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편 – 4)

 

1편

양말장수

 

4

 

햇빛에 변색돼 폐기처분한 양말이 얼마큼인가 무심코 생각하고 있는데 또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루 종일 할머니들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피부가 빛나는 젊은 여성의 얼굴을 보니 순간 현실 세계를 벗어난 것 같은 기분에 ‘어서 오세요’ 하는 인사말 건네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미카 씨!”

미카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한 번 훑더니 내 눈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외상값 갚으러 왔어요.”

“외상?”

“전에 양말 집까지 배달해 주셨잖아요. 제가 돈 안 드렸을걸요.”

그렇다. 심각한 분위기의 세 사람 사이에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잊어버렸다.

“정말, 그러네요.”

“진짜 모르셨어요?”

“네. 정말요. 전혀 인식 못 하고 있었어요.”

미카는 천천히 진열된 양말을 쳐다본다. 그리고 회색 스포츠용 파일 양말과 아동용 양말 한 켤레씩, 두 켤레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온다.

“전에 발가락 양말 열 개랑 같이 계산해 주세요.”

“넵! 육천백 엔입니다.”

미카는 빨간색 장지갑에서 만 엔짜리 지폐를 꺼낸다. 나는 지폐를 받아들고 금전등록기에 가격을 두드리고 돈 통에서 잔돈을 꺼내 영수증과 함께 미카에게 전달하고 양말 두 켤레를 포장한다. 미카는 내가 만 엔짜리 지폐를 받을 때부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내 손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 분명 목적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이다. 순간 내 손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남자 손 따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가게 보통 몇 시에 마쳐요?”

“지금요.”

“어머! 제가 너무 늦게 온 건가요?”

“아니요, 아니요. 전혀! 고객님이 오신다는데 시간쯤이야 뭐가 문제겠습니까. 히로는요?”

“늘 그렇듯 친정엄마에게.”

“어머니 힘드시겠어요.”

“오늘은 오후부터 히로 친척 형이랑 누나랑 같이 있어서 그나마 좀 편한가 봐요. 때 되면 밥만 챙겨주는 일 외에 할 게 없었대요.”

 

나는 웃으며 잠깐 미카의 눈을 쳐다본다. 미카도 나를 보고 있다. 그 눈빛을 보자 나는 어떻게 논리적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해버렸다.

“오늘 괜찮으시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미카는 잠시 생각하더니,

“엄마한테 전화 좀 해보고요. 잠시만요.”

미카는 잠깐 가게 밖에서 전화를 하고 돌아온다.

“네. 괜찮을 거 같아요. 엄마가 많이 안 피곤한가 봐요.”

“잠시만요. 그럼 제가 맛있는 식당을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요시아키네 가게에 전화를 한다. 히라베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아쉽게도 오늘은 예약 만석이라고 한다. 나는 전에 미카를 데리고 갔던 곳에 전화를 건다. 거기도 만석이다. 주방장이 내 목소리를 알았는지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을 하고는 양말 사러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세 번째 가게에 전화를 걸려는 순간 고객용 스툴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미카가 말한다.

“저기 괜찮으시면 제가 아는 곳에 가실래요?”

“저야 완전 괜찮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뭐처럼 외식하시는데 맛있는 거 드셔야 할 거 같아서.”

“아니요. 저도 괜찮아요. 전에 선생님들이랑 회식했던 곳에 가요 우리. 거기 오늘 술 음료 반값 행사하는 날이에요.”

나는 갑자기 기분이 상승됨을 느낀다. 미카의 얼굴을 보면서 청주를 반값에 마실 수 있다니. 요 며칠 사이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었단 말인가.

“조금 걸어야 되는데 괜찮으세요?”

나는 미카의 신발을 본다. 밑창이 높은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테니스부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같이 있다 왔는지 노란색 마사토가 조금 껴있다.

“저야 당연히 괜찮죠. 저 완전 잘 걸어요. 등산하잖아요. 저보다 미카 씨가 피곤하신 거 아니에요?”

“저도 괜찮아요. 이러고 애들 테니스 공 주우러 만날 뛰어다니는걸요.”

나는 빛의 속도로 가게를 정리하고 미카와 밖으로 나와 셔터를 내린다. 다행히 비는 안 온다. 하지만 둘 다 우산을 챙겨 든다. 미카는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앱에 위치를 찍어 나에게 보여준다. 제법 먼 거리라 나는 약간 놀랐지만 그런 내색 없이 미카와 길을 나선다.

 

우리 가게에서 바로 번화가가 시작된다. 우리 둘은 번화가를 통과해 현(県) 병원 사거리까지 걸어간다.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꺾어 미술관이 있는 쪽으로 계속 걸어 올라간다. 인도가 원래 널찍한 데다가 길주차가 전혀 없는 거리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미카와 나란히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전에 죄송했어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요.”

“뭐가요?”

“전에 아파트 앞에서요”

“아, 뭐 그럴 수 있죠. 죄송할 일은 아니죠.”

“통제가 안 되는 인간이라.”

“히로 아빠?”

“네.”

남이 이혼했다는 얘기 건네 들을 때면 마치 매일 씻고 밥을 먹는 행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당사자가 되어보니 감정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이상하게 히로 아빠의 존재감도 날카롭게 마음 한구석을 찌른다. 고갯짓으로 인사 한 번 한 것뿐인데 뭔가 보통 인연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어쩌면 전처가 놓아주지 않으면 앞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보지 못할 영아의 얼굴도 순간 오버랩된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나는 재빨리 주제를 바꾼다.

“전에 다친 애는 괜찮아요?”

“네. 깁스 한 달 정도 하고 있으라 그러더라고요. 못이 뼈를 좀 건드려서.”

“어이구, 깊이 찔렸던 모양이네요?”

“네. 파상풍이야 주사 한 대 맞으면 되는데 뼈 주위에 잘못해서 염증 생기면 더 골치 아프다고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미카는 앞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곁눈으로 나는 미카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흐린 날 저녁 바람에 단발펌 머리카락이 아무렇게 흔들리며 귀 뒤부터 목덜미까지 하얀 피부를 드러낸다.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미카의 옆을 스치듯 계속 지나가는데 왼손에 들고 있는 우산이 행여 부딪칠까 조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나는 미카의 우산을 받아든다.

“아, 고마워요.”

“테니스 잘 하시겠네요?”

“아뇨, 전~~혀요.”

“진짜요? 정말 못해요? 그런데 어떻게 테니스부 담당 선생님?”

“일본 학교들 다 그래요. 부활동 뭐라도 하나 맡아서 해야 돼요.”

“선생님 의사는 반영 안 해줘요?”

“처음에 하고 싶은 부활동 말하라 그러는데 실제 배정되는 건 복불복이에요.”

“그럼 부활동 시간에 담당 선생님으로서 뭘 하는 거예요?”

“하는 거 없어요. 처음에 그냥 열심히 공이나 주워 주고 그러다가 좀 배우려고 해봤는데 배드민턴이랑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그러다 대회 있으면 그 뒤치다꺼리.”

나는 웃는다.

“힘들겠다. 흥미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하는 걸 가르쳐야 한다니.”

“그래도 전에 있던 학교에서 애들이 너무 잘해가지고 현(県) 대회 준준결승까지 갔었어요. 학교에서 난리 났었어요. 스포츠든 음악이든 뭐든 부활동 쪽으로 시 예선조차 통과한 역사가 전무하거든요.”

“그럼 선생님이 재능이 있는 거네요. 그런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룬 게 애들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겠죠.”

“아니요! 전~~~혀요!”

나는 박장대소한다.

“순전히 그때 멤버가 좋았던 결과에요. 한 명은 테니스 선수 출신 코치한테 일곱 살 때부터 지도 받던 학생이고요. 저는 그냥 다른 애들 보고 ‘테츠로(哲朗) 하는 거 보고 전부 따라 해.’ 하고 시킨 게 다예요. 선생님이 걸핏하면 주말에도 안 나오고 간섭 안 하니까 오히려 자기들끼리 하는 게 재미있었는지 실력이 계속 붙는 거 있죠. 대회에서도 자꾸 이기니까 애들도 더 재미가 붙어 가지고… 학부모님들도 일부러 선물 사 오셔서 ‘키라하라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변했어요. 학교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답니다.’ 그러면서 구십 도로 허리 굽히시고… 그냥 방치했을 뿐인데.”

나는 또 한 번 박장대소한다.

“시 대회 결승 때 상대 고등학교는 선수 출신 테니스 감독이 따로 있는 학교였어요. 설마 했는데 첫 게임 먼저 따낼 때부터 우리 애들 서브 넣은 공에 스핀이 장난이 아닌 거 있죠. 무슨 라파엘 나달이 빙의한 줄 알았네. 그러더니 우승해 버리더라고요. 숨 멎는 줄 알았어요.”

“진짜 좋았겠다. 성취감 장난 아니었겠어요.”

“아뇨. 짜증 나서 숨 멎을 뻔했어요. 현 대회 나가면 주말 반납에 지역도 여러 지역 이동해야 되니 차 대절해야지 동행하는 부모들 숙소 예약해야지… 한 경기 한 경기 임할 때마다 얘들아 제발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하자 그러면서 기도했건만.”

나는 너무 웃어서 허리가 꺾이는 줄 알았다.

“나쁜 선생님이네. 진심으로 애들이 지기를 바라다니.”

“주말 쉬겠다는데 나쁜 선생님이라니…”

세상에 웃긴 일 많다. 테니스 선수 출신 감독을 데려다 투자를 해도 시 대회도 통과 못하는데 방치한 고등학생들이 역사를 바꿔버리다니. 누구에게는 황당한 즐거움, 누구에게는 허탈한 좌절감.

 

그러다 목표한 이자카야에 도착했다. 좌식 테이블에 마주 앉아 먼저 생맥주를 두 잔 시키고 나는 일본 소주를 온더록스으로 한 컵 더 따로 주문한다. 미카는 씩씩하게 메뉴판을 척하고 집어 들어 놓고선 한참을 보는데도 결정을 못 한다. 그러다 선생님 눈치 보는 학생처럼 내 얼굴을 쳐다보며 메뉴판을 말없이 나에게 슬며시 건넨다.

“먹으면 안 되는 거 있어요?”

“아니요.”

“지금 먹기 싫은 거는요?”

“없어요.”

“그럼 결정 장애네.”

미카는 웃는다. 나는 숙성 생선 사시미 삼인 분과 모둠튀김, 셀러드, 톤지루(豚汁) 두 그릇을 주문한다. 테니스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현 대회에서도 준준결승까지 가더라고요. 그런데 확실히 상대팀들이 수준이 다르긴 했어요. 세계 랭킹 백 위 안에 들었던 코치들이 있는 사립 고등학교들은 벌써 상대 선수 분석까지 들어가더라고요. 분석과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는 노력은 준준결승까지.”

“좋은 교훈이네요.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된다.”

“맞아요. 진짜 재능이 아무리 있어도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 반대도 마찬가지. 십육 강에서도 그랬는데 준준결승에서도 상대 선수가 벌써 우리 애들 약점 다 파악하고 있더라고요. 현 대회 예선부터 경기 촬영하는 스텝들이 몇 명이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좀 그때 애들한테 미안해요. 경기 시작 전에 상대팀 감독은 애들한테 이런저런 작전 막 설명하고 그러는데 저는 작전타임마다 우리 애들한테 아무 이야기도 지시도 못해줬거든요.”

“그래도 선생님으로서 큰 의미에서 가르친다는 보람이 있지 않아요? 자라나는 애들 보면 귀엽고.”

“고등학생이 귀여워요?”

“안 귀여워요?”

“꼴도 보기 싫어요! 계집애고 머슴애고 얼마나 지저분한데요.”

나는 또 박장대소한다. 생각해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내 친구들도 젊은 성인 여성에게 혐오스러운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이렇게 웃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몇 달 수준이 아니다. 연단위로 계산해야 할 간격인 것 같다. 언제 배가 아프도록 웃었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그나마 전에 있던 학교는 인문계라서 때깔이 고운 애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공고라 그런지 확실히 부모 면담해 보면 가정환경이 많이 틀리더라고요.”

 

미카를 앞에 두고도 나는 순간 지금 초등학생인 영아가 앞으로 어떤 여고생이 될까 잠깐 딴생각에 빠진다.

“성욱 씨는 한국에 있을 때 무슨 일 했어요? 양말 관련 일?”

미카가 젓가락을 쥔 손으로 턱을 궤고 날 보며 묻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미카에게로 돌아온다.

“아, 아니요. 백화점에서 일했어요.”

“오~, 이세탄 백화점 같은?”

“네. 한국 내에서 시장점유율 일 위 자리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정도의.”

“백화점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있잖아요.”

“경영분석요.”

“경영을 분석해요?”

“네. 일단 예산관리를 제가 다 했고요. 그리고 예를 들면 지방 어느 지역에 신규점을 건설하면 그게 이익이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또는 물류센터를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옮길 건데 그게 회사에 이익이 되는 지 안 되는지. 그런 거에 답하는 게 주 업무.”

“오~. 저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세계네요. 머리 아플 거 같아요.”

“음… 머리는 의외로 안 아팠는데, 대신 스프레스쉬트의 도사가 되지 않으면 안 돼요. 숫자로 이야기해야 하거든요. 대학 때 전공할 때는 경영이고 경제고 그렇게 싫더니만 사회 나와서 막상 전공 관련 일을 해보니까 의외로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사람의 재능이라는 게 실제 사회 나가서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걸요. 예체능 쪽은 어릴 때부터 금방 재능이 드러나는 데 나머지는 안 그런 거 같아요. 숫자 다루는 일 저랑 안 맞을 거라고 이십 대 후반까지 계속 생각했는데, 웬걸요. 분석가로 회사에서 제법 인정받는 제 자신을 발견.”

“근데 왜 그만두고 일본으로 왔어요? 대기업이면 연봉도 많지 않아요?”

“뭐 좀 복잡한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일단 십 년 동안 똑같은 일 계속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현장 쪽으로 가겠다고 해도 대체인력 없다고 전근 보내주지도 않고, 그리고 윗분들 이중적인 모습도 짜증 나고. 앞에서는 회사와 직원들의 발전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한다는 개소리 해대면서 자기 일 년 더 계약 연장하는 거 외에는 아무 관심 없어요. 계약 일 년 연장은 몇 억의 수입이거든요. 신사업안 보고 해도 진짜 회사의 미래를 위해 뭐가 좋을까 보다 자기 연간 목표를 달성하기 유리한 거 결국 선택하고 귀중한 투자 자금 허비하고.”

“그건 알 것 같아요. 책임회피. 앞에서는 웃으면서 예의 차리고 뒤에서는 전부 다른 논리로 일이 돌아가죠. 일본 사람들 나쁘지 않아요? 겉과 속이 다르잖아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특징이거든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이중성. 한 사람의 안에는 선과 악이 같이 있잖아요. 백 프로 악하기만 한 사람과 백 프로 착하기만 한 사람들만 존재해서 사회 내에서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최소한 구분은 쉬울 텐데 한 개체 안에서 전혀 반대되는 게 동시에 있으니 이 사람은 어디가 중심인지 오래 지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제 인생에서 테니스는 악인 거 같아요. 지워 버리고 싶어요. 애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정도 인연이면 보통 다른 선생님 같으면 테니스 배워 볼 만도 한데 저는 전혀 정이 안 가요. 전근 가서 좋아했는데 저의 황당한 명성이 온 학교장님들에게 전해져 가지고 여기 학교 와서도 또 테니스 선생.”

“지금 애들도 잘해요?”

미카는 젓가락을 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그리고 내 소주잔을 뺏어 한 모금 마신다.

“네, 힘들어 죽겠어요. 얘네들도 완전 노력파에요. 재능이 없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제가 미쳐버리겠어요. 벌써 시 예선 통과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매 주말 바쁘시구나. 현 대회 본선 준준결승 지도 선생님이라는 후광효과가 있는 거 같은데.”

“네. 그런 것도 같아요 확실히.”

“안타깝네요. 저라도 테니스를 잘 했다면 좋았을걸. 전 몸치거든요. 그래서 등산만 열심히 하잖아요. 느릿느릿 그저 걷기.”

“다음에 같이 가요. 주말에 시간 될 때 연락 한 번 드릴게요.”

“정말요?”

“네.”

“그럼 진심 감사하죠.”

 

긴 대화에 목이 아플 쯤에 나는 병맥주 한 병을 더 시킨다. 즐겨 마시던 쓴 맥주다. 컵에 따르자 미카도 조금 달라고 자기 컵을 나에게 내민다. 미카와 건배를 하고 둘 다 단숨에 쭉 들이킨다. 미카는 미간을 찌푸린다.

“정말 쓰네요. 전에도 마셔 본 것 같은데 이런 맛이었나.”

“술 좋아해요?”

“아니요. 그렇게 술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냥 조금 취기 올라오면 안 마셔요.”

미카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친정엄마가 힘 안 들이고 히로를 보고 있다고 하지만 저녁에 한가롭게 외식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미카에게 그만 일어나자고 권한다. 나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한다. 미카는 미안해하거나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짐을 챙기고 계산대 쪽으로 다가온다.

“아~ 오랜만에 너무 잘 먹었다.”

이자카야 밖에서 미카는 두 손을 하늘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면서 웃으며 말한다. 일본인 특유의 몇 차례고 반복되는 식사 대접받은 후의 인사말은 전혀 없다. 나는 가게 점원에게 콜택시를 불러 달라고 말한다.

“걸어 가면 돼요. 택시까지 굳이.”

“아니요. 미카 씨 편하게 들어가셔야지.”

“택시비 비싼데.”

확실히 비싸다. 일본 택시는 타서는 안 되는 교통수단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먼 거리를 마카가 또 걷게 할 수는 없다.

“이럴 때 한 번씩 쓰라고 저축도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일 년에 택시 탈일 한두 번 정도 있으려나…”

둘이 같이 택시를 타고 내 가게로 돌아온다. 가게 주차장에서 미카는 자기 차를 타고 떠난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갈까 하다가 잠시 다시 가게 문을 열고 가게에 앉아 어둠이 진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한국에 있는 영아부터 절친한 친구들, 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일본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한숨 푹 쉬던 엄마의 얼굴까지 오만 가지 생각이 회오리친다. 결국 생각이 다다른 곳은 미카다. 맨정신으로 쉬지도 않고 떠드는 미카의 입술을 바라보느라 그 좋아하는 일본 소주도 거의 못 마셨다. 심지어 반값인데.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일본 소주 이 리터 짜리 한 팩을 산다. 미카 생각과 함께 부족한 취기를 혼자서라도 더 끌어올릴 생각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