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月及

 

 

MinHo Yu

異界(이계)의 채칼파는법

 

Alex Yu

오랜만의 카메라 이야기

 

ケン (ken)

브랜드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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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Ho Yu

異界(이계)의 채칼파는법

갑작스런 여정이었다. 마누라가 워크샵에 가서 내일 오후에나 온다는 친구의 약간은 들뜬 목소리에 얼떨결에 동조해서 급하게 성사된 만남 이었다.

1시간 반정도 걸리는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불금이다. 뭐시 중한가?

금요일에 퇴근길의 지하철은 사람들의 기분처럼 적당히 한산하고 적당히 붐볐다.

그 인파를 속을 유유히 가로질러 익숙한 비주얼의 물건을 든 이가 등장했다. 골판지 박스에 노란 박스 테이프로 칭칭 동여맨 전형적인 지하철 잡상인의 물건 카트였다.

사람들은 그다지 큰 관심은 없어 보였다. 그의 등장은 금요일에 피곤함과 불금의 기대감을 압도할만한 일이 못되었다.

적어도 그가 박스에서 고이 모셔둔 3천원짜리 채칼과 함께 오이가 덕지덕지 붙은 그의 반짝 반짝 민머리를 보여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채칼의 뛰어난 성능을 자신의 몸을 이용해 직접 증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 손에 직접 가져온 오이를 들고 순식간 오이팩을 만들어 자신의 반들반들한 민머리에 빠른 속도로 오이를 채워나갔다

그리곤 학원 강사나 쓸법한 목걸이 마이크를 이용해 자신의 채칼의 위대함을 지하철 안에 설파했다.

그는 사뭇 진지했다.

약간 물 빠진 청바지에 캐주얼 구두, 몸매가 들어나는 아웃도어용 티셔츠

그 사이로 들어나는 생각보다 다부진 몸매 지하철 실내등 아래 반짝 반짝 빛나는 오이가 덕지덕지 붙은 반들반들한 민머리 무엇 하나 조화가 되는 것이 없었다

그는 흡사 이계(異界)에서 온 혼종 갔었다.

사람들도 그의 압도적인 비주얼에 힐끔 힐끔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재빠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혹여나 웃음이 터져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문화 시민의 알량한 예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없이 열심히 채칼 시연을 계속해 나갔다. 지하철 안은 흡사 일요일 저녁 TV속 예능 프로의 한 장면처럼 서로 눈치게임이 어이 졌다. 하나만 걸려라.

사람들은 이 웃지 못할 긴장감이 어서 끝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다 일순간 남자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말없이 채칼을 건넸다.

그리고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옆에 지하철 기둥에 서서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연신 노선도를 올려다 보던 중년의 아줌마였다. 그녀는 머쓱한 미소와 함께 말없이 천원자리 석장을 아저씨에게 주고 아줌마는 다음 정거장에서 채칼을 손에 쥐고 내렸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다시 지하철이 다시 출발했다.

3정거장남았다!

 

 


 

 

  

Alex Yu

오랜만의 카메라 이야기

 

 

2017년04월 月及(http://www.nuhthings.com/1704monthly/)의 내용을 보면

해결 될 단점 중 하나가 최근 각 회사별로 해결이 되어 출시 중이다.

필자도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작은 크기의 바디와 배터리 타임이었다.

이런 불만 사항을 가지고도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카메라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늘 기다리는

지구촌의 축제인 올림픽 또는 월드컵 때를 기다려 왔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각종 촬영 관련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2020년의 올림픽 개최국은 일본이다.

카메라 제조사들은 대부분 일본의 회사이므로 뭐라도 나올 것을 예상했고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니콘, 캐논, 파나소닉, 후지필름에서 신제품의 출시와

소식들로 가득하였다.

니콘과 캐논은 예상대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발표하였고

변경 된 대구경 마운트와 적절한 크기의 파지감, 배터리타임이 개선 된 제품을

정확하게 필자의 예상대로 출시하여 주었고,

파나소닉도 마찬가지로 신형 바디는 한 덩치 하는 미러리스 바디를 출시하였으며

거기에 라이카의L마운트를 이용한 라이카&파나소닉&시그마 연합의 발표도 있었다.

후지필름에서는 중형크롭 미러리스 바디인GFX시리즈가 출시 되었다.

결국 필자도, 마운트 구경이 작아 센서 구석 면을 마이크로 렌즈의 각을 줘서

할레이션 파티로 만들어버리고 또한 배터리타임도 짧으며

바디의 소형설계로 그립감도 좋지 않았던 모회사의 프로토 타입 같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처분하고

대구경의 새로운 마운트로 잘 만들어진 미러리스 카메라로 옮겨탔다.

결국 필자의 예상대로 훌륭한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출시 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곡면센서를 이용한 카메라와 렌즈 없이 센서만으로도

사진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만 출시되면 된다.

언제 출시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ケン (ken)

 

브랜드아이덴티티

혼쿠츠시타 브랜드를 런칭하고1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중이다. 앞으로 계속 한동안 그럴 것 같다. 뭐든지 혼자하다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무슨 일이든 어느 누구든 완벽하게 해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고.

저번달에 혼쿠츠시타 엠블램을 만들었다. 1달정도 시험기간삼아 고객들에게 보였는데, 나 스스로 생각해도 잘 된 작품같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계속 이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한자라는 틀안에서 만들어진 엠블램이다. 아는 커피숍 사장님이 만날 때마다 짜증나도록 늘 이야기하는데 혼쿠츠시타 브랜드랑 양말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 서예작품으로 도배된 가게에 누구도 선뜻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엄청비싼 곳일 거라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때때로 양말파는 가게인지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신경이 좀 쓰이기도 하고해서 한 번 확실히 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하고 가도 될 것같아5월급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本靴下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출발점은 어디인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 두 가지 경우이다. 한 가지는 뭔가를 시작할 때 필연적으로 그 일(장사)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그냥 어떻게든 돈벌려고 일(장사)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 경우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과 협업하거나 돈이 많을 경우 잘나가는 디자인컨설팅 업체에 의뢰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맡기면 된다. 자기가 감각이 좋으면 자기 생각대로 가도 되고. 핵심은 무조건 이 시대가 원하는 걸 주는 것, 이 시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첫번째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그 일이 사업주의 모든 것이고 자기 인생이고 미래고 현재고 과거였다. 이런 경우는 사업주는 디자이너가 된다. 디자인! 디자이너란 반드시 자기가 만든 창조물에 대해서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글쎄요… 하다 보니 그냥 마음가는데로 하다보니 이렇게 나왔어요. 라는 말은 절대 나올 수 없다.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라야 하는게 디자이너의 말인 것이다. 물론 최종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직감에 의존할 단계가 몇 단계 있을 수는 있지만 최종 나온 작품 전체에 대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 녹아 있기 때문에 그냥 나왔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럼 한자의 획으로 만든 나의 저 엠블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설명은? 

1.쿠로헤비 

모든 게 쿠로헤비로부터 시작되었다. 쿠로헤비에게 부탁하는 일이 잘 없는데 지금 쇼윈도 작품이랑 양말모양 상상의 한자를 써주기로 한게 작년 연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일에는 진전이 없었다. 물론 최근 다른 알바하느라 서예에 집중할 수 없는 처지를 알지만 그래도4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반응이 없어 내심 쿠로헤비에게 좀 섭섭해 하고 있었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는데… 그러면서…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 쿠로헤비의 도구들을 바라 보았다. 늘 우리 사무실에 도구들을 놓아둔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예전에 한자 좀 썼는데! 명색이 나도 한자문화권 국가 출신인데! 라는 생각과 함께 쿠로헤비의 붓 중에서 젤 상태가 좋을 만 한 것을 집어 들고 한지 한다발을 전부 꺼내 놓고 내가 생각하는 상상의 양말한자를 쓰기 시작했다.

 

 

2.획의 의미

시작을 어디서 부터 할까 고민했다. 물론 왼쪽 제일 윗편이 모든 한자의 시작점이라 거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것마저 고민했다. 양말은 발가락부터 꺼꾸로 짜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부분의 곡선을 도저히 윗부분 기둥이 없이는 그릴 수가 없었다. 기계와 사람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이’한 일’자였다. 그리고 젤 위에 있는 한 일자가 아래 양말의 굵기와 평형을 결정하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 한일자가 똑바로 평형이 되지 않고 조금 앞으로 경사지게 써지는 것이다. 아무리 다시 그려도 그게 잘 안되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성격인 것이다. 중간은 생략하겠다. 마지막 획. 양말의 전체 실루엣을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 가장 실패를 많이 한 부분이다. 계속 다시 쓰면서 느꼈다. 양말전체의 실루엣을 신경쓰지 말고 내가 긋고 싶은 획을 그어보자. 그러니 답이 나왔다. 

3.이미지

결국 나중에 쿠로헤비도 상상의 양말한자를 써주긴 했다. 사진에 보는바와 같다. 오른쪽이 쿠로헤비의 양말이다. 어떤가? 아주 부드럽다. 아주 날카롭다 생각했던 쿠로헤비의 스타일이 다른 서예가들의 작품과 비교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부드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부드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쿠로헤비의 착한 마음도 드러난다. 양말을 최대한 생각했다. 자기가 쓰는 작품의 고객을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고 밀고 나가지 않는다. 쿠로헤비는 늘 그렇다. 은근히 타협할 줄도 알면서. 처음에 나에게 생각을 이야기 할 때는3개의 획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많이 쉬어간다. 선굵게 시작해서 슬며서 사그라드는 필체가 하나하나 고스란히 드러나다. 그러면서도 가장 양말의 중요한 부분인 발바닥은 타협하지 않고 강하게 나갔다. 사람의 온 몸의 무게를 받치고 있는 것이 양말 바닥이랑 신발 밑창이다.

하지만 나의 엠블램은 어떤가? 양말을 생각했다기 보다 내가 쓰고 싶은 획을 그은 것 뿐이다. 양말은 죽고 나의 획만 살아 있다. 꽉막힌 고집불통 영감처럼 고지식한 권씨의 지랄같은 성격만 살아 있다. 나는 쿠로헤비 작품과 내 글씨 둘 중 어느 것을 엠블램으로 할까 고민하다 결국 내 것을 선택했다. 내 스스로의 다짐인 것이다. 유통업10년의 내 경험을 시험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4.일본의 국어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자가 국어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한 한자는 없어지지 않는다. 시대와 사람과 경우에 따라 해석의 차이와 느낌의 차이를 다르게 가져 갈 수 있지만 결국2300년 미래에도 주민표에 한자로 된 자기 이름을 보아야 한다. 유행? 바뀌면 어쩔 것인가? 10년 전에는 통하는 스타일의 엠블램인데 돈많이 주고 했는데 그려면서 또 바꿀것인가? 다들 그렇게 한다. 10년동안 살아남았다면. 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에게 멋진 결과물을 받는 것도 굉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자체로 품질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가게의 모든 것을 최대한 내가 만들 것이다. 기술이 안되고 능력이 안되는 부분 빼고. 내 딸을 내 생각대로 이름 붙이고 내 철학으로 키워내고 싶은 것이랑 같은 이치다. 70살이 되었을 때 영구라 이름붙인40살 내 아들이 귀엽지 않을 것인가? 이름이 요즘처럼 이쁜이름 아니라고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정리해보자

김앤장이라는 법률회사가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회사지만 그 회사명에 의미도 없고 그 회사 마크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아디다스는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의 앞글자만 따서 붙인 뜻도 없는 명칭이고 스포츠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나의 엠블램에는 나의 쿠로헤비와의 관계, 미야자키의 이미지, 처음 코민칸에 정책하면서 거기서의 추억, 미야자키스러운 양말디자인을 해보겠다는 나의 고집, 이방인으로서 외국인으로서 일본의 전통과 매력까지 최대한 끌어내보자는 시도까지 모든 게 녹아들어 있다. 앞서 말했던 커피숍 사장님의 엠블램과 가게 이름 폰트는 각각 다른 디자이너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게 자기 꺼라고 생각하나?

전에 회사 핫트랙스에서 만든 브랜드 디트랙스. 오픈하니 막상 예상했던 것보다 매출이 많이 나왔다. 그게 김영세 디자이너의 디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아님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해서 붙인 디트랙스라는 이름이 너무 멋있어서라고 생각하나? 

일본 건축가들이 프리츠커상을 많이 수상하지만 그 이유는? 1910년당시 독일 건축학교 교실의 반이 일본인 유학생이었다고 한다. 그게 계속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 거기에 일본 전통은 있나? 명치유신이후 서양의 모든 것을 사회전반에 걸쳐 받아들이고 이식한 일본이다.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의 작품이 수준이 높은 것은 맞지만 일본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라는 아이덴티티. 그걸 일본건축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가?

쿠로헤비를 내가 그렇게 예술가로 인정하는 여러가지 특징 중에 하나가 있다. 한 번도 자기가 작품을 쓰고 나서 나에게 어떤지 물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의뢰한 작품도 자기가 엄청 대단한 게 나왔다고 좋아서 날 끌고 가서 보여준다.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는다. 내가 돈 내고 주문 한 작품인데도. 그 만큼 명확해서 그렇다. 자기 아이덴티티와 나아갈 방향과 자기 실력에 대한 믿음과 경험이 명확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자기 작품에 대한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술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고민은 있어도 자기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게 예술가다. 그게 아이덴티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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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방면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것을 통해 무언가를 시도하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 이런 저런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떠한 굴레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일 이든지 혼자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 보다는 내선에서 해결하고 의뢰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나에게 얼만큼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전방위적으로 모든 것을 섭렵한 사람은 어떤 것 에서든 굉장히 쉽게 처리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분명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누군가와 상의 없이 어떤 일을 처리하고 해결해 나간다는 것은 올곧은 자기 생각만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키고 순탄하게 진행 하기란 사실 어려울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에서 해결 되었을 때 느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별이다. 그 일에서 구별을 해내지 못하고 끝까지 나 스스로가 해결하고자 한다면 가장 처음으로 돌아 갔을 때 내가 어떤 의도로 이것을 만들고자 한 것에 대한 것이 왜곡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즉, 자기가 맡은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 까지만 하고 다른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해나가는 일중에 어느 하나의 정도는 꼭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는 경험과 지식이 더욱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지인과의 작업 중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모든 작업은 각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이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