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편 – 6)

 

1편

양말장수

 

6

 

주중 국경일이다. 장마가 끝나지 않았지만 잠깐 멈추고 맑은 하늘이 어제부터 계속되고 오늘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어제 낮 최고 기온이 삼십오 도를 기록했다. 이 따뜻한 남쪽 나라의 겨울이 포근한 만큼 여름은 각오해야 한다.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먼 산을 바라보고 하늘이 머금은 수증기의 정도를 가늠하며 어느 산을 갈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사무실 정리를 좀 하자고 마음먹는다. 폭염에 하루 정도는 사무실 에어컨 바람에 청소 정리하는 것도 괜찮다. 미니멀리즘의 극치에 도달하기 위해 지난 이 년 동안 쓰지 않았던 물건을 다시 한번 추려낼 생각이다. 커피 한 잔에 계란 프라이와 플레인 요구르트에 꿀을 타서 먹고 씻지도 않은 부스스한 머리로 사무실 밖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화분을 정리한다. 그 조차 원래 흙만 담겨있던 화분이었는데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스스로 꽃이 자라주었다. 이름 모를 보라꽃. 길고양이가 집고양이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꽃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그런 보라꽃을 나는 항상 애지중지하고 있다. 주인아저씨가 어느새 뒤에 다가와 있다.

“좋은 아침! 커피 한잔해.”

“어! 깜짝이야. 조,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화분 정리하다가 벌떡 일어난다. 주인아저씨는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로 가서 동전을 넣어버린다. 항상 그러신다. 내가 지갑을 챙겨 나와 동전을 넣을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 얼른 와서 버튼을 누르라고 재촉한다. 지난 육 년 동안 이렇게 얻어 마신 음료수가 도대체 얼마치일까.

“잘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응응. 그려.”

“재미있네요.”

“뭐가?”

“이 자판기요.”

“왜?”

“제 사무실 바로 앞에 있으니까요. 제가 정확하게 고객을 세어 봤거든요. 다섯 명이에요.”

주인아저씨는 박장대소한다. 키 백육십 조금 더 되는 아저씨의 웃음소리는 쇠소리처럼 언제나 짧고 우렁차다.

“우리 빼고?”

“네. 이 근처에 사시는 분들 다섯 명이요. 아저씨도 다 아시는 분들요.”

“그렇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면 좋을 텐데. 뭐 돈 벌려고 설치한 것도 아니고. 이게 밝아서 가로등 역할도 해.”

“제 생각에는 실제 매출은 아저씨다 다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히라베 류이치 사장의 개인 음료수 냉장고 수준.”

히라베 아저씨는 또 한 번 웃는다. 그렇게 서서 아저씨와 세상 이야기를 한다. 자주 있는 나의 아침 일상이다. 히라베 아주머니가 일하면서부터 더더욱 횟수가 늘었다.

 

그때 경승용차 한 대가 우리 둘을 향해 다가온다. 나는 차종을 보고 설마 했는데 운전자 얼굴이 보일 만큼 다가오자 나는 얼른 사무실에 들어가 머리에 모자를 쓰고 다시 나온다. 옷까지 갈아입고 싶었지만 주인아저씨도 계신 상황에서 너무 오버다.

미카가 차에서 내려 내 얼굴을 먼저 한 번 살피더니 히라베 아저씨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뒷좌석 카시트에는 히로가 앉아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이구 좋은 아침. 죄송해서 어쩌나 이런 수고를 끼쳐가지고. 내가 담에 식사 한 번 대접할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크게 불편한 거 없었어요. 사람들 와서 금방 고치고 간 걸요.”

“그래도, 원인 제공을 내가 했으니 너무 송구스럽네.”

“정말 정말, 괜찮아요. 여기 영수증이랑 공사 내역서요.”

미카는 주인아저씨에게 봉투 하나를 건넨다. 주인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봉투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한다. 주인아저씨는 이층 집으로 종종걸음으로 들어가신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멀뚱히 서 있는 나에게 미카가 말한다.

“저번에 방수 도장했을 때요. 히라베 사장님이 베란다 쪽 수도관을 잘못 건드리신 모양이더라고요. 그게 어제 터져가지고 급하게 제가 그냥 사람 불러서 수리했어요. 마침 어제 멀리 출타 중이셔서 정산을 못해서 오늘 아침에 학교 출근하는 길에 영수증 가지고 가겠다고 했죠.”

“아~ 그랬구나. 장지문은 국가 기능사이신데 역시 다른 일은 하시면 안 되겠네.”

미카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웃는다. 그리고 내 등 뒤로 사무실 안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여기서 사시는 거죠?”

“네.”

나는 뒷좌석에 앉은 히로에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히로도 웃으며 나를 반겨준다.

“설마 히로 데리고 출근?”

“아니에요. 엄마가 일하는 곳에 주말 근무 대체자가 부친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오늘 일을 하셔야 해서. 중학교 동창 집에 맡기려고요.”

“엥? 설마 전에 말한 그 친구? 커피숍 한다는?”

“네.”

시내를 한참 벗어난 북쪽 동네다. 왕복 족히 두 시간을 걸린다.

“오늘 시 대회 예선 시합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오늘 시합? 몇 신데요?”

“오후 세 시요. 열 두 시까지 애들 데리고 해변 운동공원에 가야 돼요.”

“참나, 어이없네. 애들 일사병으로 다 쓰러지겠네.”

“제발 지길 성욱 씨도 기도해줘요.”

미카는 간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부탁한다. 그 모습이 진짜로 간절해 보여 나는 큰 소리로 웃는다. 그 사이에 주인아저씨가 지갑을 챙겨 나오셔서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미카에게 전달한다. 정산이 끝나고 나와 미카가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아저씨는 슬금슬금 작업장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또 순간 머리를 굴린다.

“혹시 히로 블록 놀이 좋아하려나?”

나는 성인용 블록놀이 상자를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와서 차 밖에서 히로에게 보인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우주선 모양이다. 히로는 웃으며 나를 향해 양팔을 벌린다.

“혹시 제가 오늘 히로 베이비시터 할까요?”

미카는 놀란 얼굴로 잠깐 내 눈을 쳐다보며 생각하더니 히로를 쳐다본다.

“히로짱, 성욱이 아저씨랑 있을 거야?”

히로는 웃으며 고개를 계속 끄떡인다.

“정말 아저씨 말 잘 듣고 엄마 올 때까지 있을 수 있어?”

“응. 나 저거 다 만들 수 있어.”

“정말? 언제 히로가 저런 거 해봤어?”

“보육원!”

미카는 나를 보며 속삭인다.

“보육원에 이런 거 없을 텐데.”

“저번에 비비탄총 만들 때 보니까 잘 할 거 같은데요.”

“정말 성욱 씨 괜찮으시겠어요? 오늘 등산 가셔야 되잖아요. 이래저래 바쁘실 텐데”

“아니요, 아니요. 전~혀. 오늘 안 가고 쉬려고 하고 있었어요. 완전 여유.”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히!”

미카는 카시트 벨트를 풀어 히로를 차에서 내린다. 히로는 내리자마자 블록 상자를 만지면서 자기가 가지겠다고 잡아 끈다. 미카는 가방을 나에게 건네준다.

“안에 간식이랑 여벌 옷이랑 들어 있어요.”

“음식은 잘 먹어요?”

“차가운 거랑 우유만 좀 조심하면 돼요. 특별히 가리는 거 없어요.”

“대소변은?”

“전혀 문제없어요. 화장실 앞에만 데려다주면 혼자서 잘 해요.”

“그럼 몇 시에 오세요?”

“경기 끝나고 연맹 사무실에 이것저것 하고 애들 밥 먹이고 하면 저녁 일곱 시 조금 넘거나 그럴 거예요.”

“아이고, 히로가 무슨 잘못이라고 휴일까지 엄마랑 생이별이네.”

“그러니까 경기에 져야 된다고요! 죄송해요. 다른 곳에 가서 이런 얘기 절대 하면 안 돼요!”

미카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미카는 나에게 손을 흔들고 바쁜 걸음으로 차에 타고 어딘가 전화를 건다. 커피숍 하는 친구인 모양이다. 차에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리고 전화를 귀에 댄 채로 나에게 다시 인사하고 전화를 하면서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나무 마루가 깔린 바닥에 야외용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히로랑 마주 보고 엎드린다.

“히로짱! 이제부터 아저씨가 블록을 하나하나 찾아 줄 테니까 히로는 설명서 보고 조립하는 거야. 알겠지?”

히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히로는 설명서 순서대로 블록을 찾아 각 모듈별로 하나하나 조립해 나가기 시작한다.

블록 조립에 열중하는 히로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다. 두상의 모양도 눈도 코도 엄마를 쏙 빼닮았지만 코 아래 입 주위는 영락없는 아빠의 것이다. 그날 재수 없던 히로 아빠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다 금방 털어 버리고 히로에게 집중한다.

무엇이 부모 자식을 이렇게 일상 속에서 갈라 놓는지. 부모는 자식을 평일에 볼 수 없고 피도 안 섞인 보육원 선생이나 친구나 나 같은 지인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게 인간의 생활에서 정상적인 상태일까? 생각해 보니 영아도 그랬다. 우리 부부가 맞벌이였던 탓에 생후 육 개월부터 어린이집 생활했다.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꼬박 하루 종일. 대한민국이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했지만 최소한 일본도 다르지 않다.

성인용 블록이 블록 하나하나가 워낙 작아 블록 찾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데 분업이 되니 금방 끝나버렸다.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앞으로 반나절 어떻게 보내나 막막했지만 사무실에 굳이 있을 필요는 없다.

“히로짱. 아저씨랑 밖에 놀러 갈까?”

히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히로가 완성된 우주선을 가지고 노는 사이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고 드라이한 후 옷을 갈아입는다. 카시트가 없어 히로를 조수석에 태운 다음 안전벨트를 채운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히로는 목을 쭉 빼고 전방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런 히로의 옆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달리는 차의 속도를 느끼고 싶은 남자아이들의 본능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내에서 가장 큰 대형 쇼핑몰에 도착한다. 나는 히로를 데리고 완구점에 먼저 간다. 비싼 것은 미카가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히로가 좋아할 만한 적당한 가격대의 것이 있으면 사줄 생각이다. 마카에게 듣기로는 장난감 가게에서 드러눕는 아이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역시 내가 편안한 존재는 아닌지 이것저것 만져보지만 강한 소유욕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젤리 조금 사서 나왔다. 카페에 가서 아이스라떼 한 잔 주문한다. 어린이가 마실 만한 게 코코아밖에 없다.

“히로짱, 코코아 마셔본 적 있어?”

히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의자에 앉아 코코아와 젤리를 먹는 히로를 바라보며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걱정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요리교실이 있다. 커다란 통유리 안에 깔끔하게 여러 개의 싱크대가 마련되어 있다. 히로를 놔두고 잠깐 출입문 쪽에 다가가서 보니 오늘 부모랑 함께 하는 요리체험교실이 있다. 한 시간 뒤부터 시작이다. 나는 점원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전부 예약제라 당일 참석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쉽지만 나는 히로가 있는 테이블로 돌아와 다시 스마트폰으로 쇼핑몰 내에 다른 이벤트나 놀이 시설이 없는지 검색한다. 그때 조금 전 요리교실 점원이 테이블로 다가온다.

“오늘 예약 취소 고객이 계셔서 한 자리 남는데 괜찮으시면 참석하시겠어요?”

“정말요? 괜찮나요?”

“네. 그럼요. 앞치마랑 어린이 요리 두건만 준비해 오시면 돼요.”

”아, 잘 됐네요. 그럼 준비 부탁드립니다.”

나는 잡화점에서 앞치마와 두건을 구입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문득 히로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아차 싶다.

“히로짱, 엄마랑 요리 같이 해본 적 있어?”

히로는 빨대로 코코아를 마시면서 눈은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 경험이 없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뭔지 모르니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히로 만들기 좋아하지? 과일이랑 야채로 만들기 할 건데 아저씨랑 같이 만들어 볼래?”

히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이 앞치마는 무늬가 예쁜 것들은 전부 여자아이스러운 것들 밖에 없어서 네이비색 단색으로 고른다. 내 것도 똑같은 색에 사이즈만 어른용으로 고른다.

 

부모와 함께하는 일일 요리교실의 오늘의 메뉴는 미키마우스 그라탕빵이다. 야채를 많이 썰어야 한다. 미키마우스의 귀 부분은 빵이라 밀가루 반죽도 해야 한다. 나는 앞에서 설명하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히로가 하게끔 도와만 준다. 확실히 히로는 공간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당근을 썰어도 이미 썰려진 당근 조각의 크기를 확인하고 그것과 똑같이 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 밀가루 반죽까지는 무리다. 내가 거의 다 하다시피 했다.

빵이 오븐에 들어가 있는 사이 아이들끼리 무리 지어 뛰어다니기도 하고 같이 온 엄마들끼리도 모여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히로도 각자의 또래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썰다 남은 야채와 치즈를 모아 동물 모양을 만들며 논다. 갑자기 영아가 보고 싶어져 울적하지만 히로의 존재가 조금은 위로가 된다. 히로는 완성된 그라탕에 입도 대지 않고 빵만 조금 먹고는 이내 얼굴 표정으로 지루함을 표출한다. 나는 허겁지겁 그라탕과 남은 빵조각을 먹고 요리교실 스텝들에게 인사를 하고 히로를 데리고 나온다. 해가 많이 넘어가서 쇼핑몰 중앙에 있는 야외 어린이 놀이터에서 히로를 놀게 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 눈은 히로를 계속 주시하고 머리로는 히로 아빠를 생각한다. 그의 공격적인 말투와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히로는 다시 블록 우주선을 가지고 놀고 있다. 돌아온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미카가 도착했다. 미카가 히로를 향해 두 팔을 벌리자 히로는 엄마에게 뛰어가 안긴다.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완벽한 균형감 중에 하나다. 신기하다. 아빠가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런 균형감은 느껴지지 않는데.

“히로! 오늘 아저씨랑 뭐 했어?”

히로는 엄마에게 종알종알 오늘 있었던 일을 거의 정확하게 그리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말한다. 미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정말요? 요리교실에 갔었어요?”

“네. 미키마우스 그라탕빵을 같이 만들어 저만 맛있게 먹었어요.”

미카는 허리가 꺾일 정도로 웃는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아니, 상상이 안 돼서요. 히로랑 요리교실에 간다는 것 자체가. 완전 난리 났을 거 같은데.”

“아니요, 전혀요. 얼마나 기특했는데요. 말도 잘 듣고, 선생님 시키는 대로 얼마나 이쁘게 잘 만들었는데요. 히로짱! 그치~?”

히로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미카가 순간 인상을 구기며 말한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경기 이겼구나!”

나와 미카는 서로 바라보며 허탈 웃음을 짓는다. 미카는 오늘 경기에 있었던 일을 대략 이야기해 준다. 이야기하면서 차 뒷좌석 카시트에 히로를 앉히고 히로의 짐을 챙긴다. 미카가 운전석에 앉아 차를 출발시키기 직전에 나는 마카에게 말한다.

“며칠 전에 가게에 히로 아빠 왔다 갔어요.”

아주 일순간 미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다시 펴졌다. 위아래 입술을 굳게 말아 오므렸다 폈다.

“아무 일 없었어요?”

“네, 특별히. 그냥 서로 인사하고, 키리하라 선생님한테 신세 많이 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양말 몇 켤레 사 갔어요.”

미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오늘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사무실에서 히로와 같이 조립한 블록 우주선을 분해하고 있는데 히라베 아주머니가 내려오셨다. 나는 밝은 표정으로 저녁 인사를 건넸지만 아주머니 표정이 많이 굳어 있다.

“자기 SNS 거의 안 하지?”

“네. 왜요?”

“이거 혹시 알고 있어?”

히라베 아주머니는 자기 스마트폰을 나에게 보여 준다.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한 글이다. 제목이 이렇다.

「지역 유일의 양말 브랜드, 생산지 허위 표기, 그 사업주는 유부녀와 불륜」

본문이 아주 길다. 사진은 우리 가게 발가락 양말이 똑같은 데도 불구하고 하나는 한국산, 하나는 일본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모습을 찍어 놓았다. 긴 본문 중에 얼른 눈에 띄는 부분은 의류업에 삼십 년 종사한 사람이 양말 두 개를 놓고 분석한 결과 똑같은 재질이고 섬유의 특성상 일본 국내 생산되는 섬유가 아니라는 부분이다. 그 정도만 보고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잘 처리할 테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드린다. 아주머니가 가시고 나서 나는 내 스마트폰으로 다시 접속해 일단 페이지 전문을 다 읽은 후 사진으로 캡처해 둔다. 글 쓴 시간은 한 시간 전이고 작성자 프로필에 계정소유자가 키리하라 하야토(桐原勇人)라고 되어 있다.

프로필을 보니 H대학 기계공학부 졸업이라고 되어 있다. 미카와는 대학 때 만났겠구나 생각한다. 과거 작성된 글을 쭉 살펴본다. 일본 제조업에 대한 이야기, 전투기 엔진이나 신소재 이야기 같은 글들이 있는데 중간중간에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아내’, ‘아내가 아이를 학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글들이 있다. 미카가 힘들었겠구나 싶다. 아이 학대는 올해 작성한 글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분노에 휩싸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일본에서 지낸 지난 육 년을 되돌아본다. 사업을 접을 위기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히라베 아저씨 때문에 살아났고, 한 번은 일본 정부 보조금 덕에 살아났다. 그리고 단골 고객들의 얼굴이 한 분 한 분 머릿속에 지나간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었던가. 나를 도와준 그분들, 피도 안 섞인 생판 남일뿐만 아니라 여권 챙겨 비행기 타버리면 그만인 외국인을 조건 없이 도와준 그분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회사가 어려워질 때마다 전처는 힘들어하고 내가 하는 일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히라베 씨 부부는 무한정 나를 믿어주셨다. 은행이 빌려주지 않는 돈도 빌려주셨다. 도대체 누가 가족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조차 힘들다. 나에게 균형점은 믿음과 신뢰다. 가족관계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받은 것은 많아도 지난 육 년 동안 절대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지역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거짓말 한 적은 없다.

 

사무실 불을 끄고 긴 좌식 소파에 드러눕자마자 전화가 온다. 미카다.

‘오늘 고마웠어요.’

‘뭘요. 저도 히로 덕분에 오랜만에 재미있게 보냈어요.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 히로 같은 애면 열 명도 거저 키우겠네.’

‘아직 히로 모르시네.’

미카는 맑게 웃는다.

‘혹시 이번 일요일에 산에 가시나요?’

‘네 물론요. 비 와도 갑니다.’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비 안 오면요.’

‘물론이죠. 대환영.’

나는 히로 아빠와의 앞으로 있을 험난한 여정이 마음에 걸려 미카와 거리를 일단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미카의 데이트 요청에 백분의 일초 만에 승낙의 신호를 보내는 건 이성이 아닌 본능이었다.

‘일요일 오전 열 시 정도 제가 미카 씨 집으로 데리러 갈게요.’

‘네~. 그럼 잘 자요.’

‘미카 씨도 좋은 밤,’

소파에 누운 채 미카와 같이 갈 산이 어디가 가장 좋을지 미카를 위해 무얼 챙겨야 할지 생각하는 도중에 잠이 든다.

 

다음 편에 계속…