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月及

 

 

MinHo Yu

내 쓰레기는 내 집 앞에

 

Alex Yu

안녕 nuhthingstore

 

ケン (ken)

자화상

 

nuh

새로운 시작

 

 


 

 

 

 

MinHo Yu

내 쓰레기는 내 집 앞에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사시는 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단독 주택의 경우 쓰레기 배출은 본인의 집 앞에 정해진

시각에 배출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듯이

내 집에서 냄새 나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경우도 많죠 그러다 보면 일정 구역에

쓰레기가 모이게 됩니다 보통 동내 초입이나 공터 인근이죠

그렇게 된다면 그곳은 필시 쓰레기장으로 변합니다.

 

쓰레기가 모여 잇는 곳= 쓰레기장 이런 수식이 어느 순간

성립 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그곳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게 됩니다. 다들 거기에 버리기에

나도 그냥 그곳에 내다 버렸다 그리 말하곤 합니다.

 

그럼 그 쓰레기장이 자신의 집 앞인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악취와 각종

해충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어느 누군가는 결국 희생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집주인은 무슨 잘못인가요? 집이 그냥

거기 있을 뿐인데 말이죠.

 

저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를 한 사람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고 그저 가끔 찾아가 방송을 듣고 얄팍한

도네이션을 하는 정도이죠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TV수신료 정도의 개념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느 날인가 방송에서 이런 저런 대화 끝에 이런 이야길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네이션을 하는 목적 중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면 하는 이라고 하더군요.

 

오늘 하루가 기분이 더러웠다, 인생이 안 풀린다 우울하다 등등..

그런 넋두리 식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다고.

물론 처음에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꽤나 열심히 들어 주었답니다

공감도 해주었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정도가 심해져

대화나 공감이라기 보다는 감정을 일방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변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도네이션을 했다고 하지만. 힘들어요”

“스트리머는 시정자들의 감정 쓰레기 통이 아닌데…… “

 

물론 지금은 나름 경력이 있는 인방인(인터넷 방송인) 인지라

적당히 끊어주고 받아칠수 있는 짠밥이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어

주더군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고 있죠 그리고 그 대상은 대부분

 측근 입니다.  너는 친하니까 내 이야기 이 정도는 들어 줄 수 있잖아? 이런 식입니다.

 

자신의 감정 .기분은 내 몫입니다.

다소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어른이라면 자신의 감정 정도는 본인이 컨트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기분이 더럽다고 그 더러운걸 남한테 풀려 하는 건 내 집 깨끗 하자고

남의 집 앞에 쓰레기 내다 버리는 꼴인 겁니다.

그거 그냥 놔두면 내 마음은 쓰레기장이 됩니다

누가 됐던지 간에 단호하게 이야기 하세요

 

본인 쓰레기는 본인 집 앞에 버리세요……

 

 


 

 

 

 

Alex Yu

안녕 nuhthingstore

 

 

9월 15일

nuhthingstore의 마지막 짐정리날이자 nuh의 이삿날.

 

아침 근무중에 nuh에게 갑자기 찾아온 짤막한 감정이야기와

사진을 몇 장 받았다.

 

nuhthingstore의 짐이 다 정리된 사진.

 

잠깐 사이에 수만 가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매장 자리를 알아볼 때부터,

페인트 칠, 바닥재, 가구 구매, 방문했던 사람들,

냉장고에 항상 있는 초코파이,

내 집 준공 문제로 떠돌이 생활 할 때

nuhthingstore를 이용했던 것들 등등…

갑자기 울컥했다.

 

진짜 손도 많이 가고, 정도 많이 간 장소였는데…

한동안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잠시 가다듬고,

들어오는 업무를 멈춘 후 멍하니 있었다.

 

‘그래… 나중에 다시 상황이 좋아지면 또 열면 되지.’

라고 스스로를 응원하며 업무로 다시 뛰어들었다.

 

오늘 nuhthingstore의 정리와 집 이사 하느라 고생한 nuh에게…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 매우 축하하고,

매장 정리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같이 정리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ケン (ken)

자화상

 

 

최근에 SNS에 올릴 사진이 필요해서 내 사진을 찍었다. 항상 양말사진 아니면 풍경사진이나 찍었다. 그것도 코로나로 인한 영업부진 때문에 사진 찍을 일 자체가 없어졌지만.

 

자기 사진, 그림으로 치면 자화상이지만 자기 사진을 찍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웃는 얼굴이다. 

 

사람이 평소 얼굴에 힘을 빼고 있으면 무표정이다. 힘을 빼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웃는 얼굴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타고난 행운을 가지고 있는 것일 것이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왠지 웃는 얼굴의 자화상은 거의 없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았다. 반고호, 프리다칼로, 램브란트 등등 입을 꾹 다문 무표정이 대부분이다. 또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추상적 자화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설 때 웃지 않으면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반쪽 밖에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그 때부터 거울을 항상 가까이 하며 지낸다. 지겨울 정도로 내 얼굴을 보며 스스로에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 산을 걸을 때도 사이클을 탈 때도 항상 웃는다. 아직은 인식하지 않으면 웃지 못한다. 무표정하게 그냥 걷고 달리다 아차 싶어 일부러 얼굴 근육을 움직인다.

 

머리 속에서 계속 지령을 내린다.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눈을 크게 뜨고 웃으라고. 그게 내 얼굴에 붙을 때까지.

 

웃는 만큼 웃지 않는 자화상들을 생각하게 된다. 프리다 칼로의 1926년작 ‘벨벳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을 보면 너무나 우아하고 격조 높은 여인의 모습이 나온다. 자화상에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 신분을 상징하는 진보라 드레스에 밝은 피부의 긴 목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도, 뒷 편에 있는 어두운 하늘과 구름, 파도는 마치 나쁜 마법에 걸린 여왕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에 피카소의 1906년작 자화상은 아주 단순하다. 색도 없고 얼굴의 윤곽과 눈동자만 살아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중요하다는 극한의 자기 중심주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모두 한결같이 뭔가 고민하고 아파하는 자신을 표현한 느낌이다. 문학가든 화가든 인간의 깊은 곳을 파고 들다 보면 그 속에 즐거움이나 쾌락은 없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인간의 진실과 이면을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서 그런 것일까. 그리고 인간의 깊은 내면에 즐겁고 긍정적인 게 없어서 그런 것일까. 

 

뭔가 결론은 깔끔하게 내리기 어려운 주제지만 최소한 내가 쓰는 소설 만큼은 인간을 깊게 파고 들더라도 뭔가 밝은 모습을 많이 끄집어 내가고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반고호가 활짝 웃는 자화상을 남겼더라면 아마 지금 그 가치는 역사상 최고의 그림이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nuh

새로운 시작

 

 

끝, 작별, 그리고 다시 시작

 

의도치 않았던 것이 내 삶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이곳은 매우 조용하고 한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매우 즐거운 느낌으로 가득하다. 이 모든 것이 다 준비 되었던 것 처럼.

 

다시 시작 될 30대 중반이 넘은 이 나이에 조금씩 설렘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