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편 – 3)

 

1편

양말장수

 

3

 

오후 세 시쯤 가게에 나가 청소를 깨끗이 하고 미카를 기다린다. 특별히 시간을 정하진 않아서 다섯 시쯤 오겠거니 하고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만나면 다시 저녁 식사같이 하자고 청할 생각이다. 하지만 여섯 시가 넘어도 미카가 오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진다.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지만 눈이 보는 것과 뇌가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역시나 미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죄송해요. 테니스부 학생 한 명이 다쳐서 지금 병원에 와있어요.」

「엥! 어딜 어떻게요? 많이 심각해요?」

「서브 받다가 넘어졌는데 종아리 부분을 녹슨 못에 찔렸어요.」

「저런저런. 잘 못하면 파상풍인데.」

「네. 그래서 빨리 병원에 왔어요. 제 잘못이에요. 항상 그라운드 체크하는 게 기본인데…」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뭐.」

「양말 혹시 급하게 신어야 하는 거면 저녁에 가져다드릴까요? 퇴근하는 길에 잠깐 미카 씨 집에 들를게요.」

학생의 안부는 뒷전인 나 자신을 책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요? 오늘 히로도 잘 봐주시고 너무 폐를 많이 끼치는 거 같아서 죄송해요.」

「아니요. 전혀 전혀.」

미카는 친정에서 히로 데리고 오면 일곱 시 반쯤 될 것 같다고 한다. 문자대화가 끝나고 잠시 제정신이 돌아온다. 시간 얼마든지 있는데 내가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약간 후회스럽다. 항상 급한 성격이 문제다. 사업할 때는 아주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연애 초기에는 아주 쥐약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좀 급하면 어떤가. 시간도 상대적인 것인데 둘이 맞으면 맞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 세상에 널린 게 여잔데.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몇 켤레를 사겠다고 요청하지도, 나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메시지를 다시 보내 확인할까 싶었지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

 

일곱 시가 좀 넘어서 가게 셔터를 내리고 발가락 양말 열 켤레가 담긴 종이가방을 가지고 차를 몰고 미카의 아파트로 향한다. 서쪽 산지에서부터 흘러나온 계곡의 물들은 하나로 만나 큰 강을 이루고 곧 다시 바다와 만난다. 강 하구 가까운 곳에 조그만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국도를 이루는 넓은 다리를 건넌다.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전부 열고 심호흡을 한다. 초여름의 저녁 공기를 허파 깊숙이 들이킨다. 머리카락과 입고 있는 티셔츠가 세차게 바람에 흩날린다. 거의 보랏빛으로 변한 하늘은 더없이 넓고 넓게 이 도시를 덮고 있다. 하늘과 땅이 정확히 반반이다. 지평선 부근에 하늘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층 빌딩도 도심지의 소음도 없다. 저 하늘은 하루도 날 실망시키지 않고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한다.

미카의 아파트에 도착하고 난리 난 머리카락을 왁스로 정리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주차장 끝 편에 미카와 어떤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히로는 남자를 등지고 엄마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얼굴을 엄마 허벅지에 묻고 있다.

아파트 옆에 있는 노래방 건물의 간판을 비추는 밝은 할로겐 불빛과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 그리고 아파트 각 호실의 거실 창에서부터 누출되는 형광등 불빛에 세 명의 모습은 명확히 보인다. 하지만 그 어느 불빛도 셋을 정확히 비추지 않고 조금씩 비켜나가고 있다.

미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남자 쪽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 어딘지 모를 어느 한 점을 응시하고 있다. 표정은 굳어 있다.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되어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해가 지면 사람 왕래가 뜸한 지역이라 인기척을 못 느낄 수가 없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의 눈이 나에게 향한다. 나도 두 사람을 쳐다본다. 나는 뒷좌석에서 빨리 양말이 든 종이가방을 꺼내 미카 쪽으로 다가간다.

“늦은 시각에 실례합니다. 말씀하신 상품 전해드리려고…”

“아, 네. 감사합니다.”

미카는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하고 가볍게 목례를 한다. 나도 미카와 남자에게 목례를 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고 돌아선다. 돌아서면서 히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돌아서는 날 보자 히로는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든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히로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해 준다. 남자가 나를 보는 눈빛을 곁눈으로 살핀다. 어두컴컴한 밤에 확실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눈빛임은 분명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모든 게 일장춘몽으로 끝날 일인가 하고 섭섭함에 다시 한번 창을 모두 열고 세찬 바깥바람을 맞는다. 뭔가 정리가 안 된 복잡한 사정이 있는 여자와 더 어떻게 뭘 한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게 뭐 대수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애 딸린 여자인 것도 알고 나 역시 이혼남인데 연애를 하더라도 복잡하고 속 시끄러운 일 많이 생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균형이다. 젊은 때는 서로가 서로만 생각하며 순수하고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연애, 늙은 우리들은 주위 모든 것을 보살펴 나가며 잔잔한 호수처럼 서로에게 안정을 가져다주는 연애. 그렇게 불타오르기도 하고 물처럼 당연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긴 하지만 젊은 사랑을 정의하자니 나를 늙은 쪽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어 슬프다.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작용도 하고 반작용도 하는 인생이 힘들 때 내가 빠져나가는 방법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처음 이 따뜻한 남쪽나라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 팔월에 규슈 최남단의 이 땅에 짐을 풀고 이듬해 처음 장마를 맞이했을 때다. 유월 일 일부터 칠월 칠 일까지 한 달이 넘게 맑은 날이 단 오 일밖에 없었다. 그것도 오전이나 오후 잠깐 개고 다시 비가 쏟아졌다. 그만큼 마음은 시원했다. 한국에 있을 때 이렇게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본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마치 내 인생의 전반기를 싹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음속의 관념은 어쩔 수 없다. 비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싶은 아픈 감정까지는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 뒤로 그렇게 큰 비가 내린 적은 없다. 그래도 일본 전국 곳곳에 물난리로 이재민이 생기고, 누군가는 정치인을 비방하고, 또 누군가는 소리 없이 이재민을 돕는 소식이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온다. 비도 안 오고 정치인도 욕 안 먹고 자원봉사자도 일부러 남 도울 일 없을 수는 없는 것인가? 비 오는 날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현관 밖에서 하늘을 보며 멀뚱멀뚱 서 있다. 주인아저씨가 우산을 쓰고 걸어 나오신다.

“좋은 아침입니다. 비 오는데 산책 가세요?”

“응. 장마라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그렇고, 헬스장도 가기 귀찮고.”

“아주머니는요?”

“응 요즘 계속 몸이 안 좋아.”

히라베 아주머니는 원두커피를 좋아하신다. 오후에 좋은 원두 사서 찾아가 볼까 생각도 하지만 왠지 실행에 옮길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만둔다.

 

출근 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 여덟 시 삼십 분에 가게에 도착한다. 전 날 미국 증시를 체크하고 미국이나 유럽에 큰 뉴스가 없는지 인터넷 뉴스 검색을 한다. 아홉 시 되자마자 갭이 크게 떠서 상승하는 종목이 세 개나 나온다. 추격매수라도 한 번 해볼까 하다가 역시 원칙을 지킨다. 이 년 넘게 경험을 쌓고 그렇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도 솟는 가격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급상 세 종목을 제쳐두고 거래량 많이 붙어 산봉우리를 만들고 내려오는 다른 종목을 본다. 눌림목에서 매수해서 반등하자마자 일곱 호가만 챙기고 나는 바로 주식매매 프로그램을 꺼버린다.

소설책을 읽기 시작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인생은 항상 균형이다. 시작도 있고 끝도 명확하고 원인 없는 결과도 없고 사건이 생기면 반드시 풀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오후 휴장시간에 다시 주식매매 프로그램을 켜서 오전 세 종목의 향방을 확인한다. 하나는 상한가를 기록하고 거래정지 중이다. 하루 종일 풀리지 않을 기세다. 나머지 둘은 제자리로 주가가 돌아와 있다. 상한가 친 종목을 열어 옛날 차트를 확인한다. 일본 버블 붕괴 직전 이만 오천 엔 하던 주가가 지금 사백 엔이다. 그것도 최근 두 달 사이에 주가를 조종하는 세력들이 세 배 가까이 끌어올린 게 사백 엔이다. 심지어 최근 사 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고 관련된 큰 뉴스도 없다. 사백 엔 가치의 물건이 이만 오천 엔 하던 시절도 물론 정상이 아니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르는 물건에 자기 돈을 걸던 시절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그것은 몰리는 실수요에 의해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각 종목들을 뒤에서 조정하는 세력들이 없는 종목이 거의 없다.

일부러 물건 가격을 끌어올려 수요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시장 자율에 의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기 자본주의다. 베이비붐 세대가 휩쓸고 지나간 황량한 자리를 매우기 위해 각국 정부가 엄청난 돈을 시장에 뿌려대지만 개인들은 그 돈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부동산, 주식 같은 자산 시장을 투기장으로 전락시킬 뿐. 덕분에 나도 돈을 벌고 있어 감사하지만 현대자본주의도 어느 정도 끝물에 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현대자본주의가 끝난 세상은 균형에서 완전히 이탈한 세상일까 아니면 그 지점이 균형일까?

 

비 때문에 아침 식사 후 산책 나오신 어르신들이 많이 안 계신 지 오전 손님이 아직 없다. 우산을 쓰고 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가게 바로 옆에 사는 팔십 대 할아버지도 가게 앞을 지나가신다. 매일 산책 나오시는데 산책 거리가 상상을 초월한다. 나도 팔십이 되면 저 할아버지처럼만 패션 감각을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늙어도 늙음 만에 얽매이는 삶은 아닐 것 같다. 매일 할아버지의 패션을 체크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오늘은 머리에 창이 없는 네이비색 이슬람 모자를 쓰고 나오셨다. 얼굴이 갸름해서 잘 어울린다. 나 같은 전형적인 몽골인 두상에 상상도 못할 아이템이다. 누군가 짜 준 것일까 하고 궁금해하며 할아버지의 모자를 눈이 따라가는 순간 문득 아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히라베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신다.

 

나는 얼른 뛰어나가 문을 연다.

“아주머니! 어쩐 일이세요?”

나는 가방과 우산을 받아 들고 가게 안 테이블 앞으로 앉을 자리를 권한다.

“응. 집에 오래 있으니 답답해서, 원두 사 들고 왔지. 이거 좀 내려서 마시자.”

“오늘 아침에 저도 원두 사서 아주머니 뵐까 생각했는데.”

“어머! 정말? 아이고 고마워라.”

말하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뭔가 통하는 인간이 정말 불가사의하다. 나는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끓기를 기다리는 사이 드립 서버 위에 스테인리스 드리퍼를 올리고 필터 종이를 깔고 아주머니가 사 오신 원두를 열어 향을 맡아 본다.

“우와! 완전 좋아요. 뭐라고 표현해야 되지.”

“뭘. 그냥 향 좋다 그럼 되지.”

아주머니 토트백에 책이 들어있다. 항상 사무실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었다. 둘이 공부하고 있으면 으레 주인아저씨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오곤 하셨는데 가게까지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공부를 한 적은 없었다. 나이 지긋이 있으신 분들이 안 하던 생활의 패턴을 보이는 게 아무 이상할 게 전혀 없지만 굳이 긍정적인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비 오는 날 손님 없지?”

“안타깝지만 그렇네요.”

“그래서 왔어. 장마라고 집이랑 요시아키네 가게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지겹고.”

“일 많이 힘드시죠? 요즘 손님 많이 늘었던데요. 한 번씩 해물스파게티가 생각나서 가고 싶어도 요시아키 눈치 보여서 못 가요.”

“눈치는 뭐 하러 봐. 손님이 와서 달라면 줘야지.”

“에이~ 그래도 큰 테이블 혼자 차지하면 염치 없죠. 카운터석 좀 만들라 그러세요.”

“고집이 좀 세니. 아직도 애야 애. 지 엄마를 얼마나 더 부려 먹을라고.”

“월급은 잘 줘요?”

“응. 주긴 주는데 뭔가 섭섭함이 남는 금액.”

나는 박장대소한다. 커피는 맛있다. 향은 생각보다 약한데 각성효과가 아주 크다. 머리가 조금 핑 도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머니는 백에서 어떤 책을 꺼낸다. 얼굴 혈색은 좋으시다. 그런데 책을 꺼내 펴는 아주머니의 손은 이전보다 확실히 많이 불어 있다. 나는 주방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한다.

“자기, 이 시 내가 일본어로 해석했는데 맞는지 한 번 봐 줄래?”

“시?”

“응”

“시도 읽으세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시를 읽은 적이 없는데.”

“응. 후쿠오카에서 둘째가 사서 보내 준 건데.”

아주머니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근데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있나. 그중에 알 만한 게 한 편 있어서.”

김소월의 시집이다. 히라베 아주머니가 번역해 온 시는 1922년작 ‘금잔디’다. 나도 처음 읽어보는 시다. 하지만 읽어 보니 알 것 같다. 아주머니 한글 실력이면 이 정도는 번역이 되겠다 싶을 정도로 뜻도 간결하고 어려운 수사법도 없다.

“여기 ‘가신 임’이 무슨 뜻이야? 무덤은 죽은 사람 무덤이지?”

“네네 맞아요. 우와~ 이 정도면 거의 번역이 완벽한데요.”

“그리고, ‘심심’도 한문을 보니까 뜻은 알겠고, 금잔디는 또 무슨 잔디야?”

“일단 ‘임’은 일본어로 ‘키미(君)’, 즉 사랑하는 당신을 뜻하는 옛날 말이에요. ‘가신’은 동사‘가다’의 변형이고요. 한국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미 간 사람’, ‘가고 없는 사람’같이 말하곤 해요. 흔히 쓰는 말이에요.”

“아아~ 그런 뜻이구나. 죽은 연인이네.”

“네네. 맞아요.”

“금잔디는?”

“한국 잔디가 겨울에 노랗게 색깔이 변해요. 이 동네는 따뜻해서 그런지 공원 잔디가 겨울에도 푸르더라고요. 그러니까 겨울을 뜻하는 거예요.”

히라베 아주머니는 손뼉을 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야기구나!”

“아름다운 시네요.”

“응. 좋은 시네. 봄은 반드시 오는데 한 번 간 사람은 왜 안 돌아오나.”

“그러게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아주머니의 손을 계속 쳐다본다. 남자의 손보다 여자의 손이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사람의 나이뿐만 아니라 과거도 남자보다 훨씬 명확하게 드러난다.

“보고 싶은 분이 계세요?”

“응.”

“누구요?”

“돌아가신 어머니. 내가 구 남매에 막낸데, 나를 많이 이뻐했거든.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돌아가셨어.”

히라베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가슴이 찡해진다. 그리고 눈시울도 조금 붉어진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뭔가 시간을 뛰어넘는 느낌이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이 명확한 인생이 슬픔과 허무 같은 단어로만 표현될 필요가 없구나 싶다.

하지만 절대 할머니라고 하기엔 무리다. 아직 육십 대 중반인데, 얼마든지 더 젊고 아름답게 사실 수 있는 나이인데 오늘 히라베 아주머니는 죽음을 앞둔 구십팔 세 할머니처럼 보여 더 가슴이 찡하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고혈압, 당뇨 위험군의 뚱뚱한 체형의 중년 여성이다. 식습관 바꾸시고 운동을 좀 많이 하시면 좋겠지만 안 그러셔서 안타깝다. 커피도 끊으시면 좋겠건만.

“저랑 등산 가실래요?”

“뭐? 등산?”

나는 그냥 웃는다.

“자네 나 업고 내려올 자신 있으면 같이 가.”

그때 다른 할머니 손님이 들어오신다. 히라베 아주머니는 남은 커피를 얼른 다 마시고 행여 영업 방해될까 봐 헐레벌떡 짐을 챙겨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가신다.

햇빛이 가게 깊숙이 들어온 것을 보고 나는 마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낀다. 히라베 아주머니가 사람을 몰고 왔나 보다. 아주머니가 가신 뒤로 거의 쉴 틈도 없이 손님이 들어왔다. 이런 궂은 날씨에. 그것도 전부 할머니 고객들. 마지막 손님은 또 앉아서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지 말동무 되어 드리느라 너무 힘들었다. 양말의 색깔을 빼앗아가는 햇빛을 쳐다보며 혹시 확장 이전할 일 있으면 반드시 동쪽을 바라보는 가게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