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편 – 1)

 

 

1편

양말장수

 

 

1

 

노천탕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별을 바라본다. 오늘의 산행을 반성한다. 역시 처음 도전하는 산은 아침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지간해서는 산에서 길을 잃지 않는데 낮은 산이 어떻게 그리 사방팔방으로 등산로가 많은지. 세 시간이면 끝나겠지 하고 오른 것이 여섯 시간이 조금 넘어버렸다. 해가 넘어간 지 한참이 지나서야 하산했다. 긴장한 것도 있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는지 왼쪽 무릎이 뻐근하다. 물속으로 양손을 넣어 왼쪽 무릎을 살짝 주물러 준다.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한한 우주에서 끝이 없는 깊이로 떨어지거나 유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영하 이백 도 이하의 차가움 속에. 모든 에너지는 따뜻함에서 차가움으로 이동한다. 이동이 아니라 차가움이야말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에너지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소리도 없고 색깔도 없다. 단지 여기저기 빛이, 별빛이 빛날 뿐이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한다. 그리고 얼마나 평화로울까 상상한다. 극한의 고요함이 극한의 차가움을 극복하고 무한한 평화를 느끼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현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관념상으로는 분명하게 그게 궁극적인 균형으로 느껴진다.

뻐근한 무릎이 진정되자 노천탕에서 나와 찬물에 몸을 헹구고 옷을 입고 휴게실로 나왔다. 지역 농산물 판매코너를 건성으로 둘러보고 냉장고에 주류코너에 눈이 멈춘다. 산에서 긴장했던 탓에 근육뿐만 아니라 햇볕에 녹아내린 사탕처럼 마음까지 늘어져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일본에 살면서 한 번도 음주운전 단속 당한 적도 없고 단속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일행도 없으니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 심어줄 일도 없어 용기를 내 늘 마시는 맥주를 하나 꺼내 계산을 한다.

일본에서 마셔 본 맥주 중에 가장 맛이 쓴 맥주다. 쓴 맥주가 좋다. 이십 대 어느 시점부터 일 것이다. ‘인생이란 쓴 거야.’ 인생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를 하며 친구들과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맥주는 으레 쓴 맥주를 주문해 마시곤 했다. 그게 지금까지 입에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쓴맛이 내 인생의 일부임이 분명한 것 같다. 어쩌면 그게 우주의 차가움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소한 쓴 것은 따뜻한 것과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쓰다는 것은 차갑다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땀범벅 된 등산복과 수건은 빨리 세탁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빨래방까지 갔다 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가기로 하고 등산장비는 차 트렁크에 그대로 방치해둔다.

스산한 꿈에 눈을 떴다. 이혼을 고하러 장인 장모 앞에 찾아가 마주하고 앉았지만 이혼하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와 죄인처럼 나는 그저 울고 있었다. 창 밖은 이미 밝다.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 다시 눈을 감는다. 다시 잠은 오지 않는다.

결혼 승낙 받으러 갔던 날 장모님의 눈이 생각난다.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자 장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 눈빛에는 장녀의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해야 하는 인륜의 대사를 앞두고 앞으로 다가올 딸과 사위의 인생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다 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큰 산을 하나 잘 넘어가는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오는 아주 얇지만 모든 것을 감쌀듯한 기쁨도 들어 있었다. 전처와 이혼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장모님의 그 눈빛이었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남을지 새로운 삶에 씩씩하게 적응할지 모를 전처의 마음이나, 아빠 또는 엄마 없이 자랄 딸아이의 정서에 대한 걱정보다 처음 결혼 승낙 받을 때의 장모님의 그 눈빛이 계속 떠올라 당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처가 가족들 앞에 가는 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의외로 두 분 다 담담하게 받아들여주셨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긴 했지만 아직 이런 꿈을 꾸는 걸 보니 내 정신의 반쪽인 무의식은 여전히 괴로운 모양이다. 사실 무의식만 그런 건 아니다. 다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항상 뭔가 까먹고 안 한 숙제가 있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뜨겁다. 처가 식구들 너무나 평범해서 그럴 것이다. 자기 갈 길이 분명하고 씩씩하게 거기에 매진하는 인생이라면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이 와도 이겨낼 힘이 있겠지만, 그저 하루하루 목표도 없고 심지어 취미조차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에 가까운 가족의 이혼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위해 내 인생을 수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지극히 이기적인 판단이었다는 죄책감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절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마음은 소용없다. 마음이라는 보자기에 쏙 들어가지 않는 모나고 각진 고철 뭉치가 언제라도 보자기를 뚫고 나올 것 같은 불편한 긴장감이 항상 존재한다. 나만 그런가? 남들은 이혼하고도 잘들 사는 것 같은데.

왜 남녀가 나누어져 있고, 왜 결혼이 있고 이혼이 있는지 세상의 이치가 원망스럽다. 모든 것이 반반 쪼개져 작용과 반작용을 반복한다. 반복될 때마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반작용이 멀고 격하면 격할수록 삶이 받는 스트레스도 심하다.

잠을 더 청하고 싶었으나 어제 방치해둔 등산 장비들이 생각나 벌떡 일어난다. 모아 둔 빨래와 쓰던 수건들을 모두 큰 가방에 넣고 마지막으로 트렁크를 열어 등산복과 수건 등을 꺼내 다시 빨래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빨래방으로 향한다. 항상 남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에 가지만 일요일 이른 아침에도 아무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별안간 들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서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한국 뉴스와 일본 뉴스 동영상을 본다. 항상 뉴스는 보다가 도중에 그만둔다. 그다음으로 어떤 역사학 교수의 역사 강의 한편과 늘 보는 주식고수의 단타 동영상 한편을 보고나니 세탁시간이 팔 분 정도 남았음을 확인한다.

그때 스마트폰에서 메신저 수신 알림음이 울린다.

「좋은 아침이네요. 아침부터 죄송해요. 혹시 가게에 발가락 양말도 있나요?」

상대방의 프로필명은 키리하라 미카(桐原美香)라고 적혀있다.

“누구지?”

일본 생활 오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일본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이 전혀 연결이 안 된다.

메신저를 열어 이전 대화를 확인한다.

「오늘 덕분에 외롭지 않게 저녁 먹었네요. 갑작스러운 제의임에도 불구하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다음 기회도 기다릴게요.」

비로소 무릎을 친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인물의 이름을 일주일 만에 잊어버린 스스로의 한심함을 책망한다. 지난 한 주 얼마나 고민했던가. 그녀로부터의 유일한 문자 메시지. 나는 속으로 다시 그녀의 메시지를 되뇌어 본다.

‘다음 기회도 기다릴게요’

이게 문자 그대로 본심인지 아니면 예의상 한 말인지, 무게중심은 전자에 기울어진 채 의심이 계속된 한 주였다. 그날 내가 계산하겠다는 것을 그녀는 한사코 거절하고 더치페이 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거의 백 퍼센트 다음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이 메시지는 무게중심을 전자로 대략 칠십 퍼센트 정도 기울일 결정적 단서다. 청신호다. 지난 한 주 뭐라도 그녀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취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렇게 먼저 메시지를 보낼 때까지 그녀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백 퍼센트 양말 구매라는 사무적인 목적일 수도 있음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킨다.

그 사이 빨래는 다 끝나고 종료벨이 울린다. 그녀의 메시지를 수신한 지 벌써 사 분이 흘렀다. 나는 빨리 답장을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물론 있죠. 특별히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

보내자마자 수신확인표시가 뜬다. 계속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내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

「질 좋으면 돼요. 흰색으로요.」

「키리하라 씨 신으시게요?」

「아니요. 테니스부 학생들요.」

「그럼 여고생이니까 일반 여성용 사이즈로 하면 되겠네요.」

「네.」

「있어요. 언제든 괜찮으니 가게로 오세요. 재고 따로 빼놓을게요.」

「오늘은 영업 안 하시죠?」

가게 휴일까지 기억하고 있다. 감사하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게 사장 마음이라… 고객님이 전화 주시면 휴일이고 밤이고 열어드립니다.」

물론 아무 고객에게나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그럼, 쉬셔야 하는데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 저녁에 방문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아무 시간대나 괜찮으니 편하실 때 오세요.」

「감사합니다. 있다 뵐게요.」

「네.」

그녀의 메시지에 깜찍한 이모티콘 같은 것은 없다. 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닌 다섯 살짜리 남자애 홀로 키우는 직장맘이 가질 수 없는 여유라고 치부해버린다.

나는 얼른 빨래를 가방에 담고 사무실로 돌아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에 오늘 하루 일정을 생각한다. 당연히 오늘도 산에 갈 생각이었으나 나는 모든 일정을 저녁 가게 운영에 맞춰 다 수정한다. 온천은 어제 갔다 왔으니 됐고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입고 나갈 만한 옷이 뭐가 있는지 생각하고 대략 정해둔다. 아 참, 머리. 머리카락이 너무 길다. 오전 중에 미용실에 갔다 와야 한다.

온몸에 엔도르핀이 솟아서 그럴까 배가 고프다. 어젯밤 귀가 후 바로 잠든 탓에 쌀도 물에 불려 놓지도 않았다. 드라마틱 할 오늘 하루를 생각하니 밥을 지어 먹는 귀찮음에 얽매이기 싫어진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오니기리 두 개와 샐러드와 삶은 달걀 한 개를 사 온다. 사무실에 도착해 딸아이가 타던 자전거 옆에 자전거를 대고 들어오자마자 사 온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우고 좌식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천정을 바라본다.

문득 영아의 자전거 생각이 난다. 돌싱이 된 지 사 년 만에 찾아온 연애의 기회에 한껏 마음이 고양되어 있지만 그 반작용이 딸아이의 자전거란 말인가. 나는 밖으로 나가 딸아이의 자전거를 사무실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비바람 맞지 않게 들여다 놓아야지 하면서 사 년 동안 방치했던 너무나도 간단한 일. 심지어 삼십 평이 넘는 사무실을 반밖에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딸아이에 대한 기다림의 상징이 되어버린 자전거다. 너무나 중요한 상징물이건만 철저히 폐품 수준으로 대우했다. 안에 들여다 놓고 소파에 앉아 잠시 자전거를 바라본다. 처음 샀을 때 빤짝빤짝하던 은빛 프레임은 이제 반 이상 벌건 녹이 점령하고 있고 강하게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신기하기 짝이 없다. 건장한 남성이 해머로 힘껏 내리쳐도 쉽게 끊어지지도 모양이 변하지도 않는 쇠 파이프가 단지 공기와 시간의 협력에 모양과 색이 변해가고 궁극에는 가루가 되어 어딘가로 흩어져 버린다. 시간이 상당히 걸리긴 하지만 백몇십억 년이라는 온 우주의 긴 시간에 비하면 저따위 자전거 한 대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시간은 우주 만물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일 뿐이다.

영아를 데리고 아내가 떠난 후 소위 미니멀리즘으로 살아보자 하는 생각에 가산을 모두 버렸다. 마치 몸에 붙은 혐오스러운 벌레를 떼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꼬고 두 팔로 온몸을 더듬어 혐오와 공포의 근원을 몰아내듯, 이불이며 침대며 주방용품이며 가전제품, 모두 내동댕이치듯 내 주위에서 때어버렸다. 그리고 몸에서 떼어낸 벌레를 내려보듯 몸서리쳤다. 혼자 생활에 조리도 필요 없고 싼 반찬가게에서 끼니도 사서 해결할 생각에 숟가락 젓가락까지 모두 버렸다. 그 와중에 남긴 것이 영아의 란도셀이랑 자전거다.

두 바퀴와 마름모꼴의 메인 프레임과 핸들과 안장은 균형감을 느끼게 해준다. 세상에 자전거라는 것을 발명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분명 공기저항과 탑승자의 무게 분산 같은 공학적인 관점에서 자전거를 생각해왔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마트폰 같은 첨단 장비에 비해 아주 간단한 기구지만 디자인 관점에서 그 어떤 사물에 뒤지지 않는다. 만약 자전거라는 것이 이런 디자인적인 안정감이 없었다면 인류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기름칠하고 녹을 벗기고 비닐에 씌워 놓는 일은 다시 언제일지 모를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 그녀를 만날 일에 신경을 다시 집중한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