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

호스트

 

 

약속장소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몇분 간격으로 계속 사람을 실어다 주는 대도시의 지하철에 익숙해져 있나보다. 버스시간표를 보자마자 빈정거림이 무심코 나온다. 시청은 세금받아서 뭐하나. 차 몰고 다닐 돈 없는 사람은 집에 쳐박혀 있으라는 소리군.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에게 배신당할 경우 나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제 당연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하는 내 인생이다. 큰 결심으로 지금까지의 생활을 다 청산하고 여기 지구 한 구석의 후미진 곳까지 왔다. 더 이상 대도시의 지하철이 당연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침마다 전투를 하듯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고 퇴근을 한다. 제일 붐비는 구간은 지하철이 마치 종량제 쓰레기 봉투같다. 봉투값 아까워서 되도록 많은 양의 쓰레기를 구겨넣어 불룩해진 쓰레기 봉투다. 그게 사람의 이동수단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동할 때의 모습이 당연히 쓰레기 봉투 안에 짓이겨진 쓰레기들 같아야 하는가?

 

버스를 타보니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거의 종점에서 종점까지 구간이었다. 그 사이 타고 내린 사람 다 합쳐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모두 운전을 스스로 할 수 없어보이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었다. 대형버스말고 그냥 봉고차 한대로 운행해도 전혀 문제 없어보였다. 그들, 노인 승객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어디론가 가야한다. 도보로 가능한 거리에 모든 것이 모여있지 않아서 그렇다. 그리고 지루해서 그렇다. 나는 후자 쪽이라 내 보금자리라 생각했던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어딘가에 와 있다. 사람이 똑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걸어서 도달 가능한 거리안에서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 그 반경안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감옥이라는 것. 옛날 농경시대 사람은 그러고 살았겠지. 현대사회는? 어디론가 떠나기가 쉽지만 결국 한 장소에 장기간 머물수밖에 없는 건 과거나 똑같은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동네의 풍경과 산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밖에 볼 것은 없고 잠을 자지 않는 이상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한다. 지구상 어디에나 있는 산과 사람이 사는 동네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또 새로운 만남과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 여정이 지겹고 무의미하고 짜증난다. 영화처럼 파란만장하고 보람있고 재미있는 사건이 펼쳐질 확율은 아주 낮다. 사람의 인생에 기승전결도 클라이막스도 지중해 요트위에서 멋진 상대방과 와인을 마시며 끝나는 해피앤딩도 없다.

 

하지만 하늘도 깨끗하고 노인들을 십분 배려하는 기사 아저씨의 태도는 좋았다. 다만 너무나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말투가 기계음 같아 아쉬웠다. 버스회사가 써줘서 입력한 대로 맨트가 나왔다. 자연스런 말투였으면 내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느끼는 마음을 더 훈훈하게 데워주었을텐데 아쉽다. 그래도 충분하다.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노인들과 함께 친절한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를 타고가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쯤 지나 거의 종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았다. 밖에 동네 입구를 알리는 환영메세지 야립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자연유산의 보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지역 관광안내소에서 안내인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깊고 울창해서 세계가 인정할 정도의 숲이 이 지역에 있다는 것. 하지만 이곳이 그곳인지는 간판을 보고 알게되었다.

 

버스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 큰 길로 나왔다. 큰 길이라고 해봐야 왕복2차선의 직선으로 쭉뻗은 도로다. 아직 약속시간이30분정도 남았다. 해는 저물기 시작했지만 아직 하늘이 붉게 물들진 않았다. 아무생각없이 그냥 좀 걸었다. 가만 서서 기다리느니 걸어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도로와 인도는 깨끗했다. 인구 몇1~2만 될까 말까한 시골마을 중심가이지만 정비가 잘 된 지역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도로 양쪽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반은 셔터가 내려진 채였고 내리고 아주 오래동안 다시 올라간 적이 없어보이는 상점들이었다. 이런 가게들은 항상 내 마음 한구석을 서운하게 만든다. 그 자체로 많은 부정적인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이 많은 동네였지만 지금은 없다는 사실. 누군가는 장사가 망했다는 사실. 젊은 사람이 이런 곳에 와봐야 농사 짓는 거 아님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실. 녹슨 셔터와 셔터를 땅에 박힌 고리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는 무거운 자물쇠. 그 자물쇠도 원래 색깔을 못 알아볼만큼 녹이 슬어있었다. 철에 스민 녹을 보면 어김없이 사람이 만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 맨손으로 찟을 수 없는 철이, 그렇게 강한 철이 공기에게 잠식당하고 세월이 아주많이 지나면 먼지처럼 사라진다. 대단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기가 그렇게 단단한 철을 가루로 만든다니. 시간의 무서움, 당연한 것들의 무서움이다.

 

나는 약속장소에 다시 돌아와 조그만 나무 의자에 걸터 앉았다. 역시 셔터 내린 어떤 상점 앞이다. 의자도 틀림없이 상점주인의 소유물처럼 보였지만 사람이 많이 앉았던 곳인지 나무는 반질반질 윤이 나있다. 어떤 경승용차가 내 앞에서 멈춰 선다.

 

“COMMING-HOUSE게스트시죠? 타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호스트가 남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였다. 나이는20대. 많아야30대초반. 피부는 검다. 그리고 파리도 앉으면 미끄러질 정도로 깔끔하다. 구릿빛 깔끔한 피부. 서핑을 많이 해서 탄 건가? 운전대를 잡은 손도 같이 검은 걸 봐서 피부 전체가 검은 것이다. 얼굴만 탄 건 아니다. 여자의 피부라면 아무래도 새하얀 피부가 매력이겠지만 이런 구릿빛이라면…하고 생각들 정도로 이쁜 구릿빛이었다. 

 

목소리는 허스키보이스의 대명사라 해도 될 정도로 허스키. 그 또한 어이 없을 정도로 매력넘치는 목소리였다. 언젠가 호스트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키는150 초반 정도, 군살없이 날씬한 몸매였다. 키가 작아 좀 아쉽긴 했지만 내가 아쉽다고 어쩔건가?

 

“죄송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시라 그래서요. 민박이라도 명색이 숙박업인데 두세시 정도는 체크인 해드리고 짐풀어 놓고 낮시간대에 돌아볼 시간을 드리는 게 맞는 건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래 있을 거라. 꼭 숙박업이 그래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오는 분들은 그러시더라고요. 며칠 안되는 여행에 여기 오는데 하루 그냥 날리는 기분이라고.”

“아,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여행중이세요?”

 

한 달 예약한 사람에게 여행중이냐 묻는 건 뭐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사연이 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하나 하고 속으로 호스트를 나무랐다. 하지만 내 독선일뿐이다. 상대방이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알겠는가? 알아도 먼저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일.

 

“네.”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앞으로 이야기 할 기회 많이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