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숙인

04. 투숙인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2년전이다. 

 

남편의 생활습관에 대해 엄격한 아내에게 겨우겨우 허가를 얻어 어느 섬나라로1주일 혼자 서핑 여행을 떠났다. 해외 여행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하게 되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래서 지도를 펴 높고 그냥 대충 위치를 찍었다. 최남단 어딘가. 파도가 좋고 따뜻할 것 같은 곳 어딘가. 

 

적도 가까운 남쪽 지방이니 당연히 파도는 좋을 것이고 서핑샵 한 두 군데 쯤이야 어딘들 있기 마련이다. 예상대로였다. 눈감고 대충 찍은 위치에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서핑샵이 있었다. 그리고 서핑샵 위치와 주소, 전화번호만 들고 무작정 별 계획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 다음 버스에 몸을 싣고 손가락으로 찍은 그곳에 도착했다. 원숭이가 사는 바닷가 숲 속 마을. 대중교통도 없고 식당도 없고 서핑샵 하나 있는 아주 작은 시골 어촌 마을이었다. 파도는 환성적이었다. 이제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초보 서퍼에게 더할나위없이 좋은 바다였다. 매일 무릎 높이 이상 되는 파도가 들어왔고, 로컬들도 많지 않았고 있어도 아주 친절했다. 

 

거기서 어떤 서퍼를 만났다. 그 사람에게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핑 좋아하시면 거기 만한 곳이 없죠. 음식도 맛있고요. 다음에 기회되시면 꼭 가보세요.”

 

그 때로부터 정확히1년 후. 회사에서 시장조사에 파견될 사원에 내가 선발되었다. 말이 시장조사지 노는 게90%인 그런 출장이었다. 예산부족으로 인근지역으로 한정. 계획도 가장 선임사원인 내가 짜게 되었다. 이쯤되면 하늘이 이 기회를 나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같이 가는 후배 사원들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 한 잔 걸칠 생각외에는 아무 생각없었다. 

 

렌트카 빌려 타고1주일 여정 중에3일째 날 이 곳에 오게 되었다. 유독 비가 많이 쏟아진 날이었다. 겉으로 보면 작은 지방 소도시였다. 아무리 감각이 무딘 사람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한 그런 특징은 전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지구상 어디나 똑같은 하늘이지만 여기의 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솔직히 아름다운 하늘은 여기 정착한 후 발견한 매력이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살아야지가 아니라 이미 내 인생이 여기로 결정되어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년 전 출장 당시야 우연히 전해들은 정보때문에 오게 되었다곤 하지만, 사실 출장출발 전부터 내인생의 다른 막이 펼쳐질 장소가 여기였다는 느낌, 지울 수 없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에 새로 자리잡는다는 것. 인간이 살아가면서 내려야 하는 결정 중에 아주 큰 결정이다. 누구나 하는 결정은 아니다. 옛날 농경사회에 비해 거주이전이 훨씬 활발해진 요즘사회지만 여전히 한번 살던 곳을 떠나긴 쉽지 않다. 농경사회에서는 서로 돕는 게 필수라 이탈은 곳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에 반해 개인화 된 요즘사회지만 여전히 다른 뭔가의 이유로 자기 동네를 떠나긴 쉽지 않다. 왜일까? 생전 처음 와 보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들지만 그게 엄청난 큰 일로 받아들여지는 그 분위기는 왜일까? 

 

인간은 정착을 해야하는 동물인가? 자기 영역을 분명히 구분지어 사는 들짐승들이랑 이 부분에서는 별로 다른 게 없다.

 

물론 나는 결정내리기 그리 어렵진 않았다. 직업도 버리고 가족도 버렸으니까. 그렇게 뭔가를 갈망하던 직장생활. 회사 욕을하고 술마시며 동료들과 인생을 이야기해도 벗어날 수 없는 직장이라는 굴레.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력한 가족이라는 굴레. 다 벗어버렸다.

 

처음에 시내에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민박집에 숙박했다. 골목은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집에 사람이라곤 다른 투숙객 한 명 뿐 아무도 없었다. 관리는 사람도 다른 곳에 살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친절해야 먹고사는 굴레에 갇힌 인생. 그 굴레란 숙박업, 그런 사람이었다.

 

집은 꾀나 매력적인 고즈넉한 단독주택이었지만 오랜시간 장사를 위해 최적화된 상태라 저렴한 가격답게 지저분하고 너저분했다. 제일 마음을 상하게 만든 건 동전을 넣어야 돌아가는 에어컨.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따뜻한 남쪽나라의8월말이라 더더욱 당연하다. 바퀴벌레 수십마리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싱크대 서랍장보다 내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 절대 열어보고 싶지 않은 그 서랍장보다 더 기분나쁘다. 

 

투숙객은 이미 한 명이 있었다. 이 지역 사람은 아니고 취직 공부를 위해 여기와서 공부한다고 했다. 20대 초반이었다. 

 

“혹시 여기 버스 시간표 어떻게 되나요?”

“밖에 정류장에 써 있어요?”

“더운데 에어컨도 안 켜고 공부하시네요. 힘들겠어요.”

“그냥 그래요.”

“여기 밥은 보통 어떻게 해 드시나요?”

“알아서…”

 

대답이 단답형이고 표정도 돌인형같이 일정했다. 물론 웃지 않는 얼굴. 쭉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말 거는 게 귀찮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네 번째 말 건네기에 적잖이 용기가 필요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같이 지내야하니…”

 

라고 묻고 싶었으나 결국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저런 세끼 이름따위 알아서 뭐하겠냐 싶었고 장기투숙할 마음이 사라져서 더더욱 그랬다. 여기 오기전에 분위기가 좋으면 주인에게 장기투숙 이야기를 해볼 심산이었지만 들어온지1시간도 안되서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다. 돌아서서 내방으로 가는데 나에게 한 마디 한다.

 

“혹시 오해할까 싶어 말씀드리는데 저는 여기 안내인 아닙니다.”

“아, 네.”

 

에어컨은 동전 하나에3시간이었다. 잠깐 밖에 나가 점심거리를 사온 다음에 에어콘을 가동시키고 가스렌지에 물을 데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처음 부엌을 보고 여기서 요리같은 건 하지말아야지 다짐했지만 불친절남 때문에 잊어버리곤 조리해야하는 식품을 사왔다. 아차 싶었으나 늦었다. 다 먹고 정리하는데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시간을 전부 사용하고 싶었으나 이 동네 지리도 익히고 뭐 살 것도 있고해서 밖에 나가야 했다. 그 집구석에 오래 있기도 싫었고 어둑컴컴한 주방겸 거실에서2시간을 더 보낼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인구40만 도시의 거의 한 가운데 쯤 나는 있었다. 큰 강이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그 끝은 금방 바다다. 나는 민박집을 나와 걸어서 가까운 강변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강 둑에 올라 바다 반대방향을 보면 멀리서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다. 고수부지에는 잔디밭이 파릇파릇하고 물도 깨끗해 보였다. 강둑에서 바라본 시내의 풍경은 일정했다. 스카이라인이라 할 것도 없이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파란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건물들이 쓸데없이 아름다운 하늘을 가리지도 않은 이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하늘은 숙소 잘 못 선택해서 나간 멘탈을 금방 회복시키기에 충분했다.

 

강 둑을 걷다보니 눈은 저 멀리 산으로 향했다. 하늘과 맞닿은 산능선이 아름다웠다. 세모. 그냥 하늘을 찌르는 삼각형의 뾰족한 한 쪽 뿔모양의 산들이 겹겹히 쌓인 게 하늘과 산의 경계이지만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디자인보다 창조물보다 아름답다. 명색이 나도 농사꾼의 자식이다. 물론 손에 흙묻혀 본 적은 없지만 전직장 동료들과 술취해서 이야기 할 때면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했다.

 

“세상에 농사가 젤 힘든 거야. 농사 다음으로 어려운 게 영업직이야. 영업도 여러가지. 책영업으로 성공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뭘 해도 먹고사는 사람, 자동차영업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전세계 어디든 살 수 있는사람, 보험영업으로 성공한 사람은 우주에 대려 놓아도 살 수 있는 사람. 근데 보험영업 성공자 보다 더 위해한 게 농부야. 먹을 거리를 기를 줄 아니 먹고 사는데 문제 없자너.”

 

옆에 다른 부서 과장이 이야기를 거든다.

 

“야, 농사도 돈 있어야 짓는다. 모종값에 비료값에 비닐하우스 장비에 사람부리면 인건비에, 그거 완전 사업이다. 옛날 농부가 아니야. 농기계며 그 유지비며…”

 

그렇게 나는 뭔가 농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곧 흙에 대한 로망이다. 식물은 먹을 수 있는 것들 외에는 전부 인간에게 쓰디쓴 독과 불편을 안겨 주지만 흙은 그렇지 않다. 향긋한 냄새는 아니지만 싫은 냄새도 아니며 썩지도 않고, 더욱이 생명을 키워내는 능력을 생각하면 신비롭기 한이 없다. 

 

실제로도 도시생황 청산하고 시골동네로 왔으니 그 로망에 몇 발짝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농부나 될까? 하지만 여전히 육체노동에 대한 거부감은 있다. 그렇긴 했어도 저 산, 저기에 또 뭔가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그런 생각하며 강둑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