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건

03. 사망사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내 생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역시 따뜻한 남쪽지방이라 그렇겠지. 6월 한 달을 넘어 거의 7월 중순이 다되기까지 해가 뜬 날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비가 안 오는 날마저도 몇 시간 잠깐 햇가 반짝인 것 뿐. 아주 시원하게 비는 대지를 적시고 이제 일년 내내 비가 안 와도 가뭄이 아닐정도로 아주 흠뻑 땅을 적시었다. 나는 그게 좋다. 그렇게 아주 재대로 내리는 비가 좋다. 거실 큰 창을 끝까지 열어젖혀 놓고 문틈에 엉덩이 걸치고 앉아 앞 집 기와 지붕을 세차게 내리치고 처마 끝으로 폭포처럼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 내 마음의 묵은 때까지 시원하게 빠져가나는 느낌이다.

우리 동네 살인 사건이 일어난 때가 그 때다.

원래 농산물과 깨끗한 자연으로 유명한 동네이긴 했지만 그 사건 덕분에 전국방송에 우리 동네이름이 전국민의 뇌리에 더 확실히 새겨졌다. 전국뉴스, 시사프로그램, 대담프로그램 등등 심층분석이니 뭐니 그런 프로그램에서 한달을 넘게 방송국마다 그 살인 사건을 다루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레파토리 반복. 방송이 전국민을 살인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기억시겠다는 듯이, 완전히 세뇌될 만큼 반복시켰다. 처음 일주일 좀 지켜보다가, 다음부터는 그 방송만 나오면 나는 티비를 꺼버렸다. 인터넷 기사도 보지 않았다.

그렇찮아도 세뇌방송인데 사건의 전말이 단순명료해서 더더욱 반복이 지루해졌다. 할 말도 없는 사건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떠들 수 있는지 방송 편집부도 정말 대단하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처음 드러난 사건의 전모 이외에 수사에 진전이 거의 없다. 사건은 거의 백퍼센트 미해결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피해자는 50대의 여자였다. 미모가 보통이상은 되는 여성이었다. 50대이지만 지나가는 남자들이 한 번씩 눈길을 돌릴만큼 자기 물리적 장점을 그 나이까지 아주 잘 지켜낸 여자였다. 같은 동네 사람이라 나도 오며가며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주로 거처하는 집이 이 동네는 아니었다. 가끔씩 왔다갔다 하는 모양이었다. 한 번 왔다싶으면 한 두달 정도 머무르는 정도. 내 느낌이다.

사인은 동물의 공격에 의한 과다출혈. 목이 물려 살점이 떨어져 나갔는데 식도와 동맥정맥이 단번에 끊어져 호흡곤란과 과다출혈이 일어나 사망. 그 정도라면 과다출혈보다 질식이 먼저 일어날 것 같은데, 아무튼 경찰 감식결과 발표는 그랬다. 사인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맹수의 공격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시신의 목부분을 봤다면 누구라도 사나운 육식 들짐승의 짓이라고 확신할 정도였다. 피해자의 자동차도 도로에 세워져 있었고 시체가 놓인 장소는 도로가에서 조금 들어간 산길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현금 귀금속 등 전부 그대로 있었다.

여기까지 보면 살인사건치고 특별한 건 없다. 살인사건이 아니고 그냥 사망사건이다. 공식 명칭도 나중에 살인사건에서 사망사건으로 바뀌긴 했지만. 문제는 시체의 상태였다. 아주 반듯하게 차렸자세로 놓여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걸 감안해서 시체가 비가 맞지 않도록 되도록 나무가지가 무성한 곳 안쪽에 시체를 옮긴 자국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목부위 떨어져나간 살점도 그대로 원래위치에 되돌려 덮여있었다. 처음 발견한 목격자도 누가 비를 맞으며 자고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우연히 맹수를 만났다면 도망친 흔적이나 맹수에게 공격을 당해 죽더라도 저항하다 죽은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두 번째 이상한 점은 시체로부터 5미터 떨어진 곳에 발견된 원피스다. 파스텔톤 파란 바탕에 하얀색 큰 꽃무늬가 있었다. 누눈가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었다. 아무런 상표나 취급정보테그가 부착되지 않은 백퍼센트 수작업 의류였다. 키 160전후의 성인용. 이 증거물도 그냥 버려진 것이고 사건과 아무런 관계없을 수 있겠지만 감식결과 옷에 묻어 있는 여자의 화장품 파우더성분이 피해자의 손에 묻어 있었다. 피해자가 사용한 파우더와 전혀 다른 브랜드 상품이었다. 피해자가 쓰는 것은 고급 외제브랜드, 피해자의 손과 원피스에 묻어 있는 것은 중저가 국내브랜드로 국내 모든 여자들이 다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상품이었다. 그리고 그 원피스는 현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그곳에 전부터 놓여있던 것이 아닌 건 분명하다. 오래전부터 버려진 것이면 탈색이 일어나거나 흙먼지에 찌들려 있어야 하는데 깨끗했다. 분명 사건발생 전후에 그곳에 놓여진 것이지만 그 시점은 분명치 않다. 더 이상한 점은 주변에 다른 사람의 흔적이 젼혀 없다는 점이다. 원피스의 주인은 물론이고 다른 제3자가 이곳에 지나갔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세 번째 이상한 점은 사건 발생장소가 아주 깊숙한 산속이라는 점이다. 아스팔트 사이로 풀이 솓아 오른정도로 인적이 드문 도로에 피해자가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산길로 약 15미터 정도 걸어들어간 지점이었다. 정말 유령이 출몰해 사람을 잡아가도 누구도 모를 듯한 그런 숲속에 차를 세울 일이 상식적으로 없다. 주변 농민이 아니라면. 농민이라해도 사건 현장은 그냥 숲이고 밭이나 논이 아니어서 갈 일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주변에 농가가 있긴 하지만 다 합해서 30가구가 되지 않았고 그것도 전부 한 가구씩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그런 숲속이었다. 피해자의 신발 밑창 무늬에 사이사이 흙이 끼어 있는 걸 미뤄볼 때 분명히 피해자는 구두를 신고 흙길을 걸어 들어갔다. 혈흔이 있는 위치도 분명 숲속이다. 도로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드러난 사실은 이것밖에 없다. 그 외 아무것도 경찰이 알아낸 것은 없다.

그러면 유추를 해보자. 이미 방송에 수차례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적어본다. 혹시나 모르는 독자를 위해. 그리고 방송에 나오지 않은 나만의 추리도 보태보겠다.

사인은 분명하다. 동물이다. 하지만 동물은 시체를 옮겨 놓거나 그러진 않는다. 배고파 사람을 공격한 것이면 시체를 뜯어 먹어야 되는데 목부분 이외에는 깨끗하다. 그럼 그냥 짐승이 사람을 재미로 죽였거나 세끼들에게 사냥 시범용? 그것도 아닌듯하다. 산짐승에게 시체를 반듯하게 정리할 필요성 같은 건 없다. 원한? 산짐승이 사람에게 원한을 품을리도 없겠지만 품었다하더라고 역시 시체를 정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훈련시킨 맹수가 살인의 목적만으로 주인의 명령을 받고 죽인 후 그 짐승의 주인이 시체를 옮겼다? 영화에는 나올법한 이야기다. 실현가능성도 전혀 없진 않지만 살인도구로 짐승을 기를만한 사람은 이 지역에 없다. 아마 전국적으로 찾아봐도 거의 없을 것이다.

다음 중요한 쟁점은 원피스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원단자체는 상당히 오래전 물건이라 제조사나 판매자를 찾아 보려고 경찰이 포목상을 접촉해봤지만 30년전에 외국에서 수입되어 들어온 원단이라는 것 외에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다. 30년전 싸구려 원단 구매자를 일일이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원피스의 주인의 얼굴을 피해자가 건드렸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 어떻게 건드렸을까? 싸대기를 날렸을까? 아님 흐느끼는 원피스의 주인을 위로하려고 볼을 어루만진 것일까? 둘이 만난 시점은? 현장에서 만났을까? 아님 사건 전 어느 시점에 만났을까?  사건 현장에서 만났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왜 원피스의 주인은 옷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졌을까? 속옷은 없고 단지 원피스뿐. 그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 설령 그 옷의 주인을 찾아내도 피해자의 사망에 관여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인이 워낙 명확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 생각에는 원피스의 주인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알고 있을 순 있겠지만.

마지막 미스테리한 점은 피해자를 죽인 들짐승이다. 정말 귀신 나올것 같은 깊은 숲속이고 주변 농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슴부터 노루, 멧되지 등등 별별 들짐승들이 많지만 이들을 잡아먹을 맹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이 지역 숲속에 호랑이나 사자가 하이에나 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이 서식했다는 기록은 없다. 곰도 멸종한지 수백년이 넘었다. 도사견이나 쉐퍼드 같은 사나운 개들도 숲에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사람을 그렇게 단번에 죽일만한 맹수 후보는 늑대 정도밖에 없다. 재법 큰 성인 늑대라면 키163의 날씬한 여자는 아주 쉽게 죽일 수 있다. 그럴 이유는 논외로 하더라도. 하지만 늑대가 이 지역 숲에 출몰한 마지막 시점이 약 100년 전이다. 지금 늑대의 배설물, 발자국, 새끼를 낳아기른 흔적 등 늑대의 자취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늑대도 100년전 멸종된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