맴버 세명이 팀을 이뤄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밴드는 이미 첫 앨범이 나왔고, 사정에 의해 베이시스트가 빠진 자리를 내가 세션으로 채워졌다. 그 해7월 무렵, 드러머 아저씨도 유학때문에 드러머를 그만뒀고, 새로운 드러머가 왔다. 팀은 활기를 띄고 여러차례 공연을 했다. 자연스럽게 정식 맴버가 되고 공연도 꾸준히 했다. 드러머의 탈퇴, 이런저런 사정에 의한 탈퇴. 현재의 드러머와 함께 지금까지 왔다.

 중간 많은 일이 있었다. 서로간에 인지 아니면 나의 일방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잘~이라고 해야하나, 이겨냈다.

2012년, 시간날때마다 틈틈이 곡 작업을 했다. 욕심이 생겼다. 앨범을 내고 싶다고. 작업에 돌입했다. 시간이 흘러16년4월29일 첫 앨범이 나왔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고 곡마다 사연이 있었지만 알아주는 사람없이 조용히 묻혀가는 앨범이 되어갔다. 그 해에 만들었던 싱글은 이런저런 핑계와 작업의 부재, 회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2년 뒤에 발매를 했다. 또 한 곡을 발매 예정이다.

 남들은 나에게 이런 소리를 한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서 정말 부럽다고.고민이다.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음악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음악을 들은 사람들의 하나하나 평가가 있었다. 평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관심 조차 없었다. 조용히 묻혀가는 어느 이름없는, 1년에 발매 되는 수 많은 앨범 중에 하나라는 생각. 늘 나 자신과 싸운다. 내가 과연 이것을 잘하는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 작업 뒤 레퍼런스 체크를 위해 다른 음악을 들을 때면 생각하는 자괴감. 나는 왜 저렇게 못 만드나, 나는 이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그 와중에도 생각한다. 다음 앨범은 어떻게 만들고 어떤 느낌으로 하고 싶은지를 말이다.

음악 프로그램을 켜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는 날이 많다. 이 백지에 어떻게 써내려 가야할까 하는 생각. 무엇을 담아낼까 하는 걱정. 여전한 생각, 멈추지 않는 걱정.

 요즘은 어떤 사물이나 소리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 감정에 대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소리, 기계의 소리, 생활의 소음 스트레스 등 그런 것의 영향으로 인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요즘 날씨가 좋아 하늘의 별이 보인다. 그 기분, 그것을 담아 내고 싶다는 생각. 아직은 초보인 나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숙제 인 것 같다.

걱정과 근심이 많은 가운데에도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 같다. 물론 지지 해주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지도 모르는 그런 음악을 만드는 변변찮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을 굉장히 신경 쓰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런 거 같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말보다 이것을 멈추는 것이, 내 감정이 없어지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흐르는 시간에 그저 한자리 자리잡고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요즘, 그냥 모든 것에 감사한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