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月及

 

 

AY Mizuki

언어와 문화의 차이

 

ケン (ken)

간절함

 

nuh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MinHo Yu

작가의 사정에 의해 이번 달은 휴재 입니다. 

 

 


 

 

 

 

AY Mizuki

언어와 문화의 차이

 

 

일단 필자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지금 열심히 타이핑 중인 언어도 한글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적는 이유는

정말로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용을 제외하면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이다.

 

요 근래 몇 주 전부터 우리 집에서

미스터 트로트 인지 뭔지 하는 방송이

거실 TV로 쉬지도 않고 흘러 나오고 있다.

 

집에 계신 어머니께서 즐겨보시는 프로인데

아무래도 음악 프로그램인데다가

트로트 라는 장르가 그다지 조용한 장르가 아니므로

평소보다 내 방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량이

더욱 커진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노래로 불려지는 한국어가 문제는 아닌데,

솔직히 저걸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프다.

역시 노래가 문제인것인가?

 

게다가 조금이라도 극적인 장면이 나오면

네 다섯번 정도 반복으로 방영을 하는데

소음도 이런 소음이 없다.

 

듣기 싫은 소음을 뒤로 하며

내 방의 문을 닫고 방 TV를 켠다.

주로 보는 것은 NHK나 넷플릭스의 빅뱅이론 같은

한국어는 전혀 흘러나오지 않는 것들을 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글의 위대함은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의 문화적인 부분은 정말 나랑 맞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노래방에 가면 내가 부를 것이 없다.

아니… 이제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다.

수십년 동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대화나

야구 중계 또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자막을 제외하면

정말 한국에서 만든 음악이나 방송을 전혀 접하지 않았으니…

 

그렇다고 이제부터라도 한국 가요나 K-POP이나 버라이어티를

열심히 봐야겠다 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겐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미가 없다.

 

반대로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다.

K-POP을 아예 모르는 한국인이라…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사람이 나다.

 

누가 내 배우자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문화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배우자나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부터 해야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구나…)

 

 


 

 

 

 

ケン (ken)

간절함

 

“한국인 비자 안 내 준다는데 괜찮어?”

“하하. 저는 상관없어요. 장기거주자 쫒아내는 건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카요코상에게 전화가 왔다. 괜한 걱정하러 전화하신 게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림에서 느껴진다. 전화의 전파 저편에 있는 상대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눈에 선하다.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힘들거나 씻을 곳 없으면 사양 말고 와.”

“네네,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저번 달에 카요코상 댁에 하룻밤 신세진 적이 있다. 이전부터 한국어 공부교실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분인데 집도 시내에서 멀고 60이 넘은 나이지만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평범한 인생인 탓에 몇 번 못 만났다. 하지만 일본에서 만난 지한파 일본인 중에 정말 한국어 숨은 고수중에 고수다.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굉장히 말은 떠듬떠듬… 하지만 순천대학교에서 60이 넘은 연세에 1년 유학도 했고 본인의 댁에 한국인 홈스테이를 했던 부분이라던지 한국에 대한 인연으로 따지면 최고의 고수다. 그리고 한국어 글쓰기는 거의 손볼 구석이 없는 정도…

 

그 정도로 알고 있다가 저번 달에 도쿄에서는 다른 한국 손님이 왔던 차에 나도 초대받아 바베큐파티를 하면서 여러가지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어교실에 나오는 다른 일본인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분들에게 특히 카요코상에게 도대체 한국어 공부란 어떤 의미일까. 젊은이들처럼 해외여행을 빈번히 다니는 것도 아니고 따로 일본에서 한국인들과 연관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스팩이 좋았던 그런 분들도 아니다. 일평생 그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평범한 서민이다.

 

내가 직장인 시절 그렇게 스키를 타러 다니고, 서핑을 하러 다니고, 소설을 쓰고 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 이유란 무엇인가 굳이 세련된 말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본질이 같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도 국경과 연령과 성별을 넘어.

 

때론 이게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인지 모른다. 이혼 직전까지 갔던 부부관계가 개선되기도 하고, 자살에 실패한 사람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정신병에서 구제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미야자키에 터를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위험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는가? 결국 무엇 때문이 아닌 것이다. 뭔가 거창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함이 아닌 정체가 없는 거창한 무언가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역설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카요코상에게 한국어 공부란 그런 것이다. 시골 산꼴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일하고 중학교 동창이던 보잘것 없는 남편과 결혼해 30년 넘게 살면서 자식키워 분가시키고 또 다시 언제 끝날지 모를 노동시장, 인간에게 똑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시키는 현대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평범함에서 빠져 미쳐버리지 않기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엇그제 카요코상의 전화에서, 그 몇 마디 안되는 말에서, 나는 그런 간절함을 느꼈다. 가까이 한국어 선생도 두면서 너무 평범하기만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일상에 새로운 가족을 두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한 번 더 가야지 하고 있긴했지만 그리 빨리 다시 신세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 간절함에 나는 손을 들었다. 

 

“괜찮으시면 내일 일요일인데 고기나 사서 갈까요?”

“응, 응. 와, 와. 격식차릴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안 사와도 되니 편하게 집이다 생각하고 와. 여기 아저씨랑 같이 전에 갔던 온천도 가고.”

 

그렇게 어젯밤도 고기 굽고 아저씨랑 술을 떡이 되라 마시고 오늘 아침을 얻어 먹으며 카요코상을 다시 보게 된다.

 

어떻게 울 엄마랑 이렇게 꼭 닮았는지. 고생 많이 해서 불어있는 몸. 매일 안 먹으면 안 되는 고혈압약. 정성은 들어있지만 아무런 기교가 없어 투박하기 그지 없는 음식들. 3년 넘게 찾아오지 않는 아들. 그리고 연세까지.

 

누군가 노년기는 삶을 정리하는 시기라고 했는가? 정리따위 인생이란 것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늙어도, 처절함과 간절함은 더욱더 증폭될 뿐이다. 그러니 정리가 될 리가 없다. 

 

사방이 녹차밭에 둘러 쌓인 이 집에서 나도 육신의 엄마를 버리고 가상의 엄마 품에 안겨 쉴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다 싶은 느낌이 든다. 

 

 


 

 

 

 

nuh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어떤 것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2월 한달은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에 끊임없이 생각나는 일이 있고 깨달은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 그러한 일들.

 

 

하나 : 아직은, 언젠가

 

 각 분야별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미술은 빈센트 반 고흐, 사진은 안셀 아담스, 그리고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

 유럽 여행이 좋다고 다들 이야기 한다. 나는 크게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여행에 계획이 생겼다. 반 고흐의 그림 중에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 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미국도 죽기 전에 꼭 가보면 좋다라고 들 한다.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여행을 죽기 전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안셀 아담스 갤러리를 가기 위해.

 사카모토 류이치를 좋아한다. 전집을 모으지 못했지만 굵직한 음반은 몇가지 가지고 있다. 웬만하면 발매 되는 음반은 다 사려고 노력한다.

예상치도 못한 이슈가 있었다.

최근 사카모토씨의 인스타그램에 앨범 발매 소식을 공개했다. 제대로 확인 하지 못했다. 그저 200장 한정 발매 라는 것만 눈에 들어왔고. 그저 사고 싶은 생각만 앞섰다. 소개된 사이트로 이동했다. 슬쩍 훑어보았다. 그리고 친구와 통화를 했다.

 

“사카모토씨 한정판 나와. 200장이더라고.”

 

“아 그래? 뭔데?”

 

“19년도에 작업한 것과 올해 아직 공개 되지 않은 결과물이 담겨 있는데 총 7개의 앨범 구성으로 되어 있더라고.”

 

“가격은?”

 

“120,000엔정도?”

 

“120만원?? 에이~ 12만원이겠지~”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거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내고 통화를 마쳤다.

오후 2시반, 잠이 오기 시작했다. 쉬는 날 버릇처럼 낮잠을 자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처럼 잠이 들었다. 오후 5시, 눈을 떴다. 음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이트에 들어갔다. 무엇에 정신이 팔렸는지 결제 창으로 넘어갔다. 카드 번호를 입력했다. 결제 완료.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현대카드로 온 문자를 체크했다. 아뿔사, 130여만원이 결제가 되었다. 비몽사몽인 나의 머리가 정신이 들었고 생각지도 못한 금액 결제에 등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상품페이지에 표시된 이런저런 약관의 내용을 읽어보고 체크했다. 환불 불가가 명시 되어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당황했다. 음반을 사기 위해 환율을 매일 보고 계산하던 내가 어디에 홀려 아무 생각없이 환율 체크를 하지 않고 그냥 결제를 한 것인가. 0이 더 붙는 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결제를 했을까. 혼자 자책하기 시작했다. 일단 메일 보내 놓았다. 그날은 주말이었다. 영업은 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메일 작성을 하였고, 총 3건 정도의 메일을 보냈다. 본가에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일이 이렇게 터진 것은 일단 마음 속에 담아두고 본가로 발길을 옮겼다. 입맛이 없었다. 아무 이야기도 생각 나지 않았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고 평소보다 적게 먹고 평소보다 일찍 본가에서 나왔다. 정신이 돌아 올 때 즈음,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에 관한 이야기, 사양, 가격 등을 같이 체크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가격은 비쌌다. 그것도 매우. 음반이 100만원이 넘는 다는 것이 큰 부담인 것을. 친구의 도움으로 앨범 사양을 체크 할 수 있었다.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고 130만원보다 더 큰 값어치가 있는 패키지이다. 하지만, 현재 나의 상황에서는 구매 할 수 없는 음반이다.

 

부끄러웠다.

 

구구절절 환불을 받기 위해 적어 내려간 내용, 안절부절 했던 나의 모습, 모든 것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직, 내가 그 200명에 들어갈 형편이 안된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돈이면 현재 나에게 필요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장비를 몇가지 살 수 있고, 이것저것 등등의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환불 해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뭔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과연 나는 정말 그의 팬인 것인가 하는 생각. 팬으로서 갖고 있던 마음과 남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일, 언제나 마음 속 한 켠에 간직 해 둔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부끄러움이 되고 무너져 버렸다는 좌절감. 그리고 미안한 마음, 반성. 물론, 아무리 팬이라도 무조건 다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의미 있는 앨범을 팬들을 위해 발매한 그 마음에 대한 나의 행동이, 환불을 받기 위해 처절하게 써 내려간 세 통의 메일, 그 과정,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

출근 할 때 매일 듣던 사카모토씨의 음악을 환불 이후 자연스럽게 트랙을 넘기며 아직 까지 듣지 않고 있다. 그 분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부끄러움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둘 : 아픈 만큼 성숙

 

최근 한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다. 이름하야 코로나.

2일을 쉬는 날이 있었다. 친 형이 집에 놀러 왔다. 같이 게임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루가 지났다. 오후 무렵, 머리가 뜨겁기 시작했다. 몸은 느끼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오고 있다는 것을. 괜찮냐는 형의 말,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가면서도 걱정해주는 형.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같은 매장에 있는 형에게 연락을 했다. 머리에 열이 난다고. 일단 점장에게 연락을 해보라는 그의 말. 점장과의 통화.

 

“일단 1339에 연락해서 한번 물어봐. 혹시 모르니까.”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이 코로나일까? 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감기였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 전화를 하여 이런저런 증상과 상태를 설명했다.

 

“일단 설명해주신 것으로 봐서는 코로나는 아닌데, 증상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내일까지 상태를 보시고 코로나 증상으로 의심되면 연락 주세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아팠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

 

“명훈아, 혹시 모르니까 쉬자. 나도 혹시 몰라서 본사랑 통화 해봤는데 일단 쉬는 걸로 하라고 하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고. 길게는 아니지만 2일 더 쉬고 나와. 그런데 2일은 너 휴가 사용해서 쉬어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의도치 않은 자가 격리를 하게 되었다. 결론은 나왔다. 그냥 감기. 통화를 마친 후 감기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 설 수가 없었다. 감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허리가 나갔다. 너무 아파서 어딘가를 짚고 일어서지 않으면 설수가 없는 상황.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부랴부랴 진통제를 먹고 파스를 붙이고, 누워도 아프고 서도 아프고. 결국 아프지만 내일을 위해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통증과 함께 추가로 쉬게 된 2일 후 출근 하였다. 감기는 진작에 끝났다. 걷는 것 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의 통증. 회사에 이야기하고 근처 병원을 갔다.

 

“신경을 누르고 있네요. 신경 치료 하고, 물리치료하고 약 챙겨 드셔야 합니다.”

 

왜? 갑자기 왜?

짜증이 몰려왔다. 어떻게 이렇게 한번에 올 수가 있지? 안좋은 일은 연달아 일어 난다고 하더니 맞는 말인가? 너무 싫었다. 현재의 상황이.

물리치료를 받는 날, 이상하게 뭔가 내가 지금 아프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어쨌는지. 그 순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아픈 것을 알리는 사진, 무언가를 어필 하고 싶은 사진을 올린 사람들을 보면

 

‘굳이 이런 거 왜 올리지?’

 

하고 생각했지만 내가 같은 상황이 되어보니

 

‘위로 받고 싶고 알아줬으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반성, 안좋은 그런 생각을 했었던 지난 날의 나에 대해 반성. 나도 위로 받고 싶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 보았으나 지금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사람의 위로, 무언가 생각이 많아졌다. 아픔이 주는 것은 아픔으로 인한 통증보다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이 더 아픈 것이 아닐까.

 

 

2주째 허리로 인해 아무 작업도 하지 못하고 잉여 생활 중인 나로서는 일단 컨디션을 조절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아프지 마시길. 그리고 건강 하시길.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