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月及

 

 

MinHo Yu

어른의 맛

 

Alex Yu

결국은 사람

 

ケン (ken)

히말라야

 

nuh

마지막까지

 

 


 

 

 

 

MinHo Yu

어른의 맛

 

얼마전에 tv채널을 무의식 적으로 돌리다가 “타타타”가   흘러나오기에 멈추었다

그리고 한동안 방송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노랫말에 귀 기울여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방송의 mc의 설명은 나를 실소하게 만들었다.

“타타타”는 “산스크리트어로써 있는 그대로의 것 꼭 그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작사가에 따르면 인도 여행 중 우연히 듣게 된 단어에서 의미를 따다

작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노래는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은 누구나 알 만한 대중가요다.

그 당시 30%에 달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던 주말 연속극에 삽입되어서 발매 후 1년 후에

소위 요즘 말하는 역주행을 하고 그 해 국민가요로 등극했다.  10살짜리 꼬마인 나도 혼자서 흥얼거릴 정도였다면 말 다한 거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 저학년을 벗어난 녀석들이 교실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선생님들이 얼마나 기가찮을까? 실제로 어린놈들이 뭘 안다고 모여서 무슨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냐며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사는거지 그런거지~ 음음음 허허~

극중에서 어머니 역의 중년 여배우가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며 방에 모로 누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흥얼 거리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다.

그리곤 나의 시간은 30년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나름의 질풍노도의 시절을 지나

지나고 보니 가장 찬란했던 청춘을 아까운 줄 모르고 불쏘시게 삼아 사랑 놀음으로

한 세월 탕진하고 난 뒤였다.

곡의 클라이맥스에 그의 해탈한 듯한 웃음에 그저 깔깔거리고 웃던 10살 철부지는

이제 정말 속된 말로 눈물이 차오른다. 어린 아이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많은 것의 맛을 알게 된다. 쓴 소주 맛. 톡 쏘는 홍어 맛 어릴 때 죽어도 안 먹던 나물 따위의 맛 등

여러가지다 대부분 불호(不好)에서 호(好)로 돌아선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호(好) 라고 한들 어딘지 모르게 기쁘지 않았다. 몰라도 되는 맛인 것이다.

 

 


 

 

 

 

Alex Yu

결국은 사람

 

 

전 직장을 퇴사하고 한달이 지났다.

어떻게 보면 쉬었다 할만한 기간이 없다시피 새로운 직장을 잘 구했고,

퇴사하기 전까지 내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폐했으며 고통스러웠었는지

잘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흰머리의 증식 속도와 체중 증가

그리고 대화나 전화통화 중 날이 선 반응의 횟수와

2월의 닉네임 변경…

(Alex Yu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확실히 나의 정상적인 신체 변화와 반응들이 아니다.

솔직히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정말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재미있는 것은 가까이 있는 친구들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회사를 퇴사한 것은 네 인생에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진짜 더욱 더 크게 공감한다.

퇴사 사유야 다른 이유였지만, 사실 그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퇴사를 했어야 했다.

퇴직금까지 다 받은 마당에 이제서야 밝히지만…

사람이 안 맞았다.

사람이 안 맞으니 업무는 계속 손에 잡히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 작성 된 4월 월급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분명 성과를 봐도 내가 못한 일은 아닌데,

결국은 사람 잘못 만나서 잘 한 것은 아니게 된다.

어찌되었건 지난 달 5월 월급은 패러디로 대충 마무리 해서 작성하였지만

이제서야 어느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퇴사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생각해보면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일이 좋아도 사람 때문에 나가고,

일이 싫어도 사람 때문에 남는다.

오늘 멋진 석양을 바라보며 전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월급으로 정리한다.

 

 


 

 

 

 

ケン (ken)

히말라야

 

 

장마가 한창인 와중에도 주말마다 어찌어찌 비가 멈추어준다. 장마가 시작되고도 매주 등산을 한 것 같다. 가고시마까지 가서등산용품을 구입한 게 헛일 되지 않아 다행이다. 구름이 시커멓고 낮게 깔려있어도 산에 오르면 갠다던지, 금요일밤 토요일 비예보가 있는데 막상 토요일 아침 화창한 하늘, 산꼭대기에서 물을 잔뜩 머금은 안개가 바람에 세차게 비처럼 흩날려도, 하산하다보면 으레 맑아졌다.

이런 게 하늘이 돕는다고 하는 것이겠지.

언제나 혼자다. 주위에 같이 가자고 할 사람도 없고, 처음 만난 등산객이랑 친구가 될까도 해보았지만 역시 인연이 연결되지 않는다. 먼저 말을 걸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한 사람과도 약속이 깨져버린다.

이런 게 또 하늘의 뜻이라고 보아야겠지. 

인연은 커녕 등산객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장마기간에 날씨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없이 산에 오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찬한다. 뭔가 남들보다 더 하고 있다고. 그리고 목표했던 지점보다 좀 더 멀리, 좀 더 높이 올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혼자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 용을 쓰며 산을 오르며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 훈련은 외로움인가 하고… 물론 마지막이라는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지만. 외로움이라기보단 ‘홀로지내기’라고 해야겠다. 나가오상도 있고 너싱맴버들과도 늘 소식주고받으니. 

요즘 무인도에 혼자 뜰어진 듯한 느낌이 한번씩 찾아온다. 비행기도 끊기고, 코로나에 장마에 고객도 없고, 등산을 해도 등산객이 없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등산은 힐링의 기능을 아주 잘 장착하고 있다. 어제 하루 7시간 산을 걸으면서 뼈져리게 느꼈다. 외로워서 내면으로자꾸 움츠러 들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응어리같은 놈을 밖으로 발산해야 한다는 것을.

산에서 만난 73미터짜리 폭포, 뱀 3마리, 피를 빨아먹으려고 맹렬하게 달려드는 산거머리 5마리 정도. 특히 산거머리는 조그만한 것이 얼마나 움직임이 맹렬한지 등산복 바지를 뚫으려고 온몸을 스크루로 만들어 파고든다. 

저것들과 씨름하다 보니 확실히 외로움 또는 홀로지내기라는 단어가 그리 가까이 있다 느껴지지도 않고, 가까이 있다한들 그저피식 웃으며 끝낼 정신이 생긴다.

그렇게 히말라야까지 생각이 미친다. 일본열도 한구석, 미야자키 산속 깊이 숨겨진 폭포와 들짐승들이 마음을 다독여주는데, 히말라야는 얼마나 더 감동스럽고,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내 속의 응어리를 후련히 풀어줄까. 

히말라야 쿰부 트레킹이 내 인생의 진정한 반환점이 되길 바란다. 5월급 쓰고 나서 지금까지 한 달 내내 히말라야 트레킹만 생각한 것 같다. 등산도 사실상 히말라야 트레킹의 연습이 되어 버렸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니 더더욱 간절해졌다. 아무 할 일없이 구글지도 펴놓고 네팔 동부 산악지역을 뒤적뒤적거리며 사진을 보고 생각에 잠기고를 반복한다.

지금 당장 갈 시간과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반환점이 내 예상을 초월해 더 확실한 타이밍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직 너는 기다려라하는 하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홀로지내기와 기다리기를 배우라고.

 

 


 

 

 

 

nuh

마지막까지

 

 

지난 12월, 주변 지인과의 약속이 다수 있었고 이로 인해 한동안 해왔던 운동을 멈췄다. 그렇게 멈춘 운동으로 인해 2월말 허리를 다치게 되었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지금까지 통증을 가지고 지내고 있다. 그 사이 생긴 무기력증도 서서히 괜찮아지고 있지만 좋아진 만큼 나의 생활 패턴도 많이 바뀌었다. 무언가는 멀리하고 무언가는 가까워지는. 썩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 되었던 것. 그로 인해 지금 거의 직장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퇴근 후 티비와 잠, 아침은 일어나서 출근의 반복. 무언가 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지난 날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가게 된 것. 하려해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굳어있는 느낌이 강하다. 최근 기회가 종종 있어서 사진도 찍으러 가고 해서 그나마 좀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본래의 생각으로 돌아오기에는 아직 좀 남은 것 같다.

노력도 필요 없으니 귀찮아 하지만 말자.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말자.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