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月及

 

 

MinHo Yu

인생이 직구(直球)냐?

 

Alex Yu

집에 가고 싶다.

 

ケン (ken)

PNS(Personal Network Service)

 

nuh

인간세상

 

 


 

 

 

 

MinHo Yu

 

인생이 직구(直球)냐?

 

연말이 다가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연말이 다가오면 안도감과 함께 불안도 살짝 다가 옵니다.올 한해도 어떻게 잘 지나갔다는 안도감과 1년 단위 계약직 팔자인지라 내년에는 또 어찌 될지 모르는 파리목숨 직장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1년에 한달 정도를 어찌 될지 모르는 복권을 손에 쥐고서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처음에는 저도 이게 너무 싫었습니다. 남들처럼 이런 것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다.

박봉이어도 좋으니 정규직 직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 뭐 다들 같은 마음이니 노량진에 사람이 그리 넘쳐나는

거겠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모르는 것,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지는 것

이런걸 싫어한다고 해요.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것을 정말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사람은 몰라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데스노트에 나오는 사신 같은 놈이 나타나서 저의 인생을 미리 알려주고 마지막 죽는 날짜, 시간까지 알려준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는 오히려 그것도 맥이 풀려버려서 살맛 안날꺼 같은데요

아닌가요? 저는 그 사신한테 쌍 욕을 할겁니다.  이건 마치 영화 보러 갔더니 “ 범인은 절름발이다!” 라고 외치는 나쁜 새끼랑 똑같은 겁니다.

모르니 불안 할 수 있죠 당연한 거예요 거기다 정해진 답도 없으니 살아봐도 살아봐도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그런 거죠 그런데 그거 다른 사람도 다 몰라요 여러분만 모르는 거

아니거든요 어차피 예측 불허 입니다. 그게 묘미이기도 하구요

 適者生存(적자생존) 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린 그저 모르는 인생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어느 날은 많이 행복 할 수도 어느 날은 적게 행복 할 수도 있지만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대단한 겁니다.

2019년이 저물어 갑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화구 같은 인생을 올 한해도 잘 방어해 낸 승리 투수 같은 그대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Alex Yu

 

집에 가고 싶다.

 

 

 

생업을 위해 다니는 회사에서는 늘 생각하는 한마디 이지만

이 한마디를 집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주 가끔 이 한마디가 집에서도 떠오른다.

나이가 들어서 안경을 냉장고에 넣고 못 찾는다든가

이러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고,

진짜 막연하게 무의식적으로 이 한마디가 집에서도 떠오른다.

오늘 이 한마디가 갑자기 떠올라서

‘왜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을까?’ 에 관하여

깊게 생각해보았다.

그저 막연하게 드는 ‘집에 가고 싶다.’

어쩌면 뭔가 지금 상황이 집에 있음에도 좋지 않다든가,

불편한 상황인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집에 있는 상황으로써 생각해보면,

머리로나 육체적으로나 불편한 것은 없다.

그럼 심적인 부분이 문제인 것인가?

‘집’이란 단지 진짜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어떠한 ‘시간’ 이라던가 ‘상황’ 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고 싶은 건 그 ‘시간’ 또는 ‘상황’ 일지도 모른다.

그럼 정확히 언제 어느 상황인가?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짚이는 것은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짚이지 않은 이 뭉뚱그린 상황을 단지 ‘집’이라고 하는 건가?

나도 가끔 내 머릿속에 뭐가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할 때가 많지만,

오늘은 진짜 “집에 가고 싶다!!”

내년에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한 해가 되었으면…

 

 


 

 

 

 

ケン (ken)

 

PNS(Personal Network Service)

 

올해 12월로 미야자키에서 맞이하는 3번째 연말이다. 3년차에 접어들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한 것이 나도 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현실과 싸웠던 만큼 한국 일본 양국도 뭔가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한 극한 변화의 기점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이 든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도체 조선은 이미 넘겨준지 오래고 일본의 자존심 자동차 산업도 올해 도쿄모터쇼를 보아하니 이제 거의 종말이 다가 온 듯 보인다. 젊은이들의 무사안일함도 문제라면 문제고 기득권세력이 만들어놓은 경직된 사회시스템에 성장모멘텀 조차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확실히 지금 일본사회는 추락하는 일만 남은 인상이다.

그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 유튜브에 일본의 몰락과 한국의 부흥에 대한 온갖 바람잡이 기사들이 넘쳐나는데… 물론 크게보면 일본의 몰락과 한국의 급성장은 시기를 같이 하고 있다고 나도 동의하지만 우리가 지금, 특이 한 명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지금 세상이 나아가는 큰 물줄기를 보고 국뽕을 해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금 이시대에 사회라는 것 국가라는 것이 나아가고자 하는, 즉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가령 복싱선수라면 당연히 올림픽 메달이다. 그게 최고의 목표이고 4년에 한 번에 기회가 있다는 시기성도 명확하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선수는 메달권진입이 가능한 수준이다, 어떤 선수는 예선통과도 힘들다, 어떤 선수는 펀치는 좋은데 스텝이 엉망이라 올림픽 수준도 안된다, 남은기간 보완하면 충분히 경쟁가능하다 등등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국가들이 나가갈 최종 종착지가 도대체 어디인가? 그곳이 어디이길래 한국은 잘하고 있고 일본은 경쟁에서 뒤쳐져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대략 말하자면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이라는 단어! 4차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 일류국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살기좋은 나라, 부유한 나라, 이런 말들로 굳이 억지로 정의하자면 정의가 될까?

그렇게 최종 목적지를 정의했다 치자. 선진국이라는 것이 과연 정의롭고 공정하고 서민이 잘 사는 그런 사회인가? 

그럼 우리나라는 반도체, 조선, 수소차, 군사력, 케이팝 등등 물질적 문화적으로 세계 5대강국에 들었다고 하자. 그럼 그 누구도 일 안해도 먹고살수 있고, 갑질 안 당하고, 부정부패없는 서민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인가? 

이러한 질문과 의문에 잠시 빠져들어 생각하다보면 마지막에 결국 나 개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자기들끼리 호위호식하는 아베정권이나 국민이 촛불을 들어도 꿈쩍않는 우리나라 검찰과 보수정치인 무리들이나 내 개인의 생활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거의 환타지무협소설급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세금이나 걷어가지 말던지.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무엇이 인간적인 사업일까? 유튜브도 인스타도 페이스북도 지겹고 역겹다. 전부 돈을 목적으로 한 것들 아니면 아무 목적없이 자기 사진을 필사적으로 남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들… 별로 인간적이지 않다. 내 주변에 소중한 이웃들에게 작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뭔가 하나하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남은 내인생의 반을 투자할 가치도 있고 어느정도 수입까지 가져올 수 있을지. 

 

 


 

 

 

 

nuh

 

인간세상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 유난히 짜증나는 날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어야 하는 버릇 때문에 한동안 고생을 했었는데 오랜만에 그것이 왔다. 썩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최근 운동을 하면서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약속도 많아지고 연말인 탓에 술도 마시고 나와의 약속은 잠깐 멈춘 상태. 어쨌든, 좋지 않은 기분에 오늘 저녁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근처 치킨 집에서 치킨 한 마리와 맥주 두 캔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앞을 지나갔다. 아니,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다. 계속 따라오고, 거기다가 내 앞을 가로 지르며 왔다 갔다 반복했다. 혹시나 이 녀석이 나 때문에 가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그 자리에 멈췄다. 헌데 이 녀석도 멈춰서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 스스로 생각했다.

‘배가 고프구나.’

 아주 좋은 치킨 냄새를 풍기며 가는 이 사람에게 빌 붙으면 얻어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집 앞, 전봇대 뒤에 숨어 나를 유심히 쳐다 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갔다가 소세지가 있어서 그것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녀석은 기다렸는지 소세지 냄새를 맡고 먹을까 말까 반복했다. 입맛에 맞지 않는지 먹지 않았다. 뭔가 안타까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에 까지 않은 참치 캔이 있었다. 이것을 주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왠지 오기가 생겨 집 주변을 찾아 보았고 녀석은 근처 골목에 있었다. 나는 소리를 내어 불렀고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왔다. 행여나 사람의 발소리에 놀라 제대로 먹지 못할까 싶어 사람이 잘 보지 못하는 구석에 두고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고 집으로 왔다. 두 시간 가량 혼자 맥주와 치킨을 즐기고 그 녀석이 궁금해 밖으로 나가 참치 캔이 있는 곳을 보았다. 이미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유유히 사라진 고양이.

인간은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어느 한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가 세상이 발전 할수록 사람간의 신뢰는 무너지고 개인주의적 세상이 되어 가는 거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가는 개인 적인 삶에서 이제는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 서로를 헐 뜯기 바쁜 사람들, 그 어디에서도 믿음과 신뢰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되고 말았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만난 고양이 한 마리는 생전 처음 본 나에게 의지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에게 의지 했다. 마음을 보였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것이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니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이제는 잘못된 것 일수도 있다. 그만큼 삭막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아닌가. 괜한 나의 욕심 일수도.

좀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참았던 것,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왔던 것, 이것을 후회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위한 배려를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것인지, 결국 나 자신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 의지 하고 믿음과 신뢰가 있는 세상이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 아니면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맞는 것, 어떤 것이 정답인지 혼란스럽다. .

중요한 것은 요즘 내가 느끼는 세상은 이제 따뜻한 봄보다는 겨울이 어울리는 세상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나부터도 이미 생각과 마음이 겨울이다.

 

 


 

 

2019년, 올한해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남은 날 즐거운 시간 되시고 언제 어디서나 행복한 삶 사시길 기원합니다.

저희는 더 좋은 모습으로작업으로 찾아 뵐 것을 약속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